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를 보내게 해 줘서 고마워"-1

레스토랑 군몽 & 환기미술관

by 이확위

생각지 못했던 날이 기억에 남을 좋은 날이 되어 우리의 삶에 기억되기도 하는 법이다. 어제의 하루는 어쩐지, 내 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기억에 남아 나의 삶을 채워 줄 그런 날이 될 것 같았다. 그 기억들이 조금은 더 생생하게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아 기록을 시작한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모닝페이지'를 쓴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보았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쓰는 것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한다며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일어나서 45분을 넘기기 전까지 인간의 뇌가 자기 방어를 하지 않는다 말했다. 그러니 온전한 내가 되어 자신의 생각이 과감 없이 솔직하게 쏟아낼 수 있다는 게 그들이 주장하는 바였다. 그러니 서둘러 45분 안에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어제의 시작은 약 한 달 전이었다. 흑백요리사에 나온 "데이비드 리 (고기깡패)" 셰프의 식당 '군몽' 런치 예약에 성공했다. 흑백요리사에 나온 셰프들의 여러 식당이 있지만, 유튜브에서 이 식당의 후기를 보고는 꼭 가보고 싶다 생각해서 예약앱에 접속해서는 종종 예약 오픈 시간에 맞춰 대기를 하다가 예약을 시도하곤 했다. 매번 4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접속을 하곤 했고, 내가 예약을 누르는 순간 이미 예약이 다 나가버리곤 했다. 피 말리는 콘서트 티켓팅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그다음 날은 예약을 시도하길 포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 딱 한 달 전의 그날밤 그림을 그리고 있던 11시 52분 정도였을 거다. 문득, 아 곧 식당 예약 시작하겠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생각난 김에 시도해 보자고 들어갔다. 조금 기다렸다가, 예약을 누르는데 예약이 계속 진행되는 거다. 하면서도 나는 '어? 어? 되네? 어? 나 예약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당황을 하며 그때부터 혹시 뭐라도 잘못 눌러 예약이 취소될까 봐 긴장한 채 예약을 해냈었다. 예약인원은 3명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같이 가고 싶은 게 언니 또는 친구였는데, 어쩐지 이곳은 유명한 곳이라 모두가 가고 싶을 수도 있어서 3명으로 했다. 언니와 가더라도- 언니 주변의 누군가가, 친구가 가더라도 친구의 남편도 같이 가고 싶을 수 있고-그런 생각에 3인으로 예약을 진행했다.


엄마, 그리고 10년 만에 이모

힘들 게 예약을 성공했지만, 내가 함께 가려했던 두 사람은 모두 이 날 점심만은 시간이 안된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연락해 봤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예약금도 15만 원을 낸 곳이다. 예약금이야 식당에 가기만 하면 환불받고, 이틀 전까지는 무료 취소니까 상관없지만- 이렇게 예약금이 비싼 곳들은 보통 정말 장사가 잘되는 곳들이다. 그러니 이곳은 인기가 많은 곳이 확실한 거다. 함께 갈 사람을 구하지 못 한채 일주일 전이 되어버렸다. 이제 며칠 내로 먹메이트를 구하지 못하면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종종 혹시 예약일을 변경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예약오픈 시간에 접속해 변경을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선택지는 누군가를 찾아내거나 취소하는 거였다. 취소는 싫었다. 정말 먹어보고 싶은 곳이었으니까-


그러다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와 함께 가면 어떨까. 엄마는 입맛이 까다로운 분이니까, 분명 좋아할 거다. 내가 어느 레스토랑을 찾아가 이런저런 것을 먹었다며 전화로 조잘거리면 엄마는 종종 "너는 잘도 다닌다. 엄마는 그런데 하나도 갈 줄 몰라."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안에는 '엄마도 가고 싶은데, 엄마는 혼자 갈 줄을 몰라'가 담겨있다고 느끼곤 했다. 그런 엄마의 말이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가자고 얘기해 볼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당 하나를 위해 기차를 3시간이나 타고 서울에 오시게 할 수는 없었다. 뭔가 함께 할 다른 것으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바로 떠오른 것이 바로 몇 주 전에 다녀온 '환기미술관'과 바로 그 옆의 '석파정 서울 미술관'이었다. 환기미술관에서 느낀 경이로운 그 느낌과 서울미술관에서 여러 작품들을 한가롭게 관람했던 기분 좋은 기억이 있었다. 분명 엄마도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어쩐 일인지 요즘 전화를 금세 받곤 하는 엄마였다. 휴대폰을 가까이 두고는 내내 일을 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바쁜 게 마음에 걸렸다.

