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줄 때-2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보증금을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커뮤니티가 있다. 그곳에서 글을 올려봤지만 크게 도움 되는 답변이 달리진 않았다. 커뮤니티 안에서 검색을 해보니, 나처럼 보증금을 못 받은 사람이 남긴 글이 있었다. 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 친절하던 집주인인데 이사하고 나니 보증금을 안 돌려줬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법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걸 알아봤다고 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인터넷 로펌을 통해서 집행관이 편지를 보내도록 했다고 했다. 내가 보증금을 못 받은 지 두 달이 지난 후, 프랑스에 사는 지인을 통해 등기우편을 프랑스의 우체국 La Poste를 통해 보냈었다. 전에 프랑스 친구로부터 들었던 말로는, 내가 이걸 보내면, 수령인이 받은 후, 그들이 받았다는 레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법적이 효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프랑스에 사는 지인에게 메일로 편지를 작성해 보내고, 그녀가 그걸 우체국을 통해 보냈는데, 수령했다는 레터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내 집주인이 내 편지 수령을 안 하는 거다. 프랑스에서 전달이 안되면, 근처 우체국에 보관하면서 찾으러 오라는 쪽지를 우편함에 남기고 간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체국을 통한 것과 법률사무소를 이용해 집행관의 편지 배송의 차이는, 집행관의 편지가 배송되면 그들이 수령하지 않은 경우, 수령하지 못한 이유를 증명하지 않으면 수령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법적인 효력이 보다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한인 커뮤니티에서 본 그대로 인터넷 로펌에 접속했다.
내 정보를 입력하고,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입력한 후, 사건 내용을 정리하여 적어 넣었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여 불어로 번역하여 붙여 넣기 하였다. 그런 후, 주고받은 이메일, 와츠앱메시지, 집 계약서 등 관련 자료들을 첨부했다. 140유로 정도 결제가 필요했지만, 받을 돈이 그보다 많으니 망설임 없이 결제하였다. 그렇게 서류를 접수한 지 며칠이 지나고 메일이 왔다. 나와 전화 통화로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는데, 내가 불어를 못하므로 프랑스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부탁했다. 그녀가 전화한 후, 내게 이사하면서 집 상태 점검하는 에테아리우 서류를 첨부하라고 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줬다. 나는 에테아리우를 이사 들어오는 날, 나가는 날 모두 했지만 그들에게 사본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고, 이 사실을 법률 사무소에 이메일을 통해 전달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집행관의 편지가 완성되었으니 확인을 위해 전화를 해야 한다는 메일이 왔다. 나에게 편지를 바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화 통화를 통해 해당 내용들을 모두 확인한 후에 완성된 사본을 보내주는 형태였다. 또다시 프랑스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며 전화를 하고 내용확인을 마쳐주었다. 그날 고마움에 연락을 하면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전화를 한 것 같다. 악질인 내 전 집주인에 대한 얘기와 이 사건에 대해 한참을 얘기한 후에는 내가 떠나온 스트라스부르에 대한 얘기들로 사람들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곧 집행관의 편지가 완성되었다며 내게 사본이 전달되었고, 금요일 편지가 발송되었다. 거기에는 8일 후까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내가 소송을 위한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걸 읽고는 8일 후면 이 모든 게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들도 소송을 원하지 않을 테니 당연히 보증금을 돌려주며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을 거라 생각했다. 마침 바로 그다음주가 여름휴가 기간이라, 휴가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모든 게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À défaut de réponse de votre part sous 8 jours, mon client se verra dans l'obligation d'engager des poursuites judiciaires à votre encontre devant le Tribunal compétent.”
(8일 이내에 귀하로부터 응답이 없을 경우, 제 의뢰인은 귀하의 요청에 따라 법적 절차를 시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관할 법원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휴가에서 돌아온 날, 로펌 사무실에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사건이 해결됐냐고 묻고 그렇지 않은 경우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겠냐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턱 막혔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추가 요금을 결제해야 했다. 내가 이기는 경우 상대방이 어차피 이런 돈을 모두 배상해야 하는 거니 그대로 진행하기로 맘을 먹고 결제를 하였다. 판사에게 쓰는 편지만 새로 쓰면 되었는데 글자수 제한이 있기에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에도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글을 붙여 넣기 하고, 이미 증빙 자료들을 일전에 업로드해 놨었기에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신청이 마무리되었다. 도움을 많이 얻은 커뮤니티의 후기에도 적혀있었는데 법이 바뀌어 법원을 가기 전에 먼저 시에서 조정을 시도한다고 했다. 상대방과 모두 출석한 가운데 조정 시도를 하고 여기서 결렬될 경우 법정에서 만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보증금 반환이 늦어질 때마다 월 10%의 연체료가 있기도 하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의 패소가 거의 확실하므로, 대부분 조정 단계에서 보증금을 돌려준다고 했다. 나도 이를 기대하고 있으면서 한 편으로 해당 글에서 조정할 때 직접 참가해야 한다고 적혀있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집 보증금이라 하니 굉장히 큰 금액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에서 보증금은 최대 월세의 두 배 정도일 뿐이다. 그러니 그리 대단한 돈은 아니다. 프랑스 왕복 항공료에 숙박비 등, 조정에 참여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로 갈 경우에는 보증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그러니 나는 그들이 실제 조정 일정이 잡히면 그때쯤이라도 겁을 내고 보증금을 주기를 기대하는 거다.
