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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것이 많기에 완성하지 못한다

by 이확위

나는 어쩌면 말이 그다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생각은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단편적이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일상 속에서 나는 제법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에 가깝지만, 어찌 된 일인지 노트북 앞에 앉거나 빈 노트를 마주하면 언젠가부터 그 안을 채우고 싶은 내용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여기저기에 새로 쓰려는 주제들로, 브런치 메거진 또는 브런치북의 가제를 지어둔 것만 모아도 10개 가까이가 된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다 쏟아내며 쓸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한 가지 이야기에 매달려 완성할 만큼- 그 한 가지 스토리에 열정적이지 않은 거다. 이거 좀 쓰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들기에 다른 것을 끄적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새롭게 떠오른 다른 이야기를 쓰게 되고- 이런 일의 반복이다 보니, 완결한 매거진이나 브런치북은 얼마 되지 않는다.


브런치에 첫 글을 포스팅한 게 2022년 9월 1일이더라. 그러니 벌써 3년에 가까운 1040일이 흘렀다. 그동안 650편에 가까운 글을 쓰고, 작품으로 모아둔 것이 34개가 되었다. 작품으로 모아둔 것 중 완결이라 할 만한 것은 5개 정도이다. 글과 작품 수를 보면, 지금까지 써온 것에 뿌듯함을 느끼기는커녕- 별 볼일 없이 마구잡이로 써내려 간 나의 글들에 후회만 가득하다. 계속해서 쓰고 싶은 글들이 너무 많기에, 하나의 글을 쓰고 그 글을 다시 돌아볼 시간도 거의 갖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글은 단순하게 "Free writing"의 모음들이라 하겠다. 많은 거장들이 "초안은 쓰레기다."라고 말하며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퇴고에 대한 많은 조언들을 접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퇴고에 시간을 거의 쓰지 않는다. 내 글을 다시 돌아보며 다듬어나가는 과정이 없다 보니, 내 글은 3년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가볍다.


예전에 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이들 중 누군가가 "작가님 글은 솔직해요." 또는 "잘 읽혀요."라고 코멘트를 남겨주었다. 나의 장점으로 꼽아준 것들이 사실은 나의 한계들이었다. 나는 솔직하지 않은 것을 쓸 줄 모르기에 내 글은 보통의 내 생각 그대로가 담길 수밖에 없고, 어려운 말이나 표현 따위로 글을 포장하는 법을 모르기에 안타깝게도 쉬운 글이 되고 만다. 깊은 생각 끝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타자보다 빠르게 터져 나오는 생각을 타이핑하기 바쁘게 옮겨 적어가기에 내 글은 깊어지지 못한다.


문득 내가 제대로 끝내는 것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에 인류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올랐다. 예전에 다빈치가 작품 수가 적은 것의 이유에 대해 읽었다. 관심사가 너무 다양해서 화가이자, 해부학자, 발명가, 건축가이기에 회화 외에도 온갖 다양한 연구에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에,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단순히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 나 자신을 관심사가 많은 다빈치와 동등하게 논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작품의 엄청난 완성도를 고려하면 비교조차 되지 않지만 말이다. (비교의 대상으로 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지만-)


무언가 끝까지 써내려서 완성했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 글들을 쓰고 싶은 열망이, 욕구가 있었다.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았었다. 가장 처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던 순간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적 경험을 토해내고 싶었고, 그렇게 며칠간 그 옛날의 감정과 경험을 쏟아냈다. 그렇게 쏟아내고는 쓰고 싶은 말이 없었기에 글을 멈추기도 했었다. 이후에도 혼자 주말 동안 A4로 70페이지를 쏟아내며 이곳에 공개하지 않은 글을 하나 완성했을 때나, 그 외에도 무언가를 끝까지 해냈던 순간들에는 그것뿐이었다. 그러니 이 주제, 저 주제 산만하게 써 내려가며 관심이 분산되는 것은- 어쩌면 이 주제에 대한 열정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쓰고 싶은 내용이 워낙 많기에, 그냥 지금까지처럼 편하게 써 내려가려 한다. 그러다 보면, 이전처럼 어느 순간 집중하고 싶은 주제가 나타날 것이고- 그 순간 집중해서 써 내려가서 무언가를 완성하겠지. 그러면 그때는 그 글을 조금 더 돌아보면, 퇴고의 시간을 거쳐- 제법 그럴듯한 글을 제대로 완성해 보고 싶다. 쓰고 싶은 것이 많아서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거라면, 쓰고 싶은 것이 하나가 되었을 시기에는 완성할 수 있다는 거겠지. 지금의 나는 그저 언젠가 찾아올 완성하고픈 하나의 작품을 위해 훈련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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