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있을 때, 이민 가서 살고 있는 한인분들을 좀 알게 되었었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이 그리운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란 나라보다는 한국에 있는 그들의 사람들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들 말이다. 물론 새로운 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인연들도 만났겠지만, 함께 했던 추억이 가득한 옛 친구들이나, 누구로 대체할 수 없는 가족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 말이다. 나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은 딱히 ‘그립다’ 라거나 ‘보고 싶다’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친구나 가족들을 보기 힘들었던 건 비슷했고, 오히려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전보다 더 활발이 전화를 하고 연락을 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나는 굳이 한국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자신에 대해 조금은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난 혼자서도 잘 살아.'라면서 말이다.
작년 4월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2년 반 만에 만난 부모님은 전보다 흰머리가 늘었고 (두 분 다 염색을 안 하신다), 전보다 조금 더 작아져 있었다. 나는 이미 더 이상 크지 않기 때문에 제 자리인데, 2년 만의 부모님은 그 길지 않은 시간사이 조금 작아져있었다. 그 모습에 마음 어딘가 아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두 분은 각자의 일 때문에 거의 주말부부와 같은 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오피스에서 일하던 중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어쩌냐..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큰일 난 듯한 엄마의 목소리에 놀라 서둘러 기차표를 예매하고 달려가서 만난 아버지는 멀쩡하셨다. 그날 아침까지는 아팠는데, 이제 괜찮다고 하셨다. 그렇게 종종 엄마가, 어떤 날은 아버지가 조금씩 편찮으실 때가 있다. 두 분 다 큰 병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레- 예전과 같지 않을 뿐이다. 더 이상 젊지 않고 몸이 세월이 흔적을 남기며 약해졌을 뿐인 거다. 내가 찾아가서 아버지를 뵈었을 때는 기운이 충분하다 느꼈다. 괜찮겠거니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피곤함에 제대로 일어나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어제의 기운은 나에 대한 반가움 때문이구나 싶었다. 매일 아침 아버지는 홀로 힘든 몸을 이끌고 일어나고 계시구나 하는 마음에 더 자주 찾아와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맘을 먹고 이후 연속으로 찾아뵌 것이 기껏해야 두 번이었다. 운전면허가 있지만 운전할 줄 모르는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집에서 서울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30분)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오송역으로 간다. (1시간) 오송역에서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1시간) 총 2시간 30분의 거리이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으로 이까짓 2시간 30분 얼마든지 움직여야지-싶으면서도 그저 피곤함에 매번 져버리는 내 몸뚱어리다.
설 연휴에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었었다. 그때, 최근 몇 달 동안 힘들게 하는 일이 있어서 그 일에 대해 울분을 토하셨다. 몇 주 전에 독감으로 조금 고생을 하셨는데, 스트레스가 심하니 잘 낫지도 않는 듯 하다셨다. 하지만 건강에 대해서라면 아버지가 전문가이니 스스로 잘 알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명절에 아버지를 뵙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 언니와 연락을 했다. 설연휴 동안 해외에 가있느라 찾아뵙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조카들을 데리고 다녀온 모양이었다. 언니가 말했다. 많이 늙으셨다고, 건강이 걱정된다고. 엄마와도 통화를 했다. 아버지가 건강이 회복이 더디다며 걱정하고 계셨다. 그래도 찾아가면 기운이 나신다고 하더라. 그 말에 이번 주에는 내가 찾아뵙겠다 말했다.
아버지께 전화로 이번 금요일에 퇴근 후 찾아뵈겠다 전화드렸다. 전화를 하면서도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 걱정이 되었다. 얼른 가야겠구나 싶었다. 금요일 저녁 기차는 이미 매진이었다. 3시 정도가 최선이었다. 반차를 쓰거나 연차를 쓰고 가야겠구나 싶었다. 찾아뵙겠다 말하고 바로 다음 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어제보다 힘이 실려 있었다. 몇 시쯤 도착하냐는 것이었다.
"금요일 몇 시에 도착하니?"
"금요일에 조금 더 일찍 올 수 있니?"
"금요일에는 장어를 먹자."
아버지의 기운 찬 목소리의 전화를 받고 오히려 조금 슬퍼졌다.
아버지를 찾아뵙기 전날, 나는 병원 검진이 있었다. 병원에서 건강상의 문제로 식이조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요즘 아버지가 당도 잘 안 잡히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 당뇨 진단을 받으셨다.) 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시며 주로 사 먹고 계실 테니, 분명 아버지 식단에는 당이 넘치도록 많을 거라 생각했다. 유튜브로 당뇨 식단에 대해 영상을 여러 개를 시청한다. 내과 의사가 운영하는 채널에서 정보를 보기도 하고, 요리연구가의 영상을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아버지의 식단을 생각한다. 점심은 밖에서 드실 테니, 아침과 저녁을 생각한다. 내가 가서 냉장고에 준비해 두면 바로 해 드실 수 있는 메뉴들로 식단을 짜본다.
