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친한 친구와의 만남
내 가장 친한 친구와 나는 우리를 "강과 호수"라고 부른다. 친구의 성이 강이고, 내 이름은 호수와 닮았는데 어느 날 평소처럼 함께 공연을 보고 산책을 하던 중 한 가게에 "나는 강, 너는 호수"라고 적힌 문구를 보고는 "어? 이거 우리잖아!"라고 친구가 말한 후부터 우리는 강과 호수가 되었다. 이 친구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글을 적었는데, 우리가 함께해서 즐거운 이유는 취향이 많이 비슷해서 많은 것을 함께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취향이 비슷해서, 새로 나온 신곡이 좋아서 친구에게 보내면 친구도 좋다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혹은 내가 뭔가 '어? 이건 별로네' 싶은 건 그 후 친구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예로 든 것이 음악일 뿐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비슷하다. 그렇기에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기가 너무 쉽다. 내가 좋은 거, 내가 싫은 거면 친구도 비슷하다.
이렇게 많은 취향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것 외에도 내가 이 친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배려가 담긴 솔직함이다. 가끔은 그저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부족하고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말을 아끼는 거다. 관계를 망칠까 두려움에 그러는 경우도 있곤 하는데, 이 친구는 우리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인지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책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는 결코 차갑고 아프지 않다. 이 친구가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는 맘을 지닌 사람이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친구라서 그 정도가 언제나 적당하다. 그렇기에 이 친구의 말과 평가는 믿음이 간다. 가볍게 내가 취미로 즐기는 그림만 하더라도 내가 만족스럽지 못한 그림을 그렸을 때, 이 친구는 단호히 "그 그림은 좀 아니네"와 같은 말을 한다. 수긍할 수 있다. 그저 칭찬만 하지 않는다. 아닌 순간에 아니라고 하는 사람임을 알기에 이 친구의 말은 믿음이 간다. 내가 온전히 누군가의 말을 믿는 것은 아마 세상에서 이 친구와 우리 언니뿐일 것이다.
친구와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우리 반은 조금 특이하게 한 반이 3년간 변치 않고 진급하는 반이었다. 거기서 한 반으로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거다. 1학년부터 우리가 친하진 않았다.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조금은 나의 부끄러움 때문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다. 수업시간이던 낮에 교무실에서 이 친구를 급하게 찾았고, 친구는 급히 떠났다. 그날 종례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이 친구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날이 시험이었다. 선생님은 말하셨다. 반장과 부반장만 선생님과 함께 장례식장에 다녀올 테니, 너희들은 자습하라고. 나는 그때 교실에 남아서 자습을 했다. 반장과 부반장이 돌아오고, 아이들이 그 친구는 어떻게 있냐고 묻자 반장이 말했다. "내일이 시험인데 여기 와서 어떡하냐고 그러더라"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 친하지 않다고, 다음날 시험이라고 그렇게 친구의 아픈 순간을 함께 위로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 당시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내가 너무 어리석다. 이때의 부끄러운 기억에 나는 우리가 1학년 때는 친해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그렇게 2학년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는 나와 함께 있었다. 그러다 3학년이 되었고 3학년이 되기 직전부터 함께 살던 언니가 떠나고 혼자 자취를 하게 되면서 (학교와 집이 멀어 자취를 했다) 나의 우울증이 도졌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나의 분리불안장애가 어릴 적부터 치유되지 않았던 상태였기에 나의 조력자인 언니가 곁에 없자 나의 상태가 나빠졌던 것 같다. 나는 일어나기를 거부했고, 처음에는 학교를 지각하다가 언젠가부터 학교를 잘 가지 않았다. 그런 날 찾아오는 이가 바로 이 친구였다. 내가 문제가 있음을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께 연락하며 어머니가 내가 사는 집에 찾아오시며 함께 주무시고는 날 학교에 보내려 애쓰셨다. 몇 년 전, 친구가 말했다. 아직도 우리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있다고. 그 당시 친구가 날 학교에 데려가기 위해 찾아왔지만 내가 일어나지도 않으며 버텼던 모양이다. 친구가 너무 지쳐 우리 어머니께 울면서 "죄송해요. XX 이와 더 이상 친구를 못 하겠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도 힘드셨을 텐데 그런 분께 그런 말을 한 게 아직도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게 그저 그 당시 그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고만 하셨다. 많은 이들을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힘들게 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어머니께는 친구 못 하겠다고 했지만,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친구는 계속 곁에 있어주었다. 한국에서 고3으로 지내면서 스트레스와 자신만의 어려움이 없는 이가 있겠는가. 그런 시절에도 이 친구는 나를 위해 애써주었다. 내가 힘들었던 순간에 자신의 어려움보다 나를 위해 애써줬다. 어떻게 이 친구가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최근에 다른 책을 준비하며 이 친구를 인터뷰하며 내가 했던 질문과 친구의 답변이다. 내가 이 친구를 좋아하는 만큼 친구도 나를 소중히 여겨준다고 느껴져 기분 좋았던 답변이다.
넌 나보다 친구가 많잖아. 사람들도 더 잘 챙기고. 가끔은 그런 네가 내 친구로 언제나 함께 해준다는 게 조금 신기해. 내가 네가 좋은 점을 말할 테니 너는 나에게 내가 좋은 친구인 이유를 말해줘.
내가 그렇다고? 언젠가 내가 "난 낯가리잖아"라고 했더니 다른 친구가 그랬어. "넌 낯가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가려!"라고 나는 그때 "아 맞다!!"하고 정말 인정했지.
나는 네가 너라서 좋아. 같은 고등학생이면서 나를 불러 크리스마스 요리를 해주어서, 다들 문과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그곳에서 이과를 선택하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서, 고등학교 축제에서 가오나시 코스프레를 하던 귀여움이, 나와 음악을, 영화를, 책 등을 통해 취향을 공유할 수 있어서,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철없던 시절 막내딸 친구를 끌어안아주신 좋은 어머니가 계셔서 좋아. 기타를 치며 넉넉한 웃음을 가진 아버지도 친구의 아버지로서 매력적이고, 귀여운 조카 셋을 기르고 치열하게 열심히 삶을 살면서 동생을 늘 지지하는 언니를 둔 점도 좋아. 스스로 늘 다그치듯 열심히 사는 모습도 좋아. (다만 스스로에게 칭찬, 만족도 좀 해주었으면) 거짓 없는 반응 혹은 무반응이 좋아. 우리 엄마에게 꽃다발을 챙겨 온 예쁜 마음도 좋지. 음악을 듣는데 그치지 않고 결국 오랫동안 베이스를 손에 쥔 네가 멋져. 가방 무겁게 어깨 빠지게 다니는 점도 매력이라면 매력이야. 음악 공연을 아무 부담 없이 서로 가자고 할 수 있고 그 어떤 음악도 서로 함께 웃으며 즐길 거 같아서 좋아. 공연장에서 서로 멀어져도 서로 잘 즐기고 있을 거라 믿을 수 있는 점도 좋아.
으~ 좋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했어. 하지만 이 순간 기억해내지 못하고 표현해내지 못한 좋은 순간과 좋은 점들이 더 다고 확신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