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직업적 성취감이 중요하더라

by 이확위

나는 프랑스에서 박사 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딱히 워커홀릭은 아니다. 그렇게 대단히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연구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지금보다는 일하는데 더 즐거움을 느끼며 주도적으로 해왔었다. 프랑스에 와서 일을 한 지 2년 가까이 되었지만, 연구는 뜻대로 되지 않아서 제대로 된 결과 하나 내지 못했다. 실험을 하고, 기대감을 갖고 결과를 기다렸다가 실망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최대한 기대감 없이 그냥 묵묵히 결과를 기다리려고 하는 편이다. 일이 잘 안 되는 것과는 별개로 일상은 다채롭게 많은 일들을 해냈다. 친구들은 나에게 인생의 황금기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도 내게 프랑스에서 한국보다 더 잘 지내는 것 같다며 나의 프랑스 생활에 만족해했다. 하지만 아무리 일상이 다채롭고 즐거움으로 가득 차더라도, 일에서 충분한 성취감을 느끼질 못하니 나 자신이 실패자란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더라.


이런 생각들이 계속되면서 알겠더라. 나에게 일이 꽤나 중요하다는 것을. 일이 곧 나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일 자체를 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일상의 즐거움만으로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기에는 나에게 직업적 성취감이 꽤나 중요하더라. 나 자신의 정체성에 연구원이란 직업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연구원으로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다른 부분들에서 뭘 해내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기분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더라.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나는 적어도 삶에서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만큼 직업에서도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고 싶더라. 그냥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무언가를 느끼며 이 자체에서도 의미를 갖고 싶더라.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일하며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삶 자체에 상당한 스트레스로 찾아온다. 직업적 성과와 평가가 내 삶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머릿속으로 알지만, 분리가 안된다. 그렇기에 프랑스에서의 2년이 주변인들은 많이 경험하고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 않냐며 평가해 주지만, 내게는 제대로 된 논문하나 내지 못한 실패의 시간이란 생각이 크다. 프랑스에서의 시간이 아직은 조금 남아있기에 이 남은 시간 동안, 어떤 결과라도 만들어서 나에게 이 2년 넘는 시간들이 성공적인 생활이었다고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조금 더 애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