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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머리를 비우고 주변을 살펴야 해

by 이확위

우리는 종종 서서히 변해갔음에도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변해버린 뒤에야 뒤늦게 깨닫곤 한다. 매일 보는 일상 속 세상은 종종 그저 일상의 배경으로만 존재할 뿐, 우리의 눈과 머릿속에 크게 기억되지 않곤 한다. 그렇기에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문득, 봄이 왔음을 깨닫는다거나 계절, 시간의 변화를 인식한다.


일하는 곳과 집이 가까워 도보로 이동한다. 매번 같은 길로 걸어가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매일 지나치곤 한다. 그러다 문득, 문을 열고 바라봤던 어느 날 푸른 잎들 사이에 노란 개나리가 활짝 폈더라. 분명 개나리가 하루 만에 핀 게 아닐 텐데, 개나리 꽃 봉오리가 돋아나고 활짝 만개하기까지 난 그들의 변화를 전혀 알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변화에 무감각한 반응이 너무 많은 정보처리로 우리 뇌에 올 과부하를 방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태어나서 얼마 안 된 아기들은 모든 언어에 동일하게 반응을 한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라면서, 자기 주변의 언어를 인식하게 된 후에는- 주변의 언어에 더 반응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우리는 자라면서 보다 집중해야 할 것과 흘려보내야 향 것들을 구분하며 살아가는 거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가까운-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 대해 그들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는 일들이 종종 있다. 언제나 있으니까- 그들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는 거다. 그들에게 집중도가 줄어드는 거라 해석해야 할까?


변화 없는 일상의 반복이 대부분 사람의 삶을 차지할 텐데, 그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계속 의식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계절의 변화를 인식했던 날은 어땠는지, 오피스 창밖에 어느덧 푸른 잎들로 가득 차 있던 그 모습을 인식했던 그 순간 내가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 순간 나는, 하던 일을 마치고 숨을 돌릴 겸,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을 둘러봤었다. 그러자 배경처럼 존재하던 창밖의 나무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즉, 머리를 비우고- 온전히 그 순간 나의 주변에 나를 맡기고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둔 거다.


삶 속에 어려움이나 어떠한 일들이 있다 해도 소중한 이들을 위해 때때로 다른 모든 것을 잠시 제쳐두고- 그들과의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삶의 배경이 아니니까. 지나가는 계절이나 피고 지는 개나리 정도는 놓쳐도 되지만- 함께하는 이들은 절대 놓쳐도 되는 그런 가벼운 것들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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