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Dec 15. 2024

갑자기 공항에서 숨이 막혔어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인천공항처럼 붐비진 않았다. '꽤 한적하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항을 걷는데 갑자기 목에 뭔가가 걸려 숨 쉬는 걸 막는 듯 숨을 쉬는 게 답답해졌다. 무언가가 목을 막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갑상선에 있는 혹이 다시 커진 건 아닐까 만져봤지만 목에서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식은땀이 흘렀다. 점점 숨을 쉬는 게 답답해져서 빈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숨이 막혔지만, 딱히 신체적으로 내게 문제가 생길 상황이 아니었기에, 심리적 문제인가 하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건 호흡을 조절하는 것뿐이었다. 얼마 전 누군가가 알려줬던 호흡을 했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10분쯤 지나고 괜찮아졌기에 다시 캐리어를 끌고 짐을 부치러 갔다.




자정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겨우 막차를 타고 공항에서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고 짐을 간단히 꺼내 정리한 후, 바로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떴다. 일어나도 되지만 딱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든다. 자고, 또 잤다. 생각해 보면 잠이 많아지는 요즘, 우울의 기운도 다시 솟아나고 있다. 어쩌면 공항에서의 숨 막힘은 일종의 불안장애의 증상이 아닐까 싶다. 점점 잠이 많아지고, 뭘 하고 싶은 의욕이 줄어들고 있다. 일어나고 싶지 않지만, 아직은 그런 맘을 이겨낼 정도는 에너지는 남아있기에 일어났다. 한국에서 바로 돌아오고 주말 대학교동문회에서 준비한 와인페스타가 있었다. 분기별로 하는 행사인데 와인을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다고 했다. 곧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니,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위한 와인을 사러 가기로 했다. 오후에는 지방에서 사촌의 결혼식이 있기에 바로 그곳까지 가야 했다. 10년 가까이 보지 않은 사촌이지만, 한국에 있으면서도 결혼식을 가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 가기로 했다.


와인페스타에서 좋은 와인들이 많았지만 비싼 것은 흐린 눈을 하고 지나친다. 어차피 사지 못하니까. 내 형편에 맞는 그런 와인들로, 내가 좋아하는 와인들로 골라본다. 좋아하는 "리슬링"이 있어서 좋은 가격에 파는 몇 병을 고르고, 이것저것 골라본다. 7만 원 이상은 무료배송이라길래, 내 것을 배송시킨 후 친구 생일선물로 샴페인을 한병 골라 친구 집으로 배송시킨다. 와인을 잔뜩 사고는 서울역으로 향한다. 결혼식장에서 축의금을 내고는 사촌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다. 나도 그쪽도 모두 안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서로 어색함이 넘쳤다. 다른 친척분들도 만나서 인사를 했다. 나에게는 변함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살이 찐 것을 돌려 말하듯 "요즘 사는 게 좋아?"라는 친척 어른도 있었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하길래, 이미 그런 말들에는 능숙해서 방어를 잘했다. 아무 문제 없이 해야 할 일들을 해치웠다.




결혼식까지 다녀오고 저녁에서야 집에 돌아왔다. 완전히 지친 기분이었다. 예정일보다 조금 늦게, 해외에서 힘들지 않도록 한 내 몸의 배려로 조금 늦게 매달 찾아오는 호르몬 활동이 찾아왔다. 나는 거의 알람과 같아서 굉장히 주기적인데, 약간의 스트레스 같은 게 있으면 즉각적으로 늦쳐지는 편이다. 이번에 평소보다 5일이 늦어졌다는 건, 내 몸이 스트레스를 느꼈다는 걸 거다. 몸이 피로감이 심해져서 계속 자고 또 잤다. 여전히 오랫동안 깊은 잠을 유지하지 못해 중간에 계속해서 깨지만, 그래도 일어나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잤다. 눈을 뜨니 어느새 일요일 점심이 지나있었다. 잠이 많아진다. 좋지 않다.


눈을 뜨고 침대에 누운 채 문득, 얼마 전 자는 시간이 적었는데도 에너지가 넘쳤던 3주간의 시간에 대해 다시 다시 생각해 봤다. 예전에도 글을 남겼던 적이 있는데, 종종 이런 시간이 찾아오긴 했다. 매년 한 두 번 정도 그런 시간이 있었고 보통은 삼일 정도 지속되다가 기 시간이 지나가고 급격하게 우울해지는 시간이 오곤 했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작년에 약을 새로 바꾼 후, 2주 정도 그런 시간이 지속되었었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고, 온갖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고, 새로운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뿐 아니라, 봉사활동 하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들도 생각나서 이런저런 일들을 벌여뒀었다. 그러다가 너무 수면시간이 적어 병원을 찾았고, 병원에서는 바꾼 약에 의해 약간의 "조증"이 온 것 같다해서 약을 다시 조절했다. 그런 후에는 온몸을 가득 채우던 에너지가 싸악 사라졌다. 에너지가 넘치던 그때의 내가 좋았었다. 그때는 내가 뭘 하더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자기혐오도 적었다. 그런 맘으로 살아간다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시기였다. 약으로 이런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면, 먹으면서 이렇게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저 잠을 좀 못 자는 것뿐.


그런데 이번엔 그런 시기가 연구가 잘 되기 시작하면서 찾아왔다. 하루에 3~4시간을 자지만 피곤하지 않았고, 연구하는 것이 즐거워 아침 6시가 되기도 전에 출근을 하기도 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머릿속에 새로 생각난 연구 아이디어를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정리해서, 아침이 되면 바로 보스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연구에 대한 생각들이 떠오르고 떠오르고 떠올랐다. 생각이 멈추지 않았었다. 그때는 다 잘 될 것 같았다. 그런 긍정의 에너지가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날 일이 있었고, 감정적으로 약간 폭풍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만남이 지나간 후, 나를 감싸던 밝은 에너지가 다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피곤함이 늘어났고, 아이디어는 다시 사라졌고, 조금씩 눈을 떠서 일어나 세상으로 나가는 게 지쳐가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로 학회를 가는 것도 싫었고, 가서도 싫었다. 얼른 돌아와 내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작년의 "조증"시기와 조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찾아보니, "경조증(hypomania)"라는 게 있단다. 미미한 조증인데, 계속 방치되면 점점 심해져서 조증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거 같다. 이걸 몇 번 겪어보니, 왜 조증이 위험하다는지 알겠다. 있던 희망이 사라지는 게 애초에 희망이 없다는 것보다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나. 내가 나를 좋아지게 만들어두고, 다시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희망과 긍정으로 삶을 채우더니, 그런 모든 기운이 사라진다. 다시 어둠으로 빠져든다.


한동안 약도 먹지 않고 지냈는데, 아무래도 나는 괜찮지 않은 것 같다. 병원을 다시 찾아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