"엄마, 2월 15일 토요일에 뭐 하세요?"

"15일 그게 언제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그날은 뭐 없는데."

"엄마, 흑백요리사 보셨어요?"

"응? 그게 뭔데."

"아.. 그 방송에 나온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거든요. 그런데 내가 예약에 성공했어요. 원래 언니랑 가려고 했는데, 언니가 그날 약속이 이미 있대요."

"그래?"

"네, 거기 예약이 12시 40분 런치인데, 런치 하고. 엄마 김환기 아세요?"

"누구?"

"되게 유명한 한국 작가인데, 그분 미술관이 작년 지난달 12월에 재개관했거든요. 다녀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중섭 알죠?"

"이중섭 알지."

"이중섭, 천경자 작품들이 있는 서울 미술관도 바로 옆이라서- 식당에서 런치 하고, 미술관들 구경하면 딱일 거 같아서요."

"아~ 15일이라고? 음.. 그러면 엄마가 일요일에 성당 일이 있으니까, 토요일 아침에 올라가서 저녁에 내려오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제가 3명 예약했거든요. 유명한 식당이라 누군가는 더 가고 싶을 거 같아서. 엄마, 같이 가고 싶은 사람 있으면 얘기해서 같이 가요. 주변에 누구나, 아니면 막내이모라던가."

왜 그때 막내이모가 떠올랐던 걸까? 막내이모는 어릴 적 언니를 거의 키워주셨던 터라 언니와의 관계가 두터웠고 그에 비해 나와는 그만큼의 교류는 없었다. 못 뵌 지도 어쩌면 10년은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만나 뵙지 못한 지도 한참이었다. 엄마와 막내 이모가 얼마나 자주 연락하는지도 알 수 없었는데, 그냥 그 순간 떠오른 게 이모란 점이 지금 생각하니 조금 신기하다.

"아, 그럼 엄마가 이모에게 연락해 볼게."

"네, 연락해 보시고 알려주세요."

그러고 다음날쯤이었나, 엄마가 막내이모와 연락이 됐다며 이모도 함께하기로 했다 말했다.


군몽에서 "행복한 식사"

