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돌아온 지 4개월이 지났다. 이사한 지 한 달, 최대 두 달 내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게 프랑스 법인데 나는 아직도 프랑스의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내가 떠나는 순간부터 나에게 보증금을 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들이 작정한 사기꾼이란 신호는 지금 생각하면 눈치 못 챈 내가 바보인 것만 같다.
우선, 나와 항상 연락하던 자는 부동산 업자였다. 나는 프랑스의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셰어하우스에 대한 정보를 보고는 거기 적힌 연락처로 연락을 했었다. 그게 바로 이 부동산이었다. 처음 집을 둘러보는 날 집은 아주 좋았기에 나는 바로 집주인에게 계약을 원한다고 전해달라고 했었다. 그때도 그 부동산업자 K는 자신이 이 집의 모든 것을 위임받아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나 집주인에 대해 얘기할 때는 Landlord라고 말했다. 집주인이 날 좋게 봐 줘서 세입자로 선택을 해주었고 (한국과는 시스템이 좀 다르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게 되었다. 이때 내가 더 세세하게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봤어야 했을 것 같다. 나중에 살펴보니, 집주인 이름은 부동산업자 K와 그녀의 남편의 이름이 합쳐진 듯한 이름이고, 이들의 부동산사무실 주소와 집주인의 주소가 같다. 그러니, 집주인은 이들 부부인 셈이다. (실제 부부인지 동거인인지는 알 수 없다. 프랑스의 결혼/파트너/ 두 사람의 관계는 보통 한국보다는 복잡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동산 복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업자가 자기 집 거래를 하는 것은 불법으로 알고 있는데, 찾아보니 프랑스는 합법이라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부동산비용을 받는 것도 합법이겠거니 생각했건만,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 지인이 얘기를 듣더니, 집주인인 경우 자기는 부동산비를 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이들이 지독히도 매번 나에게 “집주인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집주인을 제삼자로 칭하던 것은 그들이 집주인이란 사실을 내게 숨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복비를 받아먹은 것도 사기의 하나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처음 집에 들어갈 때와 이사를 나올 때 집 상태를 점검하는 서류를 작성한다. Etat-des lieu (철자 틀릴지도)라고 하는데, 하자가 생긴 경우 보증금에서 제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절차이다. 나는 집에 들어갈 때 나올 때 모두 진행하였지만, 그 서류 사본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집을 떠나는 날도 에따데리우를 하는데 그냥 다 ok더라. 내가 매트리스에 얼룩이 남았는데 괜찮냐고 직접 물어봤을 정도였다. 그때도 K는 괜찮다고 했다. 에따 데디우 서류에는 모두 문제없다고 체크를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청소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서류에 내 연락처와 서명을 마쳤다. 그녀는 내가 그 집에 있는 동안과 떠나는 당일까지는 내가 프랑스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 중 하나였다. 사기꾼의 가면에 내가 속아 넘어간 거다.
한국에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고 보증금에 대한 연락이 없는 건 그러려니 했다. 보증금에서 차감할 것이 있는 경우는 두 다네에 주면 된다고 들었으니까. 그래서 메일을 보냈다. 한 달이 지났는데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뭔가 차감할 게 있는 모양이라고. 보증금에 대해 정산이 끝나면 연락을 달라했는데 답장이 없었다.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도 연락이 없었다. 내 메일에 답장이 없고, 왓츠앱 메신저 메시지에도 답장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내 돈을 떼먹으려 한다는 생각을 이때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들이 조금 위협을 느끼라는 마음으로 아직 셰어하우스에 사는 나의 전 룸메들의 왓츠앱 단체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보증금을 안 줘서 K에게 연락하는데 내 연락에 답장을 안 해. 내가 메일 보냈으니 보고 연락 좀 달라고 전해줘”라고 말이다. 아직 집에 머무는 이들에게도 보증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했다. 이렇게 메시지를 전달하니, 잠시 후 그녀는 뻔뻔스럽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내게 말하길, 2023년에 전쟁 때문에 난방/전기세 오른 거 알지 않냐면서 그때 정산 서류를 이제야 받았다고 하더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난 이미 이때부터 그녀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 모든 게 그저 변명과 거짓말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녀가 친절의 가면을 쓴 사기꿈일 수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이미 가스/전기세 등은 월세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냐 했더니, 계약서에 적혀 저 있는 내용이라고 인상된 경우 그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설명하더라. 그러면서 방마다 라디에이터에 계량기가 있지 않았냐고 했다. 그렇긴 했다. 방마다 계량기가 있다. 그렇게 설명하고는 일주일 뒤 굉장히 성의 없이 대충 사진 찍은 서류를 하나 보냈고, 2023년에 초과된 금액을 방이 네 개라서 네 명의 세입자로 4 등분하여 달마다 21유로 정도가 초과됐다고 했다. (계량기가 있다면서 그냥 총금액을 4 등분했다.) 그리고 여기에 청소비와 매트리스 청소비까지 차감하여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은행계좌 정보를 요구했다. 이미 그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있던 나는, 청소와 매트리스 청소에 대한 영수증과 같은 증빙 서류를 요청했다. 금방 보내주겠다고 하더니 답이 없었다.
