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죽었다. 그렇게 전해 들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건만, 이미 4개월 전의 일이라고 했다.
요즘 갑자기 실험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계속 관찰되어 정신이 없었다. 바로 전날 측정했던 결과 때문에 끙끙거리던 와중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요즘 연락이 잘 되지 않던 한 친구의 이름이 떴다. 반가우면서도, '어쩐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들을 사용하면서부터 요즘의 우리는 전화를 잘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갑자기 전화할 일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잘 지냈어?"
"아, 네 저야 뭐.. 별일 없죠."
"일은 바빠?"
"바쁘다면 바쁘고 아니라면 뭐 그냥 평소 같죠."
"진짜 바쁜가 보네 ㅎㅎ"
별일이 없는 거 같은 목소리였다. 내가 알던 그냥 보통의 친구였다. 친구가 말을 이어갔다. 한 친구의 이름을 꺼내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제 없어."
이제 없다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순간, 대학교 친구 무리인 우리 모임에서 혹시 나갔다는 얘기인가, 우리 모임에 없다는 건가 싶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가 없다는 건 뭘까. 설마, 이 세상에 없다는 걸까? 지금 죽음을 말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이 미치고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없다고요? 어디에? 이 세상에?"
"응. 이제 이 세상에 없어."
"왜? 진짜로?"
슬픔이 아니었다. 실감이 나지 않기에, 슬픔이란 감정이 밀려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게 소식을 전한 친구도 이틀 전쯤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친구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슬픈 것도 아니고, 무엇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했다. 어째서 우리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건지. 4개월 전, 그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 건 왜 그런지.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대학교 친구 무리는 서로가 하나 둘 데리고 오면서 어느덧 15명이 되었고, 그 모임이 꾸준히 십 년도 한참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예전에는 활발하던 카카오톡 단체방은, 이제는 누군가의 생일날처럼 무언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메시지를 남기는 공간이 되었다. 모두가 함께 다 만나기에는 이제 각자의 삶이 모두 너무 커지고 달라져서, 힘겹게 모임을 갖기로 계획해도 절반조차 모이기 버거웠다. 코로나 이후로, 정기적으로 갖던 분기별 모임도 사라져 버렸기에 내가 해외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온 후-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만났던 적이 있다. 그때 출장이 있어서 참석 못해 아쉽다 말한 이였다. 다음에 만나면 될 거라 생각하니, 크게 아쉬워하고 그런 것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올해 카카오톡에서 모두 함께 새해인사를 남겼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지 않는가. 각자 일상에서 일에 치여, 육아에 치여, 이런저런 사정으로 정신없이 살아가느라- 그 옛날 철 없이 밤새 웃고 떠들며 놀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저 과거, 청춘의 추억으로 그렇게 남아있고, 그때 함께였다는 것으로 우리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굳이 자주 연락하지 않더라도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무소식이니 당연히 그 친구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그 친구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내 머릿 속 생각이었던 거다. 그 친구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던 거다.그 사실이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짓는다.
카카오톡에 이름이 함께하고 있으니 당연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 친구가 떠난 것도 모르고 그렇게 4개월을 여전히 그 친구가 있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생일에 또 우리는 축하인사들을 남겼었다. 누군가가 축하한다고 물꼬를 트면, 다른 이들이 카카오톡 생일인 친구를 확인하고는 그 친구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러다 보면, 주인공이 나타나서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분명, 얼마 전 그 친구가 생일이었고 축하인사를 건넸었다. 다시 메시지로 돌아가 확인해 보았다. 그 친구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생일 축하메시지는 전달될 수 없었다. 우리는 몰랐다.
대체 언제부터, 전해지지 않는 메시지를 썼던 걸까 싶어 지난 메시지들의 스크롤을 올려보았다. 언젠가부터 잠수 타고 있는 다른 한 친구가 있어서, 사라지지 않는 1이 있는 편이다. 처음에는 계속 남아있는 1에 누군가가 잘 지내냐고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 기간이 길어지며 다들 그런가 보다 하며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알았을까. 읽지 않은 메시지를 뜻하는 숫자는 늘 ‘1’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2’로 바뀌어 있었다. 1이 아닌 2였다는 걸 왜 몰랐을까. 이 세상을 떠나서 없는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는커녕, 그가 다시 맞이하지 못한 그의 생일에 "생일 축하해". "ㅊㅋㅊㅋ"라며 메시지들을 보냈더라. 나는 그날 무엇이 바빴는지 친구들이 보내는 생일 축하 메시지에 함께 축하한다는 말 하나 끼워넣지도 않았더라. 축하해줘 고맙다는 답장이 없었음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그렇게 지나가며, 그 이후로도 두 달이 지나도록 우리는 그가 떠난 것을 몰랐다.