어쩌다 모이게 된 우리 세 사람. 엄마, 나, 막내이모. 이런 조합으로 만난 적이 있기는 했던가? 엄마가 오시는 용산역에서 모두 모여서 근처 식당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아침 일찍 일어나 그림을 그렸다. 첫 그림이 망했지만, 두 번째 그림이 꽤나 완성도 있게 그려져서 뿌듯한 마음을 가진채 기분 좋게 외출 준비를 했다. 용산역에서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이모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이모는 처음에 나를 보고는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다가 이내 반가운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안아주며 인사해 주었다. 일산에 사시는 이모는 서울로 자주 오진 않으신 다셨다. 안 가본 곳에 갈 때면 매번 긴장이 되고 그게 무서워서 가는 곳만 주로 간다고 했다. 이모가 엄마가 식당에 가자고 얘기했을 때 그런 얘길 했다고 했더니 엄마가, "야, 언니는 이 시골에서도 가는데, 근처 사는 네가 못 오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고 했다. 엄마도 동생에게는 엄마가 아닌 언니구나 싶었다. 언니들 앞에서 우리 동생들은 그저 어린 동생일 뿐이다. 처음 어디 가려면 매번 긴장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에 이모도 엄마와 똑같구나. 나도 조금은 그런 면이 있는데-하면서 얘길 했더니. "어머, 너도 그래? 아 그게 핏 속에 있나 봐..."라는 말을 하셨다. (그런 것도 유전이 될까 하는 잠시 T적인 사고를 하긴 했지만...) 엄마도 도착하셔서 모두 반갑게 모여 식당으로 향했다. 엄마와 이모도 만난 지 한참이 되었던 것 같다. 서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언제 봤지? 그게 언제지? 하시곤 했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만났지만 역시 언니와 동생이라 그런지, 가족이란 이런 건지, 한치의 어색함 없이 바로 어제 만난 듯 친한 모습이었다. 엄마가 이렇게 편하게 대하는 상대가 얼마나 될까 싶어, 오늘의 조합이 꽤 좋은 조합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 도착해 예약된 좌석에 앉았다. 서버분도 친절했고, 우드계열로 장식되어 있는 식당은 아메리칸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식당의 정체성이 맞는 느낌이었다. (아메리카에서 스테이크 하우스를 가보진 못했지만.) 내가 미리 메뉴로 주문할 것을 다 고민하고 왔기에 내가 생각한 메뉴들을 보고는 엄마와 이모의 의견을 확인하고 주문을 진행했다. 오늘은 내가 산다고 했다. 보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받기는 했다. 그 금액이 대단치 않을 뿐...) 그리고 두 분을 초대한 셈인데, 엄마와 이모, 그리고 다 큰 딸이 모여 N빵을 하는 것은 모양새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러니 내 몫인 것이 맞았다. 그렇게 가격은 생각 안 하고 주문을 했다. 스타터로 감 샐러드 1개 /사이드로 방울양배추와 브로콜리니 2가지/스테이크는 안심 스테이크 400g (300g이 최소 주문단위)/ 그런 후, 오늘의 생선인 도미구이/ 마지막으로 탄수화물을 먹기 위한 파스타, 그러나 너무 묵직하지 않게 채소 가득한 프리마베라 파스타를 선택했다. 엄마가 너무 많은 거 아니냐 하셨지만, 나는 "부족한 것보다 나을 거예요. 부족하면 아쉽잖아요."라고 말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눴다. 이모는 오기 전에 이곳을 찾아봤다고 했다. 사촌 동생인 J가 "엄마 거기 예약하기 힘든 곳이야."라고 알려줬다며, 그 후 유튜브로도 식당을 찾아봤다 했다. 음식이 순서대로 서빙이 되어 모두가 셰어 할 수 있도록 접시를 하나씩 앞에 가져다주는 모습이 좋았다. 처음 나온 것은 감 샐러드였다. 감으로 어떻게 샐러드를 했나 했더니, 아주 얇게 슬라이스 되어 있었다. 루꼴라, 라디치오, 피칸, 페타치즈, 블랙 올리브, 메이플과 쉐리식초를 이용한 드레싱이었다. 오늘은 내가 호스 트니까, 모두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엄마가 한 입 먼저 드셨다. (나는 엄마를 식당에 모시고 가면 엄마의 반응을 기다리느라 엄마가 드시기 전에는 긴장이 되어 먹질 못한다.)

"오 엄청 맛있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 건가?‘라고 조금 놀랍게도 엄마는 바로 반응을 보이셨다. 이내 이모도 한 입 드시고는 말하셨다.

"맛있네. 이 조합들이 너무 좋다. 드레싱도 너무 좋고."

나도 맛을 보고는 맛에 대한 이 품평회에 참가했다.

"음, 그렇네요. 피칸, 페타, 올리브 이런 것들 전부 함께 먹으니까 너무 좋고, 각각 들어있는 조합의 비율? 양들이 각자 알맞게 들어있는 것 같아요. 맛있다."

