36. 한인성당을 위해 요리하다

한국인은 잘 먹는다

by 이확위

어쩌다 보니 이틀 연속으로 사람들을 위한 요리를 하게 되었다. 할 수 있을 거라 자신만만하게 모두 승낙했었다. 처음 제안을 받을 때는 컨디션이 아주 좋던 시기라 무조건 ok였지만, 막상 행사일들이 다가올 때쯤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억지로 힘들 내서 해내야 했었다. 토요일에는 한글학교에서 "한국 집밥 쿠킹클래스"가 있었다. 메뉴는 소고기배추된장국/소고기떡갈비/숙주나물/배추된장나물/오이무침이었다. 쿠킹클래스지만 장소가 학교 교실이라 인덕션도 두 개뿐이라 모두가 직접 요리를 할 수 없는 환경이다. 내가 생각해 냈던 아이디어가 요리 시연을 보여주고 요리 재료들을 챙겨줘 집에서 요리할 수 있도록 밀키트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쿠킹클래스를 위해 미리 장을 보고 나눠 줄 재료들도 미리 하나하나 소분해서 당일 짐을 한가득 들고 가야 했다. 토요일에 쿠킹 클래스를 하고 바로 다음날인 일요일에 한인성당을 위한 요리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나의 믿음의 정도는...

나는 그다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유아세례를 받으며 울고 있는 어릴 적 사진이 있다. 어릴 때는 집에서 주기도문도 외워봤고, 식사기도도 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서는 엄마만 성당에 다니셨고 모두가 종교와 멀어졌다. 나는 영성체도 받지 않았다. 커서 성인이 된 후, 주변을 보니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마음이 편해 보였다. 예를 들어 내 한 친구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하신다" 라거나 "이게 다 내 길로 가기 위함이다"라는 등의 말을 하곤 했다. 이해가 가진 않지만, 저런 마음이면 뭐든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이 부러웠다. 이와 더불어,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믿음으로 하느님과 가까워진다면 엄마는 보다 더 행복해하실 거다. 이런 마음으로 한국에서도 성당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유아세례만 받고 영성체를 받지 않았다고 했더니, 성인이 영성체를 받으려면 교리를 받아야 한다더라. 교리가 매주 일요일, 일 년 간이라고 했다. 솔직히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믿음이 나에게 찾아온 게 아니라, 나는 믿음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에 이렇게 성실할 자신이 없었다. 그 후 영성체는 못 받겠구나, 그러니 성당은 갈 수 없겠구나라는 마음으로 몇 년을 지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인성당

프랑스에 왔고, 한국인 친구가 한인성당에 갔다고 했다. 궁금했다. 이곳에서는 교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어 그 친구와 함께 갔다. 이곳의 한인 성당은 미사를 한 달에 한 번 한다. (파리 한인성당은 매주 미사가 있다. 아무래도 인원이 많아서 가능한 것 같다.) 처음 갔던 날은 여러 나라들의 합동미사였다. 프랑스어, 아랍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 여러 언어로 진행되고 각국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성당은 미사의 진행 순서가 전 세계 동일하니 이렇게 합동으로도 가능한 게 아닌가 싶었다. 각 나라 말로 성가를 부르는데 나라마다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콩고 사람들이 노래를 할 때는 젬베까지 치면서 아프리카 특유의 흥이 느껴져서 너무 신났다. 게다가 미사가 끝나고 나니 성당 밖에 생맥주 기계가 설치되었다. 이 성당 주변에는 대학교 캠퍼스가 있어서 인터내셔널 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신자들이 학생이 많다고 했다. 프랑스는 와인의 나라이지만, 내가 있는 이곳은 독일과 가까워서인지 사람들이 맥주도 많이 마신다. 미사가 끝나니 맥주를 공짜로 따라주고 있었다. 이게 마셔도 되는 건가 했는데, 한국인 신부님이 처음 온 내게 인사해 주시며 맥주 마셨냐고 공짜니까 실컷 마시라 했다. 신부님 말씀이니 신나게 마셨다.


이곳 한인성당은 신자 수가 적어서 한 달에 한 번만 함께 미사를 드리는데, 인원 파악을 위해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참석 여부를 확인하곤 했다. 내가 두 번째로 참석했을 때는 인원이 10명 미만이라 신부님들이 계시는 사제관에서 미사를 드린다고 했다. 가보니 성당 옆 건물의 거실 같은 곳에 있는 둥근 테이블 주변에 모두 앉아서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나는 미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을 따라서 앉았다 일어섰다 눈도 감기도 하고 손 모아 기도도 했다. 끝나고 다과 시간을 가졌다. 신부님이 옆에 앉으셔서는 내가 영성체를 하고 싶어 한다고 전해 듣고는 일단 올 해는 끝나서 다음 9월부터 교리를 시작할 수 있는데 교리는 신부님과 함께 하게 될 거라 했다. 이곳에서는 영성체를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서 주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굉장히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셨다. 뭔가 욕심이 났다. 영성체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이런저런 요리를 하다가, 다른 분으로부터 내가 요리를 한다는 걸 전해 들었던 한 교인분이 내 인스타그램에서 요리를 구경했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며 칭찬해 주셨다. 그러며 신부님에게도 내 인스타그램을 보여주자, 신부님이 어? 그럼 우리 다음 달 행사에... 혹시.. 요리..... 라면서 부탁해도 되냐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번에도 흔쾌히 수락했다.


