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엽서를 보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프로젝트라 하니 뭔가 거창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저 꾸준히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엽서는 무지 엽서를 사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건데. 엽서에 적고 싶은 글들을 먼저 적고 그 메시지와 관련된 그림을 그린다. 엽서를 보내는데 430원 밖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체국에 가서 알았다. 우체국에서 한꺼번에 산 우표가 너무 못생겨서 우표를 붙인 내 엽서마저 못생겨지는 기분이었다. 인터넷 우체국을 통해 예쁜 우표들을 주문한다. 우표값만큼 배송비가 들었지만, 나의 만족감이 그 배송비보다는 크니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해외에 보내는 건 얼마일까 알아보니, 국내나 해외나 동일하게 430원이었다.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해외로 가는 것들이 있는데 엽서 한 장 끼어 가져가는 건 쉬워서 그런 걸까? 어차피 무언가는 배달걀 일 있을 때 같이 배달해 주는 걸까? 엽서는 왜 이렇게 싼 건가 의아했다.
그렇게 엽서를 보내는 게 아주 저렴하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친구"강"에게 보내는 엽서에 그림을 그리고 메시지를 담는 과정들이 즐거웠다.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생각하거나, 말로 할 때는 낯간지러워 표현하지 못하던 것들을 글로 적어냈다. 그렇게 지난주에 처음 엽서를 보냈고, 그 엽서가 어제 강의 집 우편함에 꽂혔다.
-대박사건!
강에게 메시지가 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내 엽서를 받은 반응이었다. '그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었는데, 강은 정말 기뻐했다.
- 아주 멋져.
-실물이 더 예뻐 흥분ㅋㅋ 너무 좋다
-너무 좋은 기분 안겨줌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보고는 우리끼리 "역시 아무리 책으로 봐도 원화는 못 따라가는구나."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강이 내 엽서도 그렇다 말했다.
-그림 디테일 ㅠㅠ
-원작을 못 따라간다고 하잖아 우리가.
-스캔본으로 봤지만, 원화가 주는 감성이 더 있어 ㅠㅠㅠ
-너무 좋아 진짜 최고의 선물이야.
-누군가에게 무언갈 선물 받은 기억들이 있을 거잖아. 그중에 최고야.
이렇게 폭풍처럼 메시지를 보내왔다. 진심으로 맘에 든 모양이었다. 이 날 우체국에 가서 주말 내내 그렸던 대여섯 장의 엽서를 더 보낸 참이었다. 앞서 보내 강이 이제야 받아 든 엽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것들인데도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한 번에 대여섯 장의 엽서를 보내버려서, 강이 엽서의 지옥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강이 이렇게 좋아하는 게 강이기 때문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좋아해 주는 모습이 기뻤기에-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다.
마침 카카오톡을 보니, 연구실 옆자리 동생이 생일이 전날이란 걸 알았다. 바로 옆 사람에게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생일 축하하는 엽서를 그려본다. 예쁜 컵케이크 사진을 찾아서 그려본다. 원본 사진과는 조금 다르게 디테일들을 내 맘대로 추가한다. 최근에 새로 산 금색 물감으로 금빛을 내어 반짝이게 꾸며본다. 바로 옆자리기 때문에 그냥 전달하면 되니 우표는 필요 없다. 그림 뒷면에 가득 생일 메시지를 적는다.
내가 이 연구실에 온 후 덕분에 잘 적응하고 지낼 수 있었다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는다. 제법 귀여운 생일 카드가 완성된 듯했다.
다음으로 강에게 보낼 엽서로 그림을 그렸던 거지만, 생일축하를 놓친 프랑스에 있는 친구가 생각났고, 이 그림엽서로 쓰고 싶은 멘트가 떠올랐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하늘이기에, 그의 삶도 이처럼 빛나기를 바라며 생일 축하를 건네고 싶었다. 그렇게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 엽서를 보내면 생일로부터 너무나도 늦어질 것 같아 사진을 찍고, 왓츠앱으로 전송한다. 내가 전한 그림을 보고는 대단하다며 너무 멋지다고 좋아하기에 주소가 이전과 그대로냐며 보내주겠다 묻는다. 바뀐 주소를 알려온다. 우표를 붙인다. 프랑스지만 국내와 똑같은 430원이다. 고종황제의 금빛 옥쇄가 사진의 우표이다. 우표에도 마음을 담는다.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림을 그리고 메시지를 담아본다. 결혼하며 원래 고향인 제주로 돌아간 친구이다. 겨울 제주하면 떠오르는 감귤을 그려본다. 어째서인지 그림이 너무 잘 그려졌다. 베스트 작품이 나와버렸다. 쨍쨍한 샛노란 빛의 예쁜 엽서가 완성되었다. 엄마가 되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던 친구의 모습에 대해 메시지를 적어낸다. 그녀가 찾은 행복을 축하해 주고 제주도에 놀러 갈 테니 얼굴을 보자고 말한다.