내게 전화로 알려준 친구는 오늘 중으로 내용을 정리해서 단체방에 알리려 한다고 했다. 나는 먼저 알려줘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우리는 슬프다고 말할 수 없는, 경험 해보지 못한 낯선 기분 속에서 서로의 안녕을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모두가 퇴근할 시간을 고려한 건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메시지가 올라왔다. 몇 달 전, 우리의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반년의 부재와 무지 속에 지낸 시간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우며, 슬픔과 그리움이 자리를 찾지 못해 맴돌고 있다 말했다. 다음 주 중으로 지방에 있는 친구가 서울에 올라올 수 있기에 함께 우리의 친구가 잠든 곳을 찾아가려 한다고, 함께하면 좋겠다 말했다. 메시지 옆에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메시지가 올라오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아마도, 소식을 받아들이는데 모두 버거웠으리라. 무슨 말을 써 내려가야 할지 몰라 전달된 소식을 읽고 다시 읽었으리라. 그렇게 친구들에게 단체메시지가 전달되고, 세 시간이 지나서야 한 친구가 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 후 연이어 모두가 말했다. 다른 말들을 덧붙이지도 않았고, 그러지도 못했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런 그의 부재를 너무 오랫동안 모른 채 그저 살아왔다는 사실이 그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음과 더불어 더 미안했고,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그저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그런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말을 잃었다.
다른 이들처럼 고인을 추모하는 짧은 한 마디만을 남기고, 나는 피곤함에 지쳐 일찍 잠에 들었다. 그러다 눈을 뜨니 새벽 1시였다. 새벽녘에 한 친구가 "그립네요"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이제야 함께했었던 기억 속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같은 친구 무리에 있지만, 나와 그가 그렇게 마냥 친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거다. 하지만, 남들은 기억 못 한 그와 나만이 나눈 대화의 추억, 그리고 우리 둘만의 갈등도 있었다. 그런 모든 과정을 지나고 지나- 이어지는 인연으로 그렇게 지내오고 있었다.
둘 다 술에 취해 안주로 나온 노란 계란말이 위에 너무나도 예쁘게 뿌려진 케첩을 둘이 바라보며 저건 어떻게 저렇게 뿌렸을까를 30분 가까이 얘기했던 추억이 있다. 지금도 케첩이 잘 뿌려진 계란말이를 보면 그때의 그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갑자기 취소된 중간고사에 시험이 남아있음에도 술을 마시고는 학교 근처 새벽공기를 마시며 걸어갔던 기억도 있다. 그날의 공기가 상쾌했다. 시험이 연기됐을 뿐, 곧 다시 공부에 집중해야 하지만- 일단 그날 하루는 그렇게 시험을 잠시 잊고는 그저 즐거움만으로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한 친구가 너무 웃다가 뒤로 넘어지며 다칠 뻔한 순간, 몸을 날려 손으로 그 친구의 머리를 감싼 덕분에, 한 친구는 뒤통수를 지켰고- 이 친구는 손등에 영광의 상처를 얻기도 했다. 이 친구를 잘 따르는 동생들은 방탕한 형이라고 놀리며 형을 우러러보기도 했고, 그렇게 모두와 잘 어울리던 그런 존재감의 친구였다. 이렇게 글을 쓰며 옛 시간들을 생각하니, 이제야, 슬픔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이 내 눈가를 채워나간다.
당연히 다시 만날 일이 있을 줄 알았다. 아마도 나보다는 그가 먼저 이렇게 말했을 거다.
"호뚜, 잘 지냈어?"
그 특이했던 그의 목소리로 아마 그렇게 인사를 했을 거고, 나는 이렇게 답했을 거다.
"네, 뭐 저야 물론. 잘 지내셨죠?"
그게 언제나 우리의 인사였으니까.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런 인사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항상 그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내가 먼저 인사하질 않았다.
이별의 순간에 이별을 몰랐기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그의 소식을 듣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의 부재가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듯하다. 마지막 만남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별한지조차 몰랐던 친구를 향한,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와 안타까움이- 뒤늦게 슬픔이 되어 이 밤을 괴롭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