한인성당을 위해 요리하다

요리를 위해 한인성당 회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예산은 200유로 정도로 생각하고 초과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인원은 대략 20명이라고 하셨기에 20명을 위해 200유로는 예산이 아주 넉넉하다고 생각해서 맘껏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내가 메뉴를 생각하고 적어서 보내드리니 모두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요리하기 일주일 전쯤에 다시 연락이 왔다. 한인분들이 무척 잘 먹는다는 거였다. 이전에는 각자 요리를 해서 가져와서 함께 먹었다고 했다. 식당을 하던 분이 있으셔서 식당용 큰 솥에 육개장을 가득 끓여 오면 그걸 다 비웠다고 했다. 육개장만 있는 건 아니고 다른 요리들도 있는데 말이다.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여러 사람들을 위해 요리했던 것은 모두 외국인, 프랑스인들을 위해서였다.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다. 주로 접시 하나에 음식을 조금씩 담아 한 그릇 먹고 몇몇 사람들만 여러 번 가져가서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회장님 말씀이 우리 교인들은 아니란다. 먹성이 정말 좋다고 한다. 계속해서 고민했다. 메뉴를 조금 수정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양을 늘릴 수 있도록 밥 종류도 추가했다.


장을 보는 것도 조금 문제였다. 바로 전날에서 쿠킹클래스가 있어서 미리 장을 봐둔 것들이 냉장고에 가득 찼다. 장도 나눠서 봐야 했다. 장을 보는데 필요한 만큼 재료가 다 없어서 못 산 것도 있었다. 요리 순서들의 계획을 모두 세워놨었는데, 이때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서 쿠킹클래스를 끝내고 돌아온 토요일 오후에 너무 피곤해서 잠시 쉰다고 누웠던 게 눈을 뜨니 밤 9시였다.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많은 양의 요리를 해야 했다. 집에서 하다 보니 냄비나 팬도 크지 않아 한 가지 요리도 여러 번에 나눠 요리한다는 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메뉴들을 정해놨었지만, 양이 부족할까 봐 냉장고를 뒤져서 나오는 재료들로 계속해서 메뉴들을 추가했다.

메인메뉴는 간장마늘 치킨이었다. 치킨은 당일 날 아침에 만들 계획이라 전날엔 건드리지 않았다. 원래 크리스피삼겹살 구이를 하려 했는데, 삼겹살이 충분치 않아 아주 소량만 구울 수 있었다. 다른 메뉴들이 더 필요했다.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 주꾸미로 매콤하게 주꾸미 볶음을 한다. 통에 담는다.

- 오이를 잘라 오이김치를 간단하게 담근다. 짠 것 같다. 맘에 들지 않았다.

- 냉장고에 고추가 잔뜩 있어서, 밥에 비벼먹을 수 있는 고추장물을 만든다. 매워서 살짝만 맛본다. 감칠맛이 좋다.

- 각종 재료들을 넣어 볶고 굴소스, 간장으로 간을 하고는 전분물을 풀어 걸쭉하게 잡탕밥을 만든다.

- 냉동실에 있던 슬라이스 소고기를 이용해 소고기된장찌개를 끓인다.

- 무를 채 썰어 무생채를 만들었다.

- 삼겹살 양이 적어 샀던 다른 부위 돼지고기로 내가 자신 있는 튀긴 마늘과 양파를 넣어 오랫동안 끓여내는 간장 돼지고기 조림을 만들었다. 맛있는데 양이 너무 적다.

- 양을 더 늘리기 위해 냉동실을 뒤지다가 완두콩이 보인다. 다진 소고기와 완두콩을 함께 볶고는 굴소스와 간장으로 간을 해본다. 꽤 괜찮다. 즉흥요리지만 맛은 좋다. 밥과 먹기 좋을 것 같다.