일주일 뒤 다시 연락하니 자신이 런던에 출장 중이라며 이번 주 중에 돌아가서 서류를 모두 보내주겠다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또다시 연락이 두절됐다. 내 메일에 답장이 없더라. 그래서 일주일을 더 참고, 이제 나도 참을 수 없어 메일을 보냈다. 이번주 일요일까지 기다리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으니, 그전에 증빙서류들을 보내라고 했다. 뻔뻔하게도 그녀는 이 메일이 보내지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지난번 메일이 지워진 것 같다며 자신이 메일을 못 받았다는 어이없는 변명을 했다. 그러면서 되레 내게 어떻게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할 수 있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얼마나 잘해줬냐면서, 내가 프랑스에서 급하게 집을 찾을 때 자신이 얼마나 서둘러 도와주었냐는 등의 얘기를 했다. 웃긴 건 그 집은 내가 온라인에서 정보를 보고 연락한 거지 그녀가 내게 찾아준 게 아니다. 게다가 받지 말아야 할 부동산비도 받아놓고 어디 그럴 뻔뻔함인지 모르겠다. 집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얼마나 빨리 해결해 줬냐부터 마지막 내가 이사 가는 날 캐리어 드는 걸 도와준 것까지 얘길 하면 “이런 친절한 내게 네가 어떻게 이렇수 있어?!”라는 태도였다. 뻔뻔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녀는 자기들이 바쁘다고 하지 않았냐면서, 파리 올림픽으로 한창 바쁜 시즌이라며 (그들이 스트라스부르와 파리 두 곳에서 활동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으로 계약할 집이라면 진작 다 끝났을 시즌이고, 그리고 그들이 바쁜 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기 어시스턴트에게 서류를 보내라고 얘기를 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무슨 일이든 이런 식의 협박은 다른 걸 다 넘어선다며 최악이라고 말했다. 내게 엄청 실망했다면서 날 몰아세웠다. 은행정보를 보내면 다음 주 중으로 관련 서류를 다 받을 것이고 그다음 바로 보증금을 보낼 거라 그러더라. 이 메일을 받고 나는 정말이지 열이 단단히 뻗친 상태였다. 나는 한동안 그 무엇에도 감정 동요가 없는 아주 평화로운 상태였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녀의 메일 하나하나 모든 항목에 반박하는 메일을 썼다.
-네가 이걸 협박이라 느낀다니 안타까운데 난 그저 알리고 싶었어. 내가 법적 조치를 취하기 전에 말야. 분명 우리 둘 누구도 법적 조치를 원하진 않잖아
-내가 지금 너에게 부탁하고 있니? 나는 내 권리를 얘기하는 거다. 법적으로 늦어도 두 달 내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거 너도 알지 않냐. 그런데 안주는 건 너다. 여기서 잘못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네가 바쁘다고 했지만, 일주일 안에 스트라스부르에 돌아가서 내게 다 보내준다 얘기한 게 너다. 그런데 안 지킨 것도 너다. 어시스턴트에게 얘기했다는데, 그렇다면 지금 내게 메일을 보내서 이런 식으로 내게 화낼게 아니라 일을 안 한 네 어시스턴트에게 연락을 해야 되는 거다. 네가 미안함이 있다면 그래야 하는 거다.
모든 항목에 반박하는 내용을 쓰고는 그들이 분명 내가 보증금이 늦어질 때마다 월 10% 연체료가 붙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돈을 적게 줄게 분명했기에 메일에 적었다. 보증금 차감에 관한 모든 증빙 서류 보내고, 내 은행정보를 보낼 테니 여기로 남은 보증금을 보내라고. 그리고 너희들이 늦은 것에 대한 연체료도 잊지 말라고.
그게 한 달 전이다. 이들은 내게 돌려줄 생각이 없던 거다. 한국으로 돌아간 나를, 그들에게 항상 친절했던 나를 만만한 호구로 본 거다. 그 사기꾼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나는 받을 돈이 1유로가 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받아내기로 맘을 먹었다. 나는 평화주의자인데, 이런 사기꾼들과의 사이에 평화는 없다. 나는 전투모드로 돌입하기로 했다. 이 사기꾼들은 내가 그 집에서 지냈던 모든 기억을 더럽혔다. 이제는 그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려 해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이들만 생각이 난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러니 그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