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를 보내게 해 줘서 고마워"-2

레스토랑 군몽 & 환기미술관

by 이확위

우리의 대화는 끊임이 없네

식사를 마친 후, 이모가 커피 마시러 가자는 말에 군몽을 기분 좋게 나서서 주변에서 카페를 찾았다. 좋은 커피집 있겠지라고 엄마가 말하셨다. 아무 곳이나 가야지-라고 생각하던 나는 그래도 제법 괜찮은 곳으로 가야겠단 생각에 고민을 하다 한 곳을 선택하여 갔는데 아마도 제법 인기가 있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카페 안에서 보니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다 이 카페를 찍기도 하고, 관광객들도 제법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날은 어쩐지 운이 좋았다.


식당을 내가 계산을 하자, 그 이후부터 엄마와 이모는 서로 카드를 내밀기 시작했다.

"어우, 됐어 언니. 커피는 내가 살게."

이모의 말에 나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이모는 따뜻한 라테,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너무 뜨겁지 않게 얼음 두 개, 그리고 엄마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나와의 여행에서 에스프레소의 맛에 눈을 뜬 후 종종 카페에서 그때의 에스프레소를 기억하며 주문하시곤 했다. 그렇게 세 잔의 커피가 나왔다. 각자의 취향대로 커피를 마신다. 엄마를 위해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고 잘 녹여 준비한 후 전달한다. 엄마는 한 모금 마시고는 나쁘진 않다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셨다. 그래도 "맛없다"가 아니란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군몽에서 식사를 하며 한 시간 반 가까이 내내 대화를 나눴고, 카페에서도 한 시간 가까이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이모는 사촌 동생들에 대해 얘기를 하기도 했고, 이모의 얘기를 들으며 한참을 만나지 못한 사촌동생들을 떠올려봤다. 첫째인 W는 성인이 된 후, 본 적이 있어서 내 머릿속에 어른이 된 모습이 떠올랐는데, 둘째 J 이는 어릴 적 모습에서 멈춰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시간이 될 때, J가 불편하지 않다면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군몽 예약을 4명 했다면 J도 함께 왔을 텐데라는 아쉬움의 생각을 조금 하기도 했다. 이모에게 언뜻 들으니, J는 생각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그걸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는 듯했다. 잘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표현하는 데 조금은 능숙해졌다 느낀다. 이모도 나를 만나고는 완전히 변했다고 말하시기도 했고, 오래간만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전보다 밝아진 모양새에, 그리고 나에 대해 말하는 모습들에 모두 긍정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J는 이미 J대로 잘 살아가고 있지만,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분명 글쓰기를 통해 보다 더 정리된 사고로 나 자신을 알아갈 게 분명하다. 그런 맘으로 이모에게 J에게 글쓰기를 해보라고 말해보라며 얘기했다. 그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느냐고. 그리고 누군가에 보여주는 글이 아니더라도,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은 결국 문장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막연함 속에서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이 되어 보다 확고해진다고, 그렇게 나의 경험을 전했다.


집회, 그로 인한 교통 체증- 이것도 추억이다

미술관을 두 개를 가려고 계획해 뒀던 터라 대화가 계속되며 내 마음은 조금 급해졌다. 어차피 가는 동안 시간이 걸리니 가면서 얘기를 더 나누자 하고 카페에서 일어나 나왔다. 택시를 잡아 탔더니, 목적지를 보고는 기사님이 말했다.

"아 부암동? 여기 지금 못 가요. 집회 때문에 다 막아놨어요. 난리예요 난리."

그래서 우리는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후, 그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동대문역사공원 역 근처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하자, 택시에서 내린 후 지하철로 이동을 하여 경복궁역까지 갔다. 경복궁 역에서 버스를 타고 환기미술관까지 가야 했기에, 혹시라도 버스가 우회하진 않는지 경찰청 사이트에서 집회로 인한 교통통제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내가 가려는 정거장이 적혀있진 않기에 안심했다. 하지만 이내 도착한 정거장에는 모든 버스들이 "우회"라고 적혀있었다. 이모와 엄마는 날씨도 좋은 데 걸어자했지만, 걸어서는 45분이었다. 오르막기롣 있었다. 조금 걷다가 택시를 타야 했다. 다행히 운이 좋게 택시가 잡혔다. 기사님은 차에서 내내 투덜거리셨다. 역대급으로 교통 통제를 해놨다고. 4차선을 전명 통제를 해버렸다고. 예전 촛불집회 때 수준이라며, 오늘 내내 콜 잡히면 전화해서 상황 말하고 취소하고 내리 고를 반복했다면서....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어 보이는 게 안쓰러울 정도였다.


