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마라톤을 위해 파리에 갔는데 말이죠...

번호표를 놓고 와서 호텔에서 잠만 잔 후기

by 이확위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잘한다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거다. 마라톤이라 하기 민망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도 종종 10 km 마라톤에 참가하곤 했다. 평소에 연습 없이 달리다가 일요일 아침 10 km를 달린다. 함께 하던 연구실 동기가 있었는데, 완주할 때까지 힘든 것 같지만 온전히 에너지를 다 사용하지 않은 건지 우리 둘은 언제나 끝나고 나면 에너지가 가득 찼다. 달리기를 마친 후는 삼겹살 집에 간다거나 맛집을 찾아갔다. 그렇게 일 년에 두 번 정도를 몇 년간 계속 참가해 왔는데, 코로나가 터진 후 못하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한참을 달리기를 안 하다가 2021년 겨울 프랑스로 왔다. 내가 온 지 몇 개월 후 달리기를 같이하던 동기도 내가 있는 연구소에 오게 됐다.


요즘은 평소에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한 일주일에 3번 정도 달리기를 하면 한 달을 아무것도 안 한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지낸 지 일 년 반이 지났다. 함께 달리곤 했었던 동기와 나 둘 다 10 km 마라톤에 참가했던 기억이 좋았나 보다. 각자 서로에게 말없이 파리에서 있는 아디다스 10 km 러닝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 후 서로가 같은 곳에 등록한 것을 알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에서와 다르게 의사로부터 이런 대회에 참가해도 건강상에 문제가 없다는 서류를 발급받아 인지증을 받아야 한다. 서류가 없으면 참가할 수가 없다. 몇 번이고 서류를 인증받으라는 안내 메일/메시지가 날아왔다. 게을러서 미루고 미루다가 병원을 찾아가서 이런 곳에 나가는데 서류가 필요하다 말하니 이런저런 건강 상태에 대한 질문들을 하고는 서류를 출력해 주었다.


프랑스에 있으면서 택배 받는 게 너무 불편하다. 집에 사람이 있어야만 택배를 받을 수 있다. 택배가 사이즈가 우편함에 들어갈 정도라면, 우체국택배의 경우는 우편함에 넣어두지만 사이즈가 크다면 사람이 집에서 기다리고 직접 받는 수밖에 없다. 다만 문제는 배송이 몇 시에 올 거라고 메시지를 보내고도 그 시간을 전혀 안 지킨다는 것이다. 다른 택배 회사들의 경우 사람이 직접 받거나 아니면 근처의 다른 가게들로 물건이 배송되고 찾으러 가야 한다. 마라톤을 신청할 때 옷과 번호표칩을 파리의 아디다스 매장에서 수령하거나 집으로 배송시키는 방법 중 선택하게 되어 있었다. 매장에서 받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서, 집에서 받는다고 했었다. 티셔츠와 번호표가 배송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택배가 오지 않았다. 걱정되기 시작했다. 공유하우스에 살고 있어서 우편함에 내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서 혹시 우편함에 못 넣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스티커에 내 성을 써서 우리 집 우편함에 추가로 붙여두었다. 그러고 며칠 후, 봉지에 포장된 택배 하나가 우편함에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파리에 가서 달리기 할 때 쓸 것이니 뜯지 않고 방 한 곳에 가만히 두었다.


달리기는 일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토요일 오전에 한글학교 수업이 있어서 수업을 마쳤다. 이 날은 한국식 비건요리 쿠킹 클래스를 진행했던 날이기도 했다. 한글학교 외부 사람들이 신청을 많이 해서 처음 보는 분들이 많았다. 메뉴는 감자전, 파전, 비건잡채, 두부강정이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아침에 클래스를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모두 준비해 두었었다. 클래스는 잘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모든 메뉴들을 잘 먹었다. 이걸로 이번 학기 동안 세 번의 쿠킹클래스를 할 수 있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또 있기를 바라며 했었는데, 최근에 새로운 곳의 도움을 받아 정기적으로 매달 1회씩 쿠킹클래스를 하게 될 것 같다.


