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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ug 18. 2023

한 여름, 선풍기, 오뎅탕 그리고 맥주

간단하게 오뎅탕 한 사발

한국에 있을 때 오뎅탕을 그다지 많이 사 먹진 않았던 것 같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을 대도 포장마차의 오뎅은 뭐랄까 너무 푹 익어서인지 오뎅의 질이 문제인 건지 식감이 영 맘에 들지 않아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프랑스로 오기 직전, 서울에 연구실 근처의 방을 빼고는 언니네 집에 머물렀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출국이 조금씩 미뤄지면서 예상보다 한 달 가까이 더 머물게 되면 매일 요리를 했었다. 그때, 마땅히 재료가 없어서 대충 내 맘대로 끓였던 어묵 우동이 있는데, 그때 국물이 좋았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멸치와 다시마로 기본 육수를 내주고, 오뎅을 좀 썰어 넣는다. 그런 후, 국간장과 액젓으로 기본 간을 해준다. 여기에 삶아준 우동 면을 곁들이고는 다진 파를 넣어준면 끝이다. 우동면도 맛있는 면이면 더욱 맛있다. 면을 건져먹고도 국물이 맛있어서 끝가지 다 먹곤 했다. 여기서 우동면 없이 오뎅만 듬뿍 넣어 오뎅탕도 몇 번이나 끓여 혼자 맥주에 곁들여 먹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 온 지 일 년 반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오뎅탕을 제대로 끓여 먹은 적이 없다는 게 갑자기 떠올랐다. 마침 금요일 밤이었기에, 혼술을 할 생각이었기에 딱이다 싶었다. 아무래도 오뎅탕은 국물 때문인지, 포장마차에서 추운 겨울 호호 불어먹는 오뎅국물 이미지 때문인지 겨울감성이긴 하지만, 맛있는 건 계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다 뒀던 맥주를 얼른 냉동실에 넣어두고 오뎅탕을 위한 육수를 먼저 준비하기 시작한다. 멸치와 다시마, 물을 함께 냄비에 넣고는 끓이기 시작한다. 팔팔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내 주고, 멸치만으로 20분가량 충분히 끓여 육수를 뽑아낸다. 육수가 끓는 동안, 얼마 전 필요해서 구매 후 잔뜩 남아 구석에 박아뒀던 나무 꼬치를 꺼내든다. 아시아마켓에서 사다 두는 오뎅을 보통 냉동실에 얼려서 보관하는데 (양이 많아서) 얼른 해동해서 꼬치에 끼우려는 생각에 전자레인지로 대충 해동 후 꼬치에 끼우려 구부리니 많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사실 더 기다렸다가 하면 되는데, 야식으로 얼른 맥주에 곁들여 먹을 생각에 맘이 급해 마구잡이로 꼬치에 꽂아서 예쁘지 않게 완성됐다. 괜찮다. 이것은 손님 접대가 아닌, 나 혼자 먹기 위한 요리니까 말이다. 육수가 다 끓으면 멸치를 건져내고는 준비해 뒀던 오뎅꼬치를 넣는다. 냄비가 깊지 않아 꼬치를 세우니 오뎅이 모두 잠기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손잡이 부분까지 모두 잠기게 꾹꾹 눌러서 모두 익게 했다. 오뎅은 어차피 튀겨서 다 익은 상태니까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게 살짝만 익혀줘도 끝이다. 간은 국간장과 액젓을 함께 이용한다. 국간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색이 지나치게 검어질 수 있으니, 간이 부족하다면 추가는 소금을 이용하는 게 좋다. 오뎅이 익는 동안 재빠르게 파를 썰어준 후, 듬뿍 뿌려 마무리한다.

오뎅을 그릇에 모두 담는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모두 한 그릇에 담겨서 뿌듯했다. (국물만 어정쩡하게 남는 경우, 다 못 먹을 양이라도 괜스레 아까운 기분이 들곤 한다.) 냉동실에 조금 전 넣어두었던 맥주를 꺼내든다. 시원해졌다. 딱이다. 맥주도 제대로 된 잔이 있으면 좋겠지만, 집에 마땅한 잔이 없다. 맥주잔은 페스티벌 등에서 받았던 플라스틱 잔뿐인데, 플라스틱보단 유리에 먹는 맥주맛이 좋으니 마지못해 집에 유일한 유리잔을 꺼내든다. 맥주까지 잔에 담으니 이제 먹을 준비 완료다.

한국은 많이 더웠다고 들었는데, 내가 있는 곳은 열흘 간 23도 정도로 제법 선선한 날씨였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30도로 치솟아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꺼뒀던 선풍기를 다시 틀었다. (우리 집은 에어컨이 없다. 프랑스의 많은 집이 에어컨이 없다.) 더운 여름날, 선풍기를 틀고는 시원하게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다. 냉동실에서 갓 나온 맥주가 시원하니 기분 좋다. 부드럽지만 탱탱함을 잃지 않은 오뎅 꼬치를 먹고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맛본다. 크으 좋다.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그릇을 들고 국물을 한 껏 들이켠다. 그런 후, 시원한 맥주를 다시 마신다. 더운 여름 금요일 밤, 뜨끈하니 맛 좋은 오뎅탕에 시원한 맥주, 그리고 유튜브에서 잡다한 영상들을 시청하니, 혼자라도 크게 부족함 없이 잘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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