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사람을 좋아하고/싫어하고 단편적으로 평가하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는 내게 "사람을 평가하지 마라"라고 조언해 주시며 내 행동을 고쳐주려 하셨었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좋은 사람/ 싫은 사람, 나만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게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저절로 이뤄졌던 것들이다. 그러다 조금은 사회성이 길러진 것일까, 내가 싫은 사람에게도 딱히 티를 내지 않으며 어울릴 수 있게 조금씩 변해갔던 것 같다. 사회라는 곳에서 직장, 학교와 같은 집단 속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만 선택적으로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굳이 누군가를 미워하다 보면, 그게 다 나의 에너지 소모로 이어지더라. 그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싫다고 생각하면 왜 그런지 몰라도 어쩐지 점점 더 미워지는 기분이 들더라.
이 사람은 이런 사람,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 단정 짓고 살아왔지만 계속 살다 보니, 사람은 내 생각보다 다양한 면이 있더라. 사람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서, 종종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내 첫인상을 보고 나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듯이, 내가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경우도 많았더라. 그렇게 사람들을 더 알아가면서 나는 누군가가 밉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기를 조금 멈추게 된 것 같다. 내가 누군가와 엄청나게 가까워지는 건 아직도 어려움이 있지만, 전에 비해 누구를 미워하거나 피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냥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지낸다. 그게 오히려 스트레스도 적더라. 요즘은 내가 있는 연구실의 분위기가 이런 나의 생각과 너무 다르게 돌아가서 상당히 불편한 기분들이 든다.
나는 현재 프랑스에서 박사 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하고 있고 박사과정 학생들이 많다. 연구실에 한 사람이 있다. 나를 잘 챙겨줬었기에 나는 좋게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실의 많은 사람들이 이 친구를 싫어한다. 불편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슬려한다. 그들이 싫어하는 면이 어떤 면인지는 안다. 다만 나는 이 친구의 전부가 이게 아니고, 그런 면이 나에게는 그다지 큰일이 아니기에, 이 친구를 다른 사람들처럼 싫어한다거나 하지 않는 거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었다. 그래도 그들이 뭔가 행동을 한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그저 은연중에 그들의 생각이 표출되는 정도였다. 그때는 연구실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고 연구실의 기본언어가 영어였다. 그런데 내가 오고 일 년이 지나고, 일 년 반이 지나고 점점 외국 친구들은 떠나고 그 자리를 프랑스인들이 채웠다.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프렌치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기들이 편한 불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런치 테이블 위의 언어는 불어가 되었다. 불어를 잘 못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소외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이곳이 프랑 스니까 그렇다고 하자. 문제는 그들이 자기들끼리 뭉치기 시작하면서, 험담이 심해지고, 특히나 이 한 친구에 대해 자기들끼리 모여 조롱하기 시작한 거다. 최근에는 연구실에서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저 멀리서 그 친구가 뭔가 말을 한마디 하면, 모여있던 프랑스인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치고는 "윽"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게 계속되더라. 그 모습이 다 보이는 나는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그 친구가 조금만 저 멀리 가있으면 자기들끼리 불어로 낄길거리며 험담하더라. 이 친구는 서툰 불어로 이 프랑스인들과 어울리려 애쓰는데, 서툰 불어로 얘기하면 잘 받아주지도 않고 한두 마디 상대해 주고는 다시 자기들끼리 빠른 불어로 소통한다.
예전에는 새로운 멤버가 오면 좀 더 다정하게 챙겨줬었다. 이번에 새로운 인턴이 왔다. 점심 식사시간 제일 구석에 앉아있는 새로운 멤버를 봤다.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또 불어로 얘기하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에 이 친구와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내가 전에는 non-French가 더 많아서 영어를 주로 사용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룹에 프랑스인이 많아지면서 주로 불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해 줬다. 그러자 그가 말하길 "거의가 아니라 그냥 전부 프랑스인들이고 불어만 쓰던걸"이라더라. 이제 온 지 일주일 남짓 되었는데, 벌써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 거다. 새로 온 사람을 따스하게 맞아주며 함께 어울려 그룹에 어울리도록 챙겨주던 분위기가 왜 일 년 남짓한 시간새에 이렇게 차갑게 바뀌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인터내셔널 그룹이라 하기엔, 이젠 그냥 프렌치 그룹이 되어버렸고- 새로운 사람이 적응하기 어려운 그룹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중에도 모여서 험담하고 "은따"하는데 끼어들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저 목소리 큰 몇몇이 주도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다. 단순히 아직 어리니까, 성숙하지 못해서라기엔 그 한가운데 정규직으로 이들보다 어른인 멤버도 있다. 정규직인 만큼 이 사람은 계속 있을 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불어를 못하는 나는 이미 소외감을 느낀 지 오래이고, 이런 식은 "은근한 따돌림" (나보다 다른 한 친구)을 지켜보면서 이 사람들에게 나는 물들고 싶지 않아 졌다. 처음에는 아니던 친구가 최근에 그들과 비슷해진 것을 보면서, 내가 이 그룹을 떠나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한 그룹에서 계속해서 함께할 거라면, 아무리 미운맘이 조금 든다 하더라도, 그런 마음은 조금 속에 감추고 적당히라도 두루두루 잘 지내면 좋겠다. 누군가를 미워해서 내게 남는 게 뭐란 말인가. 당연히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간관계를 보다 편하게 하기엔 수월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과 누군가를 미워하며, 사람들과 함께 모여 비웃고, 조롱하고, 험담하고.... 이건 다른 얘기다. 적어도 어른이라면, 단체라면 두루두루 지내고, 미움은 내 맘속에만 가둬두자. 그런 마음까지 모두와 함께 공유하는 것은 집단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한 때, 나도 예전 그룹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며 이런 식의 행동을 했던 것 같아 반성을 하게 된다. 아마 지금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나처럼 반성을 하고, 달라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