한식 비건 아뜰리에를 끝내고 짐을 챙겨 서둘러 집에 돌아오니 거의 3시 반이다. 5시 18분 파리행 기차를 타야 하고 집에서 기차역까지 20분은 걸린다. 10분은 여유 있게 도착할 생각을 하면, 늦어도 4시 50분 전에는 출발해야 했다. 쿠킹 클래스를 하면서 땀을 뻘뻘 흘렸던 터라 서둘러 샤워를 한다. 파리행 짐을 싸지 않아서 대충 필요한 것들을 가방애 담는다. 뜯지 않은 티셔츠와 번호표가 들어있는 택배봉투도 챙긴다. 점심조차 먹지 못해서 미리 만들어두었던 검은콩물을 이용해서 검은콩 콩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검은콩 껍질 때문인지 부드럽지 않고 어딘가 거친 느낌이 든다. 조금 아쉬운 맛이었다. 얼른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고는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했다. 무사히 도착하여 기차를 타고 파리로 향한다. 항상 기차 안에서 뭔가를 할 생각을 하지만 언제나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리다 파리에 도착해버리곤 한다. (대략 한 시간 반 소요)

함께 달릴 친구는 이미 파리에 도착해서 호텔에 체크인을 한 상태였다. 친구와 호텔 근처에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해서 서둘러 호텔로 향한다. 근처 식당 리스트를 몇 개 보내줘서 그중에 평점이 높은 미국식 바비큐집에 가기로 한다. 맥주도 마시고 싶었지만, 한동안 달리기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일 달리기를 해야 하니 술은 마시지 않는 게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나 자신과 타협하고 딱 한 잔만 즐겼다. 식사는 평점에 비해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맛이었다. 실망스러웠다.

문제는 저녁 식사 후 호텔에 들어와 짐을 풀면서였다. 이제 챙겨 온 티셔츠 택배를 뜯어 옷을 입어보려 했다. 그런데 택배를 뜯는데 보이는 색이 친구의 티셔츠 색과 다른 것 같았다. 꺼내보다가 나는 좌절하고 만다. 다른 택배다. 마라톤용 티셔츠와 번호표가 아니라, 몇 주 전 주문했던 에코백이었다. 번호표가 없으니 참가할 수 없다. 파리에 달리기를 위해 숙소도 잡고 힘든 몸을 이끌고 왔는데, 달리기를 할 수가 없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혹시 다른 방법은 있을지 검색해 보지만 답이 안 나온다. 결국 친구 혼자 달리기로 한다. 미안하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숙소에서 자는 것도 아까웠다. 여기까지 온 기차표와 돌아갈 기차표까지 모든 돈이 다 아까웠다. 친구가 달리기 하는 동안 나는 일요일에 뭔가 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기차표도 여유롭게 저녁으로 해뒀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친구가 오르세미술관에 특별전을 하는 게 있는데 거길 가보라 했다. 티켓을 예매하지 않으면 엄청 기다려서 입장해야 하기에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원하는 시간대에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다음날 친구는 일찌감치 달리기를 위해 나갔다. 나는 늦잠을 잤다. 일어나기 싫었다. 한심한 내가 싫었다. 체크아웃 시간을 확인해 본다. 다행히 12시까지였다. 11시까지 뭉그적 누워있다가 서둘러 준비하고 나와 체크아웃을 한다. 12시 반에 오르세미술관 입장권을 사두었기에 시간 맞춰 입장을 한다. 간단히 짐 검사를 마치고 무사히 들어간다. 마네/모네 특별 전시회가 있었다. 먼저 이것부터 보기 시작한다. 다른 티켓을 사서 우선 입장할 수도 있었지만 일반 티켓을 사서 들어왔기에 줄을 한참 서서야 특별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특별전시회는 좋았다. 마네와 드가가 서로 이렇게 가까운 존재인지 몰랐었다. 이럴 때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된다. 전시회는 좋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관람하기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마네/드가 특별전시회를 보고는 다른 특별전시회엔 파스텔화전을 봤다. 파스텔로 이렇게도 다채로운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섬세함을 표현하는 테크닉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가끔 그림을 가까이서 대체 어떻게 그린 건가 자세히 들여다보곤 하는데 엄두가 안나는 그림들이 참 많았다.