9시부터 요리를 시작했는데, 한 가지도 두세 번에 나눠서 요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계속 흘러 어느새 2시가 넘었다. 이렇게 요리를 하니 손이 조금 아픈 것 같았다. 피곤했다. 다음날 치킨을 튀기려면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9시에 회장님이 차로 날 데리러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이지만 알람을 맞추고는 잠에 들었다.ㄴ눈을 번쩍 떴다. 알람 소리를 못 들었다. 7시 반이다. 큰일 났다. 얼른 일어나서 바로 주방으로 간다. 냉장고에서 닭고기를 꺼낸다. 닭가슴살이다. 먼저 닭가슴살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닭고기가 쌓인걸 보니 아무래도 한 시간 반 만에 다 튀기기에는 조금 벅찬 것 같다. (요리하고 샤워하며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니까) 끝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하다가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보았던 굽네치킨 고추 바사삭 흉내 내는 레시피가 생각났다. 계획을 바로 변경한다. 시즈닝을 하고는 팬에서 닭을 구워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맛 보니 맛있다. 구이로 바꾸니 한 시간 만에 모든 게 끝났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회장님이 도착했는지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나이스 타이밍이다.


합동 미사 후, 다 함께 점심시간

이 날도 여러 나라 합동미사가 있는 날이었다. 이 날은 유아세례를 받는 아기가 있었다. 콩고인인 사람들이었는데, 부모가 아기를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대부도 함께 나왔다. 아기의 세례를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와 함께하는 부모가 너무 행복하게 미소 짓는 게 인상 깊었다. 유아 세례를 지켜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이 순간을 함께 축하한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미사를 보는 내내, 점심 양이 적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계속되었다. 각 나라마다 모여 앉았기에 한국분들이 오실 때마다 나는 몇 명인지 세어봤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이 날 한인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아이들까지 합쳐 대략 15명이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오늘 치킨 있다면서도?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솔직히 말했다. 튀김을 하려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닭구이를 했다고.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들의 사제관에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옮기고 가져온 요리들을 차려둔다. 다른 분들이 큰 전기밥솥을 가져와서 (식당용) 밥을 지으셨다. 밥이 되는 동안 다른 음식을 먼저 먹을 순 없어서, 가만히 밥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시간을 계속해서 밥이 될 때쯤 나머지 가져온 음식들을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데웠다. 혹시나 양이 부족할까 봐 소면을 10인분 사 왔었고 비빔양념장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소면도 삶기 시작했다. 밥이 되자 모든 요리들의 뚜껑도 열고 세팅을 마쳤다. 음식들을 다 세팅하고 나니, 한인성당 총무분이 오셔서는 너무 수고하셨다고 정말 감사하다며 재료비와 함께 수고비도 함께 조금 넣어다며 바로 봉투를 건네줬다. 내가 감사했다.

먼저 어린이들이 먹게 했다. 아이들은 닭구이를 가장 잘 먹더라. 매울 것 같은데 비빔국수를 잘 먹는 아이도 있었다. 그 후 어른들이 먹기 시작한다. 다른 나라 신부님들도 사제관에 왔다가 음식이 있으니 물어보면서 함께 먹기도 했다. 멕시코에서 왔다는 신부님은 매운 것을 잘 먹는다며 비빔국수, 주꾸미, 심지어 고추장물까지도 맵지 않다며 잘 드셨다. 다른 교인분들도 접시에 요리들을 몇 번이나 떠가면서, 누가 이거 맛있다 하면 "어 나 아직 그거 못 먹었는데?" 하며 일어나 그 음식을 가지러 가면서 모든 요리를 맛보려 했다. 다들 다 맛있다고 했다. 집에서 가끔 한국요리를 해 먹는다고는 해도 이렇게 제대로 많이 요리를 먹지 못한다면서 너무 좋다고 했다. 하지만 국그릇 같은 게 없어서, 된장찌개를 제대로 떠먹지 못하고, 건더기가 가라앉아 있으니 잡탕밥이 뭔지 잘 몰라 못 먹은 사람들도 있었다. 디저트는 한 분이 딸기티라미수를 만들어오셨다. 이곳 분들은 여러 번 이 티라미수를 맛본 모양이다. 맛의 밸런스가 참 좋았다. 재료도 신경 써서 만드신다고 했다. 모두가 레시피를 탐냈다. 나도 조금 탐이 났다.

음식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먹는다는 분들이 오지 않아서 요리가 남았다. 하지만 다들 걱정하지 말라며 집에 챙겨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난 이거! 난 이거! 하면서 각자 가져가고 싶은 요리들을 골라서는 챙겨갔다. 덕분에 빈 통만 챙기면 되니 돌아가니 길에 손이 가벼울 것 같았는데, 회장님이 수고했다며 집 앞까지 차로 태워다 주셨다.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너무 피곤했다. 월요일이 성신강림축일일로 프랑스 공휴일이었다. 원래 쉬는 날이니 그동안 못했던 논문 작업을 한다거나, 다른 취미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뒤늦게 피로감이 몰려와서 하루종일 누워 쉬웠다. 등과 손목이 너무 아팠다. 요리를 직업으로 삼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난 취미로만 요리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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