아버지를 찾아뵙는 날이다. 직장에는 쉰다고 말해뒀기에, 아침부터 여유가 있었다. 아침에 할 일들을 마치고 요리를 시작한다. 혈당을 더디게 올리려면 먹는 순서가 중요하다고 했다. 채소부터 먹고, 그다음 단백질, 마지막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더라. 그러니 채소 반찬이 필요하다. 각종 나물 재료들을 사 왔기에 나물들부터 무치기 시작한다.
-미나리를 데친다.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꾹 짜내고는 다진 마늘, 참기름, 소금으로 간을 하고 조물조물 무쳐낸다. 향긋한 미나리 향이 봄기운을 머금어 한 입 먹으니 힘이 나는 느낌이다.
-배추를 데쳐낸다. 내가 종종해서 먹는 배추찜의 양념이다. 다진마늘, 다진파, 마른고추, 간장, 대체당, 식초. 새콤하게 샐러드마냥 무쳐낸다.
-간단하게 밥에 얹어 먹을 수 있는 가지조림을 만들어본다. 가지를 잘라서 기름 두른 팬에 껍질 부분이 먼저 올라가게 하여 가지를 익혀준다. 그 후에 뒤집어 살 부분이 바닥에 닿게 하고 만들어둔 양념장을 넣어 조려낸다. 양념은 다진 마늘, 간장, 식초, 대체당, 마른 고추를 넣었다.
-쉽게 만들고 조금 놔두고 먹을 수 있게 마늘종 조림을 준비한다. 아직 제철재료가 아니라 수입산 마늘종이라 두껍기도 하고, 맛이 영 약하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제철이 아니니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콩나물을 데쳐낸다. 데친 후, 바로 프라이팬에 얹어서는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양파로 조리듯이 볶아내 준다. 우리 집만의 우리 엄마표 콩나물 조림이다.
-요즘 한창인 제철재료 섬초를 꺼내든다. 섬초의 붉은 뿌리부근을 칼로 잘 다듬는다. 데쳐내고는 다진 마늘, 참기름, 소금으로 무쳐낸다. 맛을 본다. 달다. 역시 제철 재료이다.
-단백질을 위해 두부조림을 준비해 본다. 맛을 본다. 평소보다 맛이 영 부족하다. 부엌 한편에 참치캔이 보인다. 캔을 따서 참치살을 넣어본다. 참치도 단백질이니까. 참치두부조림이 완성되었다.
-아침으로 간단히 데워드실 수 있게 들깨순두부탕을 준비해 본다. 멸치가 없어 육수는 간단하게 다시마로 낸다. 생표고버섯이 있어 버섯을 듬뿍 잘라내어 함께 국물을 우려낸다. 그런 후, 국간장, 멸치액젓, 다진 마늘을 넣어 국물을 만들고, 들깨가루를 풀어 간을 본다. 그런 후, 순두부를 넣고 적당히 큼직하게 숟가락으로 푹푹 눌러 잘라준다. 순두부의 물에 조금은 싱거워졌기에 마지막으로 간을 다시 맞춘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오이를 썰어본다. 오이소박이로 십자모양 칼집을 넣을까 하다 먹기 편하게 작은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 소금에 절여둔다. 시간이 지난 후, 재워둔 오이로부터 나온 물기를 버린다. 미리 만들어 식혀둔 찹쌀풀에 액젓, 대체당, 다진 마늘을 넣고 버무려 맛을 본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부추도 잘라 넣고 양념을 완성하여 오이와 버무린다.
시계를 본다. 한 시간 반.
완성된 반찬들을 사진으로 찍으며 생각한다.
'역시 난 손이 빨라.'
반찬들을 가방에 모두 챙겨두고 기차를 타고 아버지께로 향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몇 주 새 아버지의 흰머리는 더 늘어나 있었다. 전보다 더 말라 더 작게만 느껴졌다. 저녁에 먹자던 장어는 아버지께 누군가 고맙다며 장어를 구워주기로 했던 모양이다. 그 집에 가는 거였다. 도착해 보니, 태어나서 본 장어 중 가장 큰 정말이지 내 팔뚝만 한 장어가 네 덩어리나 있더라. 그걸 손수 굽고, 양념을 바르고, 잘라 준비해 주더라. 깻잎, 생강을 계속 채워주시고, 도라지 무침, 베트남오이절임, 갓김치가 들어간 파김치, 콩나물무침과 같은 각종 반찬과 함께 차려진 상이 었다. 태어나서 장어를 이렇게 배 터지도록 먹어본 적이 있나 싶을 때, 느끼하지 않게 칼칼하게 된장찌개 하나 끓여준다며 신선한 고추를 듬뿍 넣어 고추향이 기분 좋은 칼칼한 찌개를 내어주셨다. 이 분들이 그래도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를 좋아하며 챙겨드리는 듯해 고마움을 느꼈다.
다음 날에야 아버지를 위한 상을 차릴 수 있었다. 전날 장어를 주신 분들이 아버지를 위해 끓여주신 자연산 버섯들을 이용한 버섯전골도 있기에 함께 데워 상을 차려본다. 아버지는 피곤하신 지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계셨다. 상을 차리고 아버지를 불러본다.
"아버지 아침 드세요."
아버지를 위해 요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