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내가 삶을 사랑하게 됐음을 깨달았다

by 이확위

우울과 불안을 오래 가지고 살아오며, 오랜 시간을 삶에 마음을 붙이질 못 했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진 채 살아온 시간은 길었지만, 내 삶 속에서 마주한 죽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는 나 자신이 우울에 잠식되어 세상을 떠날 거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산골짜기 다른 집들과 동떨어져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차로 나가도 "시내"라 불리는 번화가가 있을 뿐이었다. 애완동물을 위한 동물 병원 하나 제대로 없던 그런 곳이었다. 아버지의 지인의 집에서 데려온 강아지가 있었다. 종은 딱히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냥 "삽살개"라 말했다. 그 개는 태돌이라는 불렸다. 아버지 친구 아들인 "태수"네 집에서 온 수컷이라고 말이다. 나중에 커서 인터넷에서 토종삽살개를 보았다. 귀신잡는 개라고 불렸다는 삽살개는 우리 태돌이의 2배, 아니 3배는 되는 몸짓이었다. 그러니 우리 태돌이는 삽살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골집은 마당이 넓고, 동네에는 사람도 별로 살지 않아서, 태돌이는 그냥 마음껏 동네를 돌아다녔다. 작은 동네 사람들은 태돌이가 우리 집 개라는 걸 알았다. 나와 산책하는 모습도 자주 봤으니 말이다. 뒷산에서 놀고 온 동네를 마음껏 돌았다고 휘파람을 불면 내게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아버지는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태돌이가 동네에서 새끼를 낳은 어미 개에게 가까이 갔다가 물려 다쳤다고 했다. 놀라 깨어나서 나는 얼른 아버지를 따라 태돌이에게 갔다. 아버지는 내게 꽉 눌러 지혈이 되도록 하라고 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가서 봉합할 수 있는 것을 챙겨 온다고 말이다. 앞서 말했 듯 우리 집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4시 동물병원? 그런 것을 찾아보기 힘든 90년대 초 대한민국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아버지가 챙겨 온 봉합도구들로 아버지는 상처를 꿰맸던 것 같다.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행히 태돌이는 회복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무언가를 마실 때 목에서 뭔가 소리가 났던 것 같다. 나는 그런 태돌이의 꿀렁이는 목 넘김도 특별했다. 다시 회복하고 함께하는 태돌이가 더 소중했다. 태돌이는 내가 집을 떠나 있던 고등학교 시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집에 돌아왔다가 태돌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째서인지 그때의 감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언제 어떻게 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이후로 나는 개를 키운 적이 없다. 집에 가면, 부모님이 또다시 누군가에게서 데려온 개가 있지만, 어쩐지 "우리 집 개", "내 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태돌이가 살아있던 시절, 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또 다른 강아지를 데려왔던 적이 있다. 올 때부터 어딘가 힘이 없는 아이였지만 귀여워서 매일 쓰다듬어주고 옆에서 지켜보곤 했다.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기에 그 모습도 너무 귀여워 발을 잡고 하나씩 계단 내려가는 법을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우유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무엇도 먹지 못했다. 아버지가 강아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강아지는 계속해서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병원에서 준 약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안쓰러움에 그저 옆에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숨을 거칠게 쌕쌕이는 소리를 냈다. 강아지의 거칠어진 숨소리에 '어? 갑자기 왜 이러지?'하던 찰나 바로 다음 순간, 모든 게 조용해졌었다. 그 고요함에 주변의 공기마저 바꿔버린 건지- 서늘한 기운까지 느껴져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무서워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은 죽음이었다.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것과 생명이 떠난 육체란 너무도 달랐다. 그때의 기억이 잊히질 않아서, 종종 살아있다는 건 무엇일지 생각했다. 무엇이 우릴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는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릴 적 지켜본 그 죽음의 두려움에 나는 자주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그런 질문들에 삶이 소중하다고 답하지 못하는 나로 살아갔다. 나의 삶에는 언제나 죽음이 옵션이라고, 그렇게 바로 지난겨울에 갔던 학회의 호텔에서 생각했다. 딱 10년만 더 살자-그렇게도 생각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여름의 기간 사이, 짧지만 컨디션이 아주 좋던 시기가 있었다. 연구에 대해서도 아이디어가 샘솟았고, 하는 모든 것들이 잘 되었다. 되지 않는 것이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어쩌다 기분이 조금 다운되는 정도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 스스로 관리가 되는 그냥 누구나 겪을 만한 감정의 변화 정도였다. 네 달 가까이 기분장애에 대한 약을 복용하지 않기도 했다. 할 일은 많지만, 모든 게 수월했다. 기분이 그러했다. 그런 수월한 요즘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바로 오늘 점심식사를 마친 후였다. 길 건너 카페에 가려고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하늘은 맑지도 흐리지도 않았지만 가을이 오는 건지 더 이상 덥지 않아져 조금은 선선한 기운이 들어 좋았다. 가까운 대로에서 시위를 하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냥 보통의 토요일 오후였다. 이어폰을 끼고는 노래를 틀었다. 다음 주에 콘서트 티켓을 예매한 밴드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고, 라이브 실황을 들으며 횡단보도 앞에서 내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에 빠져들고 있었다.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바로 다음 주로 다가온 공연이 기대된다는 생각을 했고, 이 밴드 말고도 아직 보지 못한 보고 싶은 밴드들의 공연이나 해보지 못한 것들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들과 함께 카페에서 다음 주 강의준비를 위한 공부를 마친 뒤 뭘 할지 떠올려 보았다. 다음 주에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정신없이 바쁠 여러 할 일들과 함께- 그것들이 모두 잘 되었을 경우도 떠올렸다. 모든 것이 잘 되었을 때 내게 가져다줄 수 있는 기회들에 대해 생각했다.


종종 주변 친구들에 비해 난 너무 이룬 게 없지 않나 생각을 하곤 했다. 학위하나 받고 그냥 일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다들 나보다는 더 어른답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거 같은데 난 여전히 철없이 지내는 듯하고 어디 제대로 자리 잡지도 못하고 말이다. 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바로 신호등 앞에서 내일을, 다음 주를 생각하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지 못한 끝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고,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가 해냈을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삶에서 미래를, 가능성을, 무언가를 희망하고 계획하며 살았던 시기가 언제였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달라져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있다는 건 이룬 후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뤄갈 날들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이는 내가 내 삶에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그러니까 지금 나는 죽음보다 삶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넜다. 다음 할 일을 생각하며, 지금의 내가 앞으로의 나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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