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말해서 내 글을 읽는 분은 이미 모두 알고 있듯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글학교에서 주말에 일하고 있다. (본업은 연구원임) 한글학교인 만큼 한글날을 조금 중요하게 여겨서 매년 행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올해부터 합류했기에 한글날은 처음이었다.
약 2주 전부터 한글날 행사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임원진과의 회의에서 한글날 행사에서 김밥아뜰리에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했다. 김밥이라니 처음에는 너무 일이 많은 게 아닌가 싶었다. 50여 명분이 각 2줄씩 싸는 걸로 계획하여 김밥 100줄 분량을 준비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한글날 행사 일주일 전에 내가 쿠킹클래스로 김밥과 떡볶이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재료를 준비해서 만들면서 김밥을 만드는데 필요한 양들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쌀 1Kg으로 김밥 20줄을 만들었기에 쌀 5kg이면 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 단무지 잘리지 않은 통으로 사면 김밥 20줄용에 충분한 걸 알아서 단무지도 얼마나 사면되는지 가늠이 됐다. 계란, 당근 등 각종 재료들에 대해 얼마나 필요한지를 바탕으로 예산을 짜는데 내 쿠킹클래스가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리스트업 했다. 나는 계획을 좋아하고, 리스트 작성하기를 선호한다. 모든 게 한데 정리되어 있어야 맘이 편한 사람이다. 이번에는 준비할게 많아서인지 리스트들을 공유하면 진행되어 맘이 편했다. 각자 해올 것들을 분담했다. 밥솥이 있는 사람들이 밥을 준비하고, 그 외 사람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 재료를 준비해 오기로 했다. 나는 잡채를 만들고, 비건용 유부조림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토요일 행사를 기다리다가 주중에 오징어볶음을 위해 오징어를 샀는데, 오징어 양이 너무 많았다. 몸통이 10개나 있었다. 마침 이틀 전 담갔던 깍두기도 익어가고 있어서 충무김밥처럼 오징어초무침에 깍두기를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해 갈 것이 정해졌다. 잡채, 유부조림, 오징어초무침, 깍두기였다. 크게 준비할 것은 없었다.
한글날 행사는 토요일 11시 시작이었고, 선생님들은 미리 준비를 위해 10시까지 모이기로 했다. 전날 지금까지 정해진 사항들을 하나로 모아 정리하여 표를 만들어 공유했다. 이렇게 해야 맘이 편했다. 금요일 밤에 어느 정도 요리를 해둘 생각이었으나, 다른 일정으로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지났고 술을 마셔 피곤해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6시에 일어나 먼저 잡채를 준비했다. 평소에 쓰던 잡채와 다른 브랜드를 사 왔더니 조금 달랐다. (가격이 반값이라서…저렴한 게 최고지.) 비건잡채라 각종 채소와 버섯을 채 썰어 볶아줬다. 당면도 물에 불린 후, 아주 짧게 데쳐냈다. 당면을 버무리는 게 제일 일이었다. 당면을 1.8kg를 불려 데쳐냈더니 그 양이 제법 많았다. 피곤해서인지 간을 보면서도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만든 잡채 중 가장 맛없는 느낌이었다. 오징어도 데쳐내니 양이 팍 줄어들더라. 오이를 썰어서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를 제거하고는,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설탕, 식초, 참깨를 넣어 잘 버무려냈다. 깍두기도 내가 먹을 것만 남겨두고 챙겼다. 막상 챙기려니 내가 먹을 깍두기가 너무 조금 남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다음 주에 다시 담가야지-싶었다. 마지막으로 맛을 보니 내 입맛엔 잘 익고 맛있었다. 그래도 다들 맛있게 먹어줄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준비된 것들을 쇼핑백에 담아 들어보니 잡채 때문에 제법 무겁더라. 그렇게 한글학교에 도착했다. 행사 제일 먼저 순서인 이곳의 한인 합창동호회 분들이 모여서 리허설을 하고 계셨다. 그 사이 선생님들과 한편에 테이블을 세팅하고 김밥재료들을 모두 꺼내 나눠 담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용 꼬마김밥 재료로 따로 재료들을 더 작게 썰어 준비하기도 하고, 가져온 밥들을 모아 밥에 간을 해서 준비했다.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업 했던 것 때문에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착착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일찍 와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 모든 게 수월했다. 한글학교 행사 때 매번 조금 진행이 늦어졌는데, 이번엔 시간도 시작시간에 바로 시작하고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마음이 편했다.
합창단 소개와 함께 합창을 시작하였다. 아리랑과 아름다운 금강산(?)이라는 두 곡을 하는데, 성악을 전공하는 분들도 함께이고 듣기 좋았다. 좋은 공연을 구경하면서 나는 한편에서 김밥 재료들과 가져온 음식들을 모두 세팅했다. 한분이 야채만두튀김을 가져오셔서 그것도 두고, 다른 분이 제육볶음을 해오셔서 그것도 한편에 잘 두었다. 모든 음식 세팅이 다 되어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내 할 일이 아주 빨리 끝났다. 합창단이 합창을 마친 후, 의자들을 모두 함께 한편에 치워둔다. 한글날에 대한 OX 퀴즈 시간이다. 최종 5인이 남을 때까지 진행하는 거였다. 문제는 쉬운 문제부터 점점 난이도를 높여갔다. 나중에는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김밥을 안 싸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김밥을 싸서 담아두기 시작했다. 충무김밥용으로 김에 밥만 말아 준비하기도 했다. OX 퀴즈는 모두 어린이들만 남아서 아이들이 선물을 받아갔다.
이제 김밥 아뜰리에 시간이었다. 모두 책상을 쫘악 정렬한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나와 다른 선생님이 준비해 둔 김밥 재료들을 가져간다. 한글학교 선생님이 한 명씩 곳곳에서 (주로 자기 반 학생들을 담당하여) 김밥 싸는 법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따라 싸기 시작한다. 내 할 일은 사람들이 김밥을 싸서 가져오면, 김밥을 잘라 접시에 담아주고, 옆에 마련된 음식들을 가져가 먹게 하는 거였다. 김밥을 잘라주고 잘라줬다. 다들 음식을 잘 가져가 만족스럽게 먹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는 게 맘이 너무 편했다.
한 학부모분이 디저트로 케이크도 사 오셨고, 한국 각종 전통차와 한국 커피, 그리고 다른 음료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다들 식사를 잘하는 듯했다. 나는 내 음식을 잘 먹는지가 내 주요 관심사였다. 사람들이 떠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두 번 떠가면서도 깍두기에 오징어초무침을 가져가는 것을 보니 맛이 있구나 싶었다. 한 어린이는 깍두기를 세 번 가져다 먹더라. 잡채가 양이 조금 많아서 한 통 가까이가 남았다. 봉지에 담아 포장하여, 집에 가져가도록 안내하니 잡채도 모두 소진되었다. 가져온 음식들이 모두 동이 나게 사람들이 배부르게 잘 먹은 것 같아 기뻤다. 한국인들이 오징어초무침을 오랜만에 먹는다며 너무 반가워하며 잘 먹어줬고, 깍두기를 다들 맛있다고 해서 뿌듯했다. 잡채도 자신 없었는데, 맛있다며 계속 먹는 사람이 있던 걸로 봐서 그리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다.
나도 수고했고, 한글학교 모든 선생님들도 수고가 많았고, 참석자분들도 모두 아뜰리에도 즐겁게 참여해 주시고 치우는 것도 모두 잘 도와주시면서 함께해 줘서 고마웠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한국의 한글날을 축하하며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날도 모두 세종대왕님 덕분이다. 세종대왕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