또 다른 친구를 위한 그림을 그린다. 그 친구가 요즘 일로 힘들어하기에 즐거움을 상기시킬만한 것을 그리고 싶었다. 예전에 드럼을 치던 친구기에 드럼을 그릴까 하던 차에, 단체방에 휴식을 취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꽃이 장식된 아늑한 집 거실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사진이었다. 그에게는 이게 휴식이구나 하는 생각에 꽃병과 위스키를 그려본다. 썩 맘에 드는 그림이 나오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다음번에 더 예쁜 엽서를 보내자는 마음을 가지고 엽서를 그대로 보내기로 한다. 친구에게 요즘 일이 너무 힘들어 지쳐 보인다며, 힘내라고 말한다. 언젠가 힘내라는 말이 지치게 한다고 누군가가 방송에서 얘기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미 힘내고 있는데 뭘 더 힘내라는 거냐고 말이다.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이 친구도 분명 힘내고 있을 테니, "이미 충분히 힘을 내고 있다면, 장하다고 칭찬할게!"라며 엽서를 마무리한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지금까지 그렸던 엽서들을 보여주면서 혹시 엽서를 받고 싶으면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친구들에게서 주소가 온다. 주소를 보내온 친구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그 사람이 좋아하는- 그 사람과 관련된 나의 추억들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내가 이미 그렸던 반고흐의 카피작 해바라기(물론 원작과는 완전히 다르다)가 좋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이미 그 엽서는 강에게 보냈던 터라, 새로운 반고흐 그림을 따라 그려주겠다 말한다. 그런 후 반고흐 작품들을 뒤져 내가 그릴만한 것을 찾아본다. 파란 꽃이 예쁜 그림을 찾았다. 그 친구를 생각하며, 친구가 맘에 들어하길 바라며 그림을 그린다. 얼마 전 아내가 임신한 친구에게 아내분은 잘 지내는지 안부인사를 전한다. 친구가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바빠져서 한동안 모임에 못 나올 것을 걱정했던 것이 기억나서, 내가 너 없는 동안 모임을 잘 꾸려나갈 테니 걱정 말라 적어본다.
선생님인 친구가 있다. 대학생 때는 제일 친했던 사람 중 한 명인데, 졸업 후 어쩐지 제대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 친구에 대한 많은 기억은 대학교 때 함께했던 기억들 뿐이다. 그때 그 친구가 농담처럼 "당구장 차리기"가 꿈이라 말했다. 그 꿈을 기억하며 당구대를 그려본다. 시간 될 때 만나서 같이 놀자고. 대학생이 아닌 완전 어른이 된 너의 꿈에 대해 얘기해보자며 엽서를 적어간다.
프랑스에서 지냈던 스트라스부르를 그렸다. 엽서는 그렸는데, 누구에게 줘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마침 주소를 보낸 다른 한 친구가 또 있었다. 내가 프랑스로 떠날 시기에 코비드 시국이었기에 사람들을 만나 제대로 작별인사를 못했었다. 그때 이 친구가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나와 인사를 나눴다. 그게 고마웠다. 그 친구의 인사를 받고 떠나 스트라스부르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러니 이 엽서는 그 친구를 위한 것이다. 사실 우리 둘은 대학교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졸업 후에, 친구가 모임에 나오면서 전보다는 교류가 생겼다. 그럼에도 그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나, 뭘 그려야 하나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없어 우리가 알아가야 할 게 더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은 많다. 더 가까워지면 된다. 이 엽서가 그 길을 더 활짝 열어주길 바란다.
언제나처럼 그림을 모두 그리고는 제일 친한 친구 "강"에게 사진 찍어 보낸다. 반고흐풍의 꽃 사진을 좋아한다. 다른 작품들도 카피해볼까 하는 생각에 (카피라 말하기 부끄럽지만)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몇몇 작품을 말하기에 그중에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에"를 골라 따라 그려본다. 사실 처음에는 모네의 "수련" 중에서 한 작품을 골랐지만, 물감이 덕지덕지 발라져 정확한 형태가 구분되지 않는 모네의 그림을 내 실력으로 따라 할 수가 없었다. 과감하게 그리다가 포기하고는 바로 진한 파란색으로 뒤덮는다. 반고흐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로 한다. 그렇게 슥슥슥 그려본다. 어차피 크게 노력할 필요 없다. 노력해서 똑같은 그림이 그려질 리가 없다. 그저 느낌만 내보려 그려본다. 그런 후 사진을 찍어 강에게 보낸다. 방금 그린 거냐고, 이렇게 빨리 그려냈냐며 대단하다고, 너무 예쁘다 좋아한다. 오늘의 마지막 엽서까지- 모두 잘 마무리가 되었다.
가까이 함께하질 못하기에 아끼는 마음은 있음에도 어쩐지 점점 멀어진다 느껴지는 친구들이다. 그래도 여전히 내 사람들이다. 각자의 일상이 바쁠 뿐이다. 지금까지는 모두가 내게 다가와줬다. 그렇게 친구가 되고, 지금껏 인연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다가갈 차례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마음들을 엽서에 담아 보낸다. 엽서를 받고, 그들 모두 기뻐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