걸어가던 중에 맨다리로 치마를 입고 가는 커플이 보였다.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는 보는 것만으로 추운지 말씀하셨다.

"어우, 맨다리 얼마나 추울까."

엄마의 말에 이모는 말했다.

"나도 어릴 땐 안 그랬어. 저래도 안 추울 나이가 있어."

"그랬냐? 나는 옛날부터 추웠던 것 같은데."

"아니야. 언니도 엄마가 춥게 입었다고 뭐라고 하고 그랬어."

엄마와 이모의 대화에는 어린 시절 함께했던 그런 언니와 동생의 추억들이 담겨 있어서, 내가 모르는 엄마의 옛날들을 듣는 것이 좋았다. '오늘, 조합 좋구나'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예술에 둘러싸여 세상의 걱정을 잊다

환기 미술관에 도착했다. 바로 몇 주 전에 왔던 터라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이모가 이번에도 "이모가 살게"라고 하셨다. 엄마가 경로우대가 된 다는 사실이 (어쩌면 너무 당연한데), 그게 조금 충격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엄마는 그냥 엄마인데, 엄마가... 우리 엄마가 어느새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펐다. 그렇게 일반 2명, 경로우대 1명으로 세 장의 티켓을 사서 미술관에 입장했다. 들어서서 첫 관람실에서 이모와 엄마는 벽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 읽고 작은 그림들을 각자 보고는 둘이 서로 마주 보고는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림들을 가리키며, "색감 너무 좋다", "나 저런 거 좋아하거든." "어쩜. 저거 봐."라며 얘기를 나눴다. 그 후, 본격적으로 작품들이 전시된 곳에 들어서자 둘이 꼭 붙어서는 좋다 좋다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취향이 모두 같은 것보다는 아마도 김환기 작가의 작품이 모두의 가슴에 와닿을 만큼 예술적 감동을 주는 작품이란 거겠지. 계속해서 작품을 보면서, 모두 가슴속 울림을 느낀 듯했다. 어찌 보면 이게 뭐라고-싶을 수도 있는 단순한 선과 형태, 그러나 그 색의 조합과 배치 속에서 오는 안정감. 미술을 배우지 않아 설명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게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그저 원초적인 인간의 마음속 그 어딘가에 느낌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예술인가라는 생각이었다.


2층에서 가장 작은 방에는 환기 작가가 연필로 드로잉 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아주 단순한 드로잉이지만 모든 선에는 확신함으로 그어진 듯 단호한 모양새였다. 나무가 그려진 것을 보고는 이모가 말했다.

"언니, 난 아직도 기억나. 내가 어릴 때, 우리 방학 숙제 해야 하잖아. 방학이 끝나가는데 숙제가 너무 밀린 거야.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엄마가 나무를 그려줬어. 그런데 나무에 눈이 쌓인 그 모습을 표현해서 그려준 거야. 엄마가 뭐 배우고 그런 게 없었잖아. 그런데 엄마는 그냥 그릴 줄 알았던 거지. 난 그 나무가 아직도 생각나."

이모의 말을 듣자, 얼마 전 누군가 할머니에게 미술도구를 사주셨더니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분이 재미를 붙여 계속 그리시고는 엄청난 재능을 보이더라-라는 SNS상에서 본 글들이 떠올랐다.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재능의 여인들이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그렇게 살아갔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내가 이런 감성적인 생각을 하는데, 어쩌면 나보다도 이성적인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하더라.

"엄마, 나한테는 안 그려줬는데."

웃음이 나왔다. 엄마다웠다. 이런 순간 F들이 말하겠지. "T발 너 C야?!!!"


3층에는 대형작품들이 줄질이 전시되어 있다. 김환기 작가의 대표작들인 점 표현한 그림들이 있는데, 처음 본 순간 나는 이 작품들이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인 줄 알았지만 이내 평평한 cotton canvaas 위에 유화로 그려진 평면이란 것을 보면서 작가의 표현력과 기술에 놀랐다. 그 커다란 파란 작품 앞에 서있으면 작가가 하나하나 그려낸 그 수많은 점들이 내가 가진 모든 걱정을 사그라들게 하며, 오롯이 그 작품 앞에 서있는 지금의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차분함을 주었다. 엄마는 벽에 종종 쓰여있는 작가의 글귀들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깊이 있게 사고하니 이런 작품들까지 만드나 보다며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모는 그림을 보다가 돌아서서 나를 보고는 말했다.

