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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Sep 05. 2024

서류까지 변조한 프랑스 집주인과의 분쟁을 끝내다

며칠간 정신이 없었다. 프랑스 전 집주인과 보증금 분쟁의 해결과정에 있었는데, 집주인이 드디어 보증금에 차감에 대한 증빙서류들과 함께 돈을 이체해왔다. 메일을 받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모두 법적 최대치로 차감을 했다. 나는 셰어 하우스에 살았는데, 집 점검비를 집 전체 89제곱미터에 대해서 했고, 다른 룸메이트들도 있었기에 내가 이사나갔다고 해도 청소는 내 작은 방 하나만 했어야하는데, 그 방에 대한 청소 청구비를 보니 4시간 청소했다고 하더라. 무슨 장난질인가 싶었다. 


프랑스에서는 이사 들어갈 때와 나갈 때, 재고목록 체크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이걸 “에따데리우 (Etat des lieux)”라 부른다. 나는 집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에따데리우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에따데리우를 하면 일반적으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사본을 준다고 했다. 내 전집주인은 단 한번도 사본을 주지 않았다. 내가 나올 때 했던 마지막 점검시, 그녀는 다 ok라고 했다. 내가 매트리스에 얼룩이 있는데 괜찮냐 하니 상관없다고 하면 에따데리우에 아무것도 작성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내게 서명을 받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에따데리우에 적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보내온 에따데리우에는 이것저것 잔뜩 적혀있었으며, 첫 페이지 또한 내가 봤던 서류가 아니었다. 그녀는 서류를 위조/변조한 것이다. 그걸 보는 순간 스트레스가 하늘까지 치솟는 기분이었다. 내 보증금이 그리 큰 돈도 아니다. 그런 돈조차 안주려고 이런 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게 너무 어이가 없으면서 이런 일을 당한 다는 사실에 열이 받았다. 


프랑스 법원의 담당 조정위원에게 메일을 보내며 이런 얘기를 하니, 이의가 있으면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내 소식을 알게 된 많은 프랑스에 있는 프랑스인 지인들이 내 전 집주인의 행각에 ridiculous, insane, crazy, typical등 단어를 쓰며 말했다. 프랑스인이 봐도 말도 안되는 행위들이었고, 그들에게는 미처 말하지 않은, 에따데리우 서류의 위조, 변조의 경우 챗GPT에 물어보니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그들이 처벌받게 되면, 앞으로 더 이상 부동산을 못할 수도 있었다. 사실 내가 바라는 것, 내가 받아야할 돈을 모두 받는 것보다 (어차피 큰 돈 아니니까), 그들이 처벌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를 꼬박 고민했다. 소송을 하느냐, 여기서 포기하느냐. 


다음 날 아침이 되었고, 눈을 뜨며 생각했다. 더 이상 여기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그들이 잘못했고, 그들은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이다. 그런데 나는 프랑스에 있지도 않고, 승소를 할 거라 생각되지만 소송이란 것이 원래 어찌될 지 모르는 것 아닌가. 게다가 한 두번 이런일을 벌인게 아닌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쯤은 여러 개 만들어 뒀을 것 같기도 하고, 패소한다면 내가 모든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위험 부담이 큰데 내가 얻는 것은 약간의 돈과 정의다. 정의라는 값진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이 하루 동안도 이토록 스트레스 받는데 언제 끝날지 모를 소송을 잘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난 이것을 끝내기로 했다. 


법원 조정 담당자에게 이대로 마무리한다고, 합의한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도 잘 생각했다며, 첨부된 합의서에 사인을 해서 원본을 프랑스로 보내라고 했다. 서류를 출력했다. 사인을 했다. 이제 프랑스로 보내기만 하면, 나 이 지긋지긋한 전 집주인과의 보증금 분쟁에서 탈출이다. 결국 받아내긴 했지만, 잃은 것이 더 많다. 법원 조정까지 가기 위해 400유로 가까이의 돈을 써야했고, 그들이 위조, 변조한 서류를 통해서 차감한 내 보증금이 800유로 정도 이고, 게다가 보증금 지급이 늦어줘서 법적으로 줘야하는 연체료조차 주지 않은 것이 400유로이다. 그러니 소송까지 진행하지 않으면서 내가 포기한 돈은 1600유로이다. 한화로 하면 230만원 정도이다. 하지만 이 돈보다 나는 내가 더 소중하다. 내 일상이 더 소중하고. 비록 그들에게 법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이나마 그들을 귀찮게 만들었고, 조금이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그들에게 조금이지만 저항했다. 또한 덕분에 프랑스에서 세입자가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게되었다. 230만원과 그동안의 스트레스로 조금은 더 현명한 사람이 되었다. 다시는 이렇게 당하진 않을 것 같다. 


그들이 언젠가는 꼭 법의 처벌을 받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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