원래는 오르세 미술관 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전에 친구가 여기서 먹었는데 좀 비싸긴 했지만 편하고 그럭저럭 괜찮다고 했었기 때문에 나도 귀찮아서 여기서 먹어야지 했건만, 자리가 없었고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결국 밖에서 먹는 수밖에 없었다.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가 없으니, 티켓값이 아까워서 좋아하는 인상파 작가들 그림이 전시된 4층으로 바로 올라간다. 오르세는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다시 다 둘러보고 싶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다 둘러볼 힘이 없었다. 선택과 집중의 시간인 거다. 4층은 언제 봐도 좋다. 좋아하는 모네의 작품들이 많다. 어릴 적 엄마가 "모네의 정원에서"라는 그림책을 사주셨었다. 언니가 그 책을 워낙 좋아해서 나도 옆에서 함께 읽었었다. 화가 모네에 대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통해 모네에 대해 처음 알게 됐었다. 오르세는 이미 몇 번 왔었기에 좋아하는 작품들이 이미 마음속에 정해져 있다. 돌아다니며 좋아하는 작품들을 위주로 다시 한번 감상한다. 작품들을 구경하면서 잠시 쉬다가 근처에 갈 만한 식당을 찾는다. 에전에 갔었던 근처 식당이 생각난다 굴을 맛있게 먹었었다. 굴이 먹고 싶다. 다시 가야겠다 싶어 바로 예약을 한다.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힘이 난다. 다시 일어나 그림들을 더 감상한다.

식당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깝다. 언제나처럼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예약을 해서 바로 자리를 안내받는다. 석화와 화이트와인 한 잔을 시킨다. 굴에 미뇨네뜨 소스를 곁들여 먹는 게 난 참 좋다. 굴은 한국보다 프랑스 굴이 더 맛있는 것 같다. (개인적 의견이다.) 한국 굴은 나에겐 가끔 바다맛(?)이 너무 강하게 나곤 하는데, 프랑스 굴은 그 바다내음이 나지 않고 그저 싱싱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메인으로는 오리가슴살 요리인 마가렛 드 카나드를 시켰다. 프랑스에 와서 먹어 본 프랑스 요리 중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오리고기가 좀 더 촉촉했으면 좋겠다 싶다. 사이드로 나온 감자그라탱 같은 것이 버터향이 가득하다. 혼자지만 열심히 음식을 즐긴다.

노르망디 굴 No.4(6개)- 16유로

마가렛 드 까나드 (오리가슴살구이)- 29유로

샤르도네 28 cl -14유로

에스프레소-3.5유로

합계: 62.5유로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의 K-마트로 향한다. 오페라에 샤넬의 티모시 샬라메의 광고가 아주 크게 걸려있다. 멀리서 봐도 티모시 얼굴이 정말 크게 보인다. 언제 봐도 멋진 얼굴이다. 괜히 사진을 한 장 찍어본다. 파리에 오면 나의 필수 코스가 바로 K-마트 쇼핑이다. K-마트를 둘러보며 내가 사는 스트라스부르 아시아마켓에 없는 것들을 골라본다.

원래의 목적인 달리기는 전혀 하지 못했지만, 오르세에서 특별전시회도 보고, 맛있는 굴도 먹고, K-마트 쇼핑도 하고 나쁘지 않은 파리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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