"너무 좋다. 고마워. 여기 데려와줘서. 정말 바깥과는 딴 세상 같아."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그림 앞에 서있는 모습에서 내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가 좋아한 이곳을 그들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은 원래 숨길 수 없는 법이다.

미술관을 둘러보고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운이 좋게도 미술관에서 나오자마자 지나가던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경복궁역까지는 막히지 않게 갈 수 있다기에 바로 탔다. 역시 이 날은 운이 좋았다. 경복궁 역에서 내리자마자 집회로 인해 시끄러운 각종 소음과 본래 사람이 많은 구역인지라 복작거렸다. 그곳에 내리자마자, 이모가 조금 전 완전 딴 세상에 있다 온 기분이라 말했다. 경복궁역에서 이모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음에 다시 또 만나자고 말했다.


엄마에게 읽어주다

이모와 헤어지고 엄마와 나는 용산역 방향으로 향했다. 엄마의 기차는 8시 40분경이었다. 시간은 넉넉했고, 미리 저녁으로 태국 식당을 예약해 두었다. 지난여름, 말레이시아로 함께 떠난 휴가에서 엄마가 태국 식당에서 너무 잘 드시던 모습이 떠올라서 근처에 괜찮은 곳을 찾아 미리 예약하고는 그곳으로 엄마를 안내했다. 파파야 샐러드인 쏨땀은 역시나 잘 드셨다. 그런 후, 팟타이도 잘 드셨다. 그곳 메뉴인 타이 파스타가 나왔는데, 매콤하면서 기름기가 많고 조금 중식의 느낌이 났다. 기름기가 많고 제법 자극적인 맛이라 엄마의 취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말했다.

"여기는 그냥 그렇다. 맛있는 식당은 아니 에. 점심에 비하면."

"아,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여기도 이 분야식당에서 잘하는 곳인걸요. 애초에 일종의 스트릿푸드 같은 메뉴들인 거고.. 그리고 가격이... 가격이 점심은 여기의 5배인데요."

엄마는 가끔 이런 솔직함으로 애써 준비한 사람의 힘을 빠지게 하곤 한다. 무조건 칭찬만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냥 조금- 가끔은 이런 솔직함 때문에 엄마를 만족시키기가 어려운 걸 알기에- 조금은 어려울 때가 있을 뿐이다.


저녁으로 탄수화물이 많았기에, 나름 다이어터인 (그러기엔 이 날도 이미 너무 많이 먹었지만) 나는 엄마에게 용산역까지 걸어가길 제안했다. 20분 거리였고, 이 날 밤은 그다지 춥지 않고 서늘한 정도였다. 그렇게 걸어가며 계속 대화를 나눈다. 가족들에 대해 얘기한다. 아버지나 언니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엄마의 바쁜 일상이라던가... 계속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도 이런저런 많은 것들을 하고 싶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혼자 뭔가를 하는 걸 못한다고 말했다. 두려운 모양이었다. 혼자서 해본 적이 없으니까. 젊은 사람들도 안 해본 것을 시작할 때는 두려운 법인데, 하물며 엄마의 연세에는 다른 것을 시도한 다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본래 자연은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평온한 것이니까, 변화에는 힘이 필요하니까. 그런 엄마를 돕고 싶다 생각했다. 오늘이 지나고 엄마를 위해 생각을 해야겠다. 엄마를 훈련시켜야겠다. 엄마가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다닐 수 있도록, 엄마의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 게 내가 도와줘야겠다. 내가 딸이니까. 딸이 아니고서야 누가 도와줄 수 있겠는가.


용산역에서 기차 시간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 지난번에는 내가 피곤하여, 역에만 모셔다 드린 뒤 엄마 혼자 1시간을 기다리게 하고 먼저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 피곤해서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방어했다. 하지만 엄마께 죄송한 마음이 계속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함께 앉아 기다렸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엄마께 권했다. 요즘 읽고 있는 최진영 작가의 산문집 [어떤 비밀]이었다. 엄마는 몇 장 읽고는 공감되는 게 많다며 좋다 하셨지만 글씨가 너무 작아 읽기 힘들다 하셨다. 그렇게 책을 덮으시기에, 내가 줄 쳐둔 글귀들을 읽어줘도 되겠냐 말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책을 읽어 드렸다.


