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에어컨 없이 여름 나기
일을 위해 프랑스로 와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에어컨 없이 지내야 할 여름이었다. 프랑스는 한국처럼 습하지 않아서 그늘은 서늘하기도 하지만, 점점 예전에 비해 더워지고 있으며 유럽의 폭염에 대해 몇 년째 뉴스에서 종종 접해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고 이미 알고 있었는데, 놀란 것은 연구소였다. 연구소의 실험실은 어느 정도 적정 온도 유지가 돼야 하니 에어컨이 작동하며 여름/겨울 온도가 유지된다. 그러나 오피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연구소에 겨울에 처음 출근을 하고, 바로 여름을 걱정했다. 결코 괜한 걱정이 안 아니었다. 겨울에는 크게 추울 일이 없으니 괜찮지만, 여름에는 너무 덥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서 몸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려야 할 뿐이다. 실험복을 입고 실험실에서 실험할 때는 크게 덥지 않지만, 시약을 가지러 복도를 거쳐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하거나 하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린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
작년보다 올여름이 더 더운 것 같다. 작년에는 집에 선풍기조차 없었지만, 밤에 창문만 열어두면 크게 덥지 않았다. 잘 지냈다. 하지만 올여름은 초여름부터 너무 더웠다. 어쩌면 내가 몸이 작년보다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 땀을 너무 흘렸다. 그래서 여름 준비를 제대로 해야겠다 싶었다. 퇴근길에 인테리어 제품들을 파는 가게를 찾아간다. 처음에는 냉풍기도 생각을 했었다. 에어컨은 무리이니, 냉풍기로 에어컨 같은 시원한 공기를 쐴까 했는데 사람들이 시끄럽단 후기가 많았다. 그냥 선풍기를 사기로 한다. 좋은 걸 살까 하다가, 그냥 저렴한 것으로 고른다. 조금 높이가 있는 선풍기로 골랐다. 무겁지는 않은데 부피가 커서 집까지 겨우 들고 왔다. 신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연다. 조립해야 한다. 당연히 조립에 필요한 도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 드라이버가 필요하다. 다음날 드라이버를 사기 위해 집 근처 마트에도 가보았지만, 드라이버를 팔지 않는다. 결국 아마존을 통해 드라이버를 주문한다. 25유로 선풍기를 샀는데 조립을 위한 드라이버공구세트가 20유로다. (이럴 거면 조립된 40유로 선풍기를 사는 게 나을 뻔했다.)
얼음 얼려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침에는 거의 항상 네스프레소 머신으로 캡슐 커피를 내려 먹는다. 한국에서도 겨울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이라서, 프랑스에서는 거의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어쩌다 스타벅스에 가는 경우에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것 같다. 그러나 올여름은 아메리카노를 마시기에는 너무 더웠다. 나의 한국인 피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애타게 찾는 것 같았다. 얼음이 필요했다. 얼음케이스를 사 온다. 처음에 한 개 사 오고는 넉넉히 얼리기 위해 하나 더 사 와서는 얼음을 얼린다. 주기적으로 케이스에서 얼음을 꺼내 지퍼백에 얼음들을 모두 모아 담는다. 이제 아침에 시원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시원한 아아 한 모금이면 몸의 열기를 식힐 수 있다.