법원에 서류가 발송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는 아무래도 조정에 참여해야 하는지가 걱정되었다. 참가가 필수라면, 아마도 내 집주인이 이를 알고 내가 못 올 거라 생각해서 돈을 안 줄수도 있다 생각했다. 법률 사무소에 문의를 했다. 내가 한국에 있어서 참가가 어려운데, 본인 참석이 필수냐 질문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돈을 내는 서비스라 그런지 이 법률 사무소는 모든 게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프랑스답지 않은 느낌이랄까.) 전화로도 진행할 수 있으며, 프랑스에 있는 가족을 대리인으로 세울 수도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는 가족이 없으니 대리인은 안되지만 전화로도 조정을 진행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그렇다는 건, 통역해 줄 사람만 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큰돈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적은 돈도 아닌 보증금을 받기 위해 몇 달을 생고생하고 있다. 마땅히 내가 돌려받아야 할 돈인데, 악질 중의 악질들에게 걸려서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다. (내 프랑스 지인들도 내 얘기를 들으면서 그들도 경험해보지 못해 이들이 진짜 사기꾼, 악질이라고들 했다.) 차라리 큰돈을 탐해 사기 치는 거라면, 욕을 하면서도 이해가 가겠다. 이 정도면 돌려줄 법도 한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내가 고국으로 돌아간 외국인이라 어찌 못할 거라 만만히 보고 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들에게 당한 피해자가 나뿐이 아니기에 확신할 수 있다.
내가 그곳에 있을 때 먼저 떠났던 불가리아 어린 친구가 있었다. 이제 갓 대학생으로 인턴십을 위해 프랑스에 단기간 왔던 친구였다. 그녀가 돌아가고 반년이 지나고서 보증금을 못 받았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들이 자기 연락을 모두 무시하고, 메신저에서는 차단당했다고 했다. 그런 그녀는 내가 보증금으로 고생할 때쯤, 구글 맵에서 이들의 부동산을 찾아내어 리뷰를 남겼다. 보증금을 안 돌려주고 연락이 안 된다고 말이다. 그 후에 연락이 왔다고 했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리뷰를 쓸 거라 하면서 그들이 돈을 보내왔고 리뷰를 지웠다고 했다. 일 년 가까이 연체된 보증금에 대해 그들이 과연 어린 그녀에게 연체료를 줬을지는 확인을 못해봤지만… 아마도 프랑스인이 아닌 그녀는 그런 사실을 잘 모를 테고, 그들이 줬을 것 같지 않다.
그녀가 돈을 받고, 난 얼마 전 구글맵에서 그들의 부동산을 검색해 봤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더라. 누군가 리뷰를 쓸 것이 두려웠는지 그들은 구급맵에서 그들의 부동산정보를 지워버렸다. 그들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부동산 주소가 바뀌어 있었다. 그들 부동산사무실 주소는 그들의 집주소와 동일한데, 집 근처 도로 한복판으로 부동산 주소가 설정되어 있더라. 프랑스는 한국과 다르게 대부분 인터넷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집 정보들을 찾아 연락하게 된다. 그러니 구글맵에서나 부동산을 검색할 일은 크게 없는 셈이다. 그러니 그들이 구글맵에서 자신들의 부동산을 지운 거겠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그들이 진짜 사기꾼들임을 증명해 주는 것만 같다.
이제 법원에서 조정기일이 잡히면 연락이 올 거다. 그 뻔뻔한 사기꾼들의 얼굴을 보며 사건을 해결하고 그들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지만 한국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전화를 통해 조정에 참가할 생각이다. 이 지긋지긋한 일이 얼른 끝나기를 바라며, 다음 글은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라고 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