시작이 좋았다. 우리가 샐러드를 다 비우고 나니, 접시를 치워주고는 이내 다음 메뉴로 오늘의 생선을 가져다주었다. 요리를 시키자 그에 맞는 순서로 가져다주는 것이 좋았다. 생선이기에 앞접시도 데워져 나와서,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세심함도 좋았다. 오늘의 생선은 도미를 팬이 아닌 그릴에 구워 불의 맛을 입혀 구워낸 것이 좋았다. 파인애플을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고 했고, 바질 오일이 뿌려져 있고, 위에 이런저런 여러 재료들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 부드러운 생선살에 불 향이 나는 그 맛이 도미로는 먹어보지 못했었기에 신선했다. 소스와 함께 곁들여져 있는 완두콩들도 맛있었다. 뿌려져 있는 바질 오일도 바질향 가득한 것이, 생선에 신선함까지 더해지며 다채로운 맛들의 향연이었다.

생선이 나오기 전에, 미리 고기를 가져다 보여주었다. 400g 시켰지만 30g을 더 주셨다 말했다. 조금 전에 봤던 고기가 구워져서 나왔다. 고기가 담긴 플레이트는 단출했다. 고기, 소스, 구운 채소 하나. 굽기는 미디엄레어를 추천한다 말해 그렇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완벽한 미디엄 레어가 되어 나왔다. (엄마가 미디엄으로 하고 싶다하시기에 나는, "미디엄 레어를 추천하신다는데요? 추천을 믿어봐요."라며 엄마를 설득했다.) 스테이크가 잘라져서 제대로 익은 단면이 보이게 위를 향해 정렬되어 있었다. 가운데 소스로 고기에 얹어먹을 허브와 오일로 만든 소스가 있었다.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이탈리안 살사 베르데인가?) 그 옆에 라디치오 채소를 구워낸 것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우리가 시킨 두 가지 사이드로 방울양배추와 브로콜리니가 나왔다. 테이블을 한가득 채웠다. 방울양배추는 반으로 잘라 구워내고, 토마토등의 재료들과 함께 볶아진 모양새였고- 브로콜리니는 내 생각과 다르게 바지락과 함께 볶아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후, 곁들임 사이드로 감태버터, 돼지감자절임과 홀그레인머스터드가 나왔다. 엄마는 고기를 한입 드시더니, 또다시 감탄하듯 말하셨다.

"최고로 맛있다. 이게 맛있는 스테이크구나."

이모는 방울양배추를 드시고는 맛있다며 감탄하셨다. 나도 방울양배추를 먹고는 말했다.

"이게 그을려진 그 탄듯한 데서 오는 그 불의 향이 그게 함께하는 게 되게 좋네요."

"맞아. 아 너무 맛있다."

"이게 뭐라고?"

"이건 감태버터, 그 옆이 돼지감자. 아마 장아찌 같을 거 같아요. 나 돼지감자 안 먹어 봤는데."

"엄마도 돼지감자는 처음이야."

"어머, 이걸로 이렇게도 만드는구나. 난 저 버터가 계란인 줄 알았잖아."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

이모와 엄마를 앞에서 지켜보며, '아, 좋다.'란 생각이 들었다. 음식도 물론 좋다. 음식이 좋았지만- 음식보다 앞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우리가 함께 즐기는 그 순간이 더 좋았다. 그 모습을 남기고 싶어 엄마와 이모의 다정해 보이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집에 돌아와 다시 본 사진은 정말 자연스레 찍혀 둘이 서로 기대듯 서로에게 가깝게 다가가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런치를 먹으러 간 것이고 기대한 대로 맛있었던 것은 물론 기뻤다. 하지만, 처음으로 함께 한 이 세명의 조합이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기분이 좋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먹어본 것 중 최고로 맛있는 것 같다."

라고 엄마가 말하셨다.

"그렇게 말하시니까, 기쁘긴 한데.. 여태까지 뭐 했나 해서 반성하게 되네요."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네가 지금 이렇게 데려와줘서 이모도 엄마도 이런 걸 먹어보는 거지. 지금이 중요한 거야."

우리는 식사 내내 대화가 끊이질 않았고, 남김없이 음식을 싹 비웠으며, 내 얼굴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이모의 얼굴에는 내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이런 것을 "행복한 식사"라고 하면 될까? 오늘의 런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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