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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ug 28. 2023

치즈의 나라에서 치즈 돈까스

치즈를 듬뿍 넣어도 아깝지 않아

프랑스에 와서 마트를 둘러보며 놀란 것은 치즈와 같은 유제품 코너이다. 그 종류와 양이 너무나도 방대해서, 프랑스인들은 한국 오면 어떻게 사나 하는 괜한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가격도 너무 저렴하다. 모짜렐라 치즈 한 봉지를 크게 사도 저렴한 것은 2유로면 살 수 있다. 요거트나 버터 등도 무척 저렴하다. 요거트 같은 것은 네 개 묶음이 2유로가 채 되지도 않는다. 요거트가 저렴해서 그런지 약국에 유산균을 사러 갔더니 팔지 않고 있더라. 많은 한국인들이 유산균을 영양제처럼 섭취하는 것과는 다르게 여기 사람들은 거의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요거트를 먹는 것 같다. 연구소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는 우리 연구실의 내 동료는 점심마다 디저트로 요거트를 먹는다. 요거트가 많은 만큼 그 종류도 한국에서는 못 보는 것들이 많다. 레몬 맛, 바닐라 맛, 패션푸르츠 맛, 라즈베리, 믹스 베리, 온갖 종류의 요거트가 있다. 프랑스에 온다면 마트에서 요거트를 실컷 맛보기를 추천한다. (치즈인데 요거트 같은 프로마쥬 블랑도 추천한다.) 요거트가 저렴하지만 난 요거트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서 요거트 보다는 치즈를 더 많이 사곤 한다. 항상 치즈가 냉장고에 있다.

프랑스에 와서 좋은 점이라면, 요리에 치즈를 아낌없이 넣을 수 있다는 거다. 워낙 저렴하다 보니 듬뿍 넣어도 전혀 아깝지가 않다. 치즈 떡볶이를 하면서도 치즈 한 봉지를 다 넣기도 하고, 치즈 오믈렛을 만들어 쭉쭉 늘어날 만큼 치즈를 듬뿍 넣는다. 김치볶음밥에도 닭갈비와 같은 갖은 한국 요리에도 치즈를 듬뿍 넣는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이만큼 넣지 못했을 거다.


한국에 있을 때는 돈까스를 꽤 자주 먹었다. 내가 어릴 때는 경양식 돈가스가 전부였는데 어느 순간 일본식 두툼한 돈까스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뭐가 좋냐고 묻는다면 그저 둘 다 좋다고 답하겠다. 둘이 다른 매력이 있으니 하나를 고르기는 너무 어렵다. 이곳에서는 외식을 잘하지 못하다 보니 먹고 싶은 메뉴가 생기면 내가 직접 만든다. 다행히도 나는 요리를 제법 하기 때문에 레시피 없이도 요리를 곧잘 하고, 잘 모르는 메뉴도 유튜브 영상의 설명만의 재료만 한번 쓱 읽고는 영상을 보지 않고도 거의 요리해 낸다. 그러니 내게 돈까스는 어려울 것 없는 요리이다. 다만 진짜 전문가들의 실력은 못된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연X 돈까스와 같은 곳들 말이다. 튀김은 온도 조절이 무척 중요하지만 온도계조차 없는 나는 절대 그런 돈까스 장인 정도의 퀄리티를 낼 수 없다. 그저 집에서 한 끼 맛있게 먹기 적당한 정도의 요리라고 하겠다.


프랑스에 와서 일 년 남짓이 되도록 돈까스를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튀긴 고기라면 프랑스 코르동블루인데 그건 닭고기니 돼지고기를 튀긴 돈까스와는 다르다. 마트에서 돼지고기 등심 부위를 사 온다. 조금 살짝 칼등으로 두들겨 대강 펼쳐준다. 돈까스는 밀계빵-즉 밀가루, 계란, 빵가루 순서만 기억하면 된다. 밑간을 살짝 해준 돼지고기에 밀계빵을 입히면 튀길 준비 완료다. 기름을 듬뿍 넣고는 온도가 오르기를 기다린다. 돈까스를 튀겨낸다. 그러다 문득, 치즈의 나라인데 치즈를 넣어 돈까스를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냉장고에 치즈는 모짜렐라가 아닌 프랑스의 라끌렛 (Raclette, 불어로 하끌렛) 용 치즈가 있었다. 녹으면 늘어나고, 모짜렐라보다 향이 있다. 라끌렛 치즈를 꺼내서 돼지고기로 감싸서 함께 튀겨내 준다. 라끌렛 치즈 돈까스 완성이다. 소스도 직접 만든다. 경양식 돈까스 느낌으로 양배추 샐러드에 케요네즈(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리고 스위트콘까지 곁들인다. 먼저 바삭한 돈까스를 맛보고, 내가 프랑스에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치즈 돈가스를 자른다. 치즈가 흘러나온다. 바삭한 튀김옷과 촉촉한 돼지고기, 그 안의 진한 치즈의 조합이 좋다.


프랑스 요리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랑스에 있으면서 저렴한 식재료로 내가 원하는 한국에서 먹던 요리들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건 분명 즐거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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