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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Sep 23. 2024

브로콜리와 초고추장

초고추장은 좋은 소스다. 워낙 소스 자체가 매콤 달콤 새콤 다채로운 맛이 밸런스 있어서 무엇과 먹어도 맛있다. 다만 소스 자체의 맛이 강하고 존재감이 있다 보니, 함께 먹는 재료 본연의 맛을 해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초고추장 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 스치는 음식, 식재료들이 몇 가지가 있다. 오늘은 그 몇 가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초고추장 덕분에 한국 식탁에서 살아남은 식재료 중 대표적인 게 바로 브로콜리일 것이다. 처음 먹었던 브로콜리가 바로 데친 브로콜리와 그 옆의 초고추장이었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브로콜리의 자체의 맛이라기보다는 초고추장이 지배하는 맛에 데친 브로콜리는 잘 익혀진 채소의 식감을 줄 뿐이었다. 그러니 먹는데 부담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브로콜리를 매번 초고추장에 찍어먹어 왔는데 브로콜리가 일반적인 식재료로 자리 잡고 나니 식당들에서 브로콜리를 넣어 함께 볶은 요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른 재료들과 볶아진 브로콜리를 맛보면서 브로콜리 자체의 맛을 알게 되었다. 브로콜리만의 맛을 느끼고 그걸 좋아하기 시작하니 데친 브로콜리를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때 초고추장이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에 만들어 식탁을 채웠던 브로콜리 트리

비슷한 예로, 회가 있다. 해안가 근처에 살아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횟집에 자주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회를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콘치즈와 메추리알 정도만 먹곤 했다. 그러다가 산 낙지를 먹기 시작했고, 이후 회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은 초고추장이었다. 매운맛을 조금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초고추장 맛으로 먹기 시작했다. 회는 어차피 아무 맛없지 않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조금 자라 어른들처럼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먹으면서 회가 생선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회 자체의 맛을 조금씩 즐기기 시작하니 초고추장이 그 맛을 다 가린다고 느껴져서 이제는 회를 먹을 때 초고추장은 피하는 편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재료 본연의 맛을 위해 초고추장은 먹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진 않다. 변함없이 초고추장과 함께하는 요리도 있다. 그건 바로 오징어 숙회나 문어숙회이다. 씹히는 쫄깃함이 있어서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처음 혀에 초고추장이 먼저 닿아 초고추장의 맛이 느껴지지만 계속해서 오징어나 문어를 씹으면서 그 자체의 맛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초고추장 속에서도 그들의 맛이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이렇듯 씹히는 느낌과 함께 자체의 맛이 좀 더 있는 것들은 초고추장과 함께해도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비슷하게, 다시마나 미역과 같은 해조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역을 식초와 함께 새콤하게 무쳐낸 것을 더 선호하긴 하지만, 초고추장에 찍어먹어도 여전히 맛있게 자신의 맛을 드러낸다.


이렇듯, 초고추장처럼 한 가지 재료에 대해서도 먹다 보니 점점 내 취향을 알게 되더라. 어릴 적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먹어왔지만, 계속해서 먹어오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점점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내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들이 재밌다. 예전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러하다고 점차 달라지는 취향도 재미가 있다. 그렇기에 요즘에는 어떤 음식이라도 "난 싫어"라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기에 함부로 그 음식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게 된다. 음식에 대해서도 그렇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경험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된다. 브로콜리와 초고추장, 예전에는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조합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 것처럼, 나의 취향에 대해 더 알아가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음식을 경험하고 또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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