맥주 말고 위스키 하이볼~
난 맥주를 좋아해서, 와인의 나라 프랑스지만 와인보다 맥주를 더 자주 마신다. 더운 여름 시원한 맥주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위스키 하이볼이다. 시원한 위스키 하이볼은 더운 여름 크게 한 모금 삼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마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위해 얼음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알코올 코너에서 위스키를 둘러본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서 봤던 몽키숄더사 보인다. (하이볼을 위해서는 좋은 위스키를 살 필요가 없다. 하이볼에 좋은 위스키는 위스키의 낭비다.) 난 하이볼에 위스키와 함께 그냥 탄산수를 쓰는 것보다는 조금은 단맛을 가미하는 토닉워터를 사용하는 게 좋다. 마트 음료 코너에서 제로 토닉워터를 발견했다. 좋다. 그리고 그 옆에 제로 진저비어가 있었다. 진저비어도 좋아해서 위스키와 섞어도 맛있겠다 싶어서 두 종류 모두 사들고 온다. 하이볼을 위해 큰 글라스가 필요한데 없다. 위스키 온 더락용 글라스를 두 개 사 온다. 함께 마실 사람도 없지만 괜히 두 개 사 온다. 나는 위스키:토닉워터를 대략 1:4 정도의 비율로 섞는다. 단맛이 싫어 탄산수를 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탄산수로 만들면 위스키를 그저 희석한 맛이 나서 영 별로다. 얼음과 레몬슬라이스를 넣어 하이볼을 완성한다. 선풍기 앞에서 하이볼을 마셔보니 시원하니 좋다. 이 시원함이 그리웠었다.
여름엔 역시 냉면
한국에서 난 겨울에도 냉면을 먹는다. 술 마신 다음날 좋아하는 것 중 하나도 냉면이다. 물냉면, 비빔냉면 모두 좋아한다. (평양냉면은 먹어보질 못했다.) 프랑스에 와서 대부분 한국 요리는 직접 해 먹었다. 소면, 메밀면, 칼국수, 가락국수, 각종 면 요리는 직접 다 해 먹었는데 냉면을 못 먹었다. 한식당이 그나마 좀 있는 파리에도 냉면을 파는 곳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있는 스트라스부르는 더더욱 없다. 어느 날 아시아마켓에 실온보관하는 비빔냉면이 들어왔다. 안에 비빔장도 들어있었지만 비빔장은 직접 만들어서 오이나 무절임을 곁들여 비빔냉면을 먹었다. 확실히 냉면면의 쫄깃함은 소면과 같은 면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의 아시아마켓에는 냉면육수가 안 들어왔기에 파리에 볼일이 있어서 갔던 어느 날 파리의 K-마트에서 냉동 냉면육수와 냉동 냉면면을 사 왔다. 그렇게 몇 번을 해 먹으며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데 뒤늦게 나 혼자 산다에 나온 배우 이장우의 조미료 냉면 육수에 대한 영상을 봤다.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장우 배우의 레시피를 따라 냉면 육수를 만들었다. 식힌 후 맛을 본다. 오! 저렴하게 사 먹는 식당 냉면 맛이다! 어차피 파리에서 사 온 냉면 육수도 이렇게 조미료로 만드는 거니 힘들게 파리에서 사 올 필요 없이 이렇게 조미료로 간단히 만들면 된다. 냉면 육수를 제조해서 냉동실에 얼려둔 후에는 시원한 냉면이 당길 때면 자주 해 먹고 있다. 비빔장도 만들어서 곁들이고,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서 고기와 냉면을 먹기도 한다. 냉면이 먹고 싶다는 한국 유학생 동생을 초대하여 냉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비록 에어컨은 없지만 프랑스의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이렇게 내 나름대의 방법들로 애쓰고 있다. 선풍기를 빼고는 결국 다 시원한 것을 먹어 속부터 차갑게 만드는 거다. 어릴 적부터 장이 약했다. 한국에서는 장염도 자주 걸렸고 종종 아팠는데, 프랑스에 와서는 탈이 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렇게 계속 차가운 것을 먹다가 탈이 나지 않을까 거정을 하기도 했는데, 아프지 않다.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내가 모두 요리해 먹는 게 이곳에서 아프지 않은 비결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에는 딱히 여름 음식이 없는 것 같다. 더워지기 시작하면 아이스크림 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많아지거나 길거리에서 슬러시를 파는 정도다. 한국처럼 냉면, 콩국수 같은 시원한 요리가 없다. 내가 요리를 할 줄 아는 게 다행임을 다시금 느끼는 여름이다. 어서 좀 시원해졌으면 좋겠다. 여름아 제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