"아무리 살아봐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듯 살아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일들이 있다. 삶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서 동시에 존재하는 커다란 직소퍼즐이다. 지금 겪는 일의 의미를 나는 모른다. 언젠가 이 일과 이어지는 퍼즐이 나타날 것이다. 의미는 채워지고 해석은 달라질 것이다.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어질 수 있다." (p.36)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됩니다. 일어났으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p. 63)


"살아온 날만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절반을 살았다고 말해도 될까요. 종이를 반으로 접듯 인생을 반듯하게 접어봅니다. 스무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내가 만납니다..(...)... 그렇게 계속 접다 보면 나는 점점 작아지고 인생의 모든 순간은 한 점에서 만나겠지요. 죽음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까요." (p. 117)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읽어주는 책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정도 책을 읽어준 후에는 최근 내가 친구에게 쓰고 있는 엽서 시리즈에 대해 얘기했다. 엄마에게 읽어보라 링크를 보냈지만, 오늘 돋보기가 없다며 글씨가 작아 안 보인다 셨다. 이번에도 "제가 읽어줄까요?"라고 말하고는 엽서 중에 제일 맘에 드는 내용을 골라 읽어드렸다. 엄마도 친구 '강'을 잘 알기에,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좋아하셨다. 엄마는 내가 읽어 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런 친구가 있는 게 서로에게 참 좋겠다 말하셨다. 기차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엄마에게 말했다.

"제가 요즘 식단으로 건강하게 먹고 운동도 하고, 규칙적으로 루틴들을 지키면서 컨디션이 좋아요. 제가 컨디션이 좋을 때와 안 좋을 때가 정말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딴 사람이래요."

나는 내가 좋다는 것을 얘기하는데, 이런 게 엄마의 마음인 것일까. 엄마는 내가 안 좋을 때가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러면 안 좋은 날을 어떻게 해?"

"음... 그런 날은 일단, 누워 있다가 그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죠. 다시 정신 차리고 일어나서 보통 계획을 다시 세워요. 이전의 계획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시 잡으려 애써봐요."

"계획을 못 지켜서 힘들거나 한건 아니고?"

"그렇진 않아요. 계획에서 어차피 지켜할 것들 우선으로 지키고 있고, 다른 것들은 그저 소소한 것일 뿐이에요. 요즘에 감사일기를 써서, 그냥 그걸 한번 쭉 읽어봐요."

"감사일기?"

"네, 하루에 감사할 것을 세 개씩 적는 거예요. 대단한 게 아니고... 보실래요?"

나는 가방에서 내 불렛저널노트를 꺼내 들고는 하루의 날짜 옆에 자기 전 채워 넣는 3개의 감사한 일들의 리스트를 읽어드렸다. 우연인가 운명인가. 내가 펼쳐든 장의 감사일기에 엄마에 대한 얘기가 적혀있었다.

"이건 2월 9일이네요. 시장에서 좋은 재료들로 장을 봐서 감사하다. 그림이 만족스럽게 잘 그려져서 감사하다. 엄마와 1시간 전화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 그런 걸 그렇게 적는 거야?"

"네, 대단한 걸 적는 게 아니라. 그냥 하루에, 점심이 맛있어도.. 오늘 도시락 맛있어서 감사하다-이렇게 뭐라도 적어요. 그러면 세 개정도는 언제나 있거든요. 그러면 안 좋은 순간에 그 감사일기 부분들만 쭉 읽어보는 거예요 그러면 드는 생각이. 그래.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거 좋다. 엄마도 그런 거 해야겠다. 적어두질 않으니까 생각들이 안 나거든. 어우 오늘 너한테 좋은 거 배웠네."

그렇게 대화를 하며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향했다. 엄마와 헤어지기 직전 인사를 나눴다. 엄마는 내내 웃음을 지고 계셨다. 편안한 웃음이었다. 오늘 하루가 좋았다는 뜻이다. 엄마는 속일 줄을 모르는 사람이니까.

"오늘 너무 고마워.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어."

우리는 안는 법을 쑥스러워 잘 모른다. 서로 손을 잡는 정도이다. 엄마와 함께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의미로 서로에게 마음을 담아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손을 한번 꽉 잡고, 그렇게 헤어졌다. 엄마와 헤어진 후 돌아가는 길에 많은 경우에, 내가 오늘 엄마에게 왜 이랬지-하며 후회하며 자책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 날은 그런 순간이 없었다. 나는 오늘 잘했다. 뿌듯한 기분에 나는 생각했다. '이번 달에 한 것 중 오늘 하루가 가장 잘했어. 오늘이 가장 잘 보낸 날이야.'라고.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한 행복이었으니까.


나는 오늘 엄마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안겼다. 이런 게 아마도 행복한 하루가 아닐까 하는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도 이런 것을 "행복"이라고 느꼈을까. 엄마가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엄마와 이런 날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2월이 채 끝나지 않았다. 2025년에는 엄마와 더 많은 순간들을 행복으로 만들자. 어쩐지 올해의 나는, 전보다 더 행복에 가까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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