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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찾아 간 추모공원- 가장 예쁜 꽃을 샀다

by 이확위

뒤늦게 친구가 거의 반년 전 우리 곁을 떠났다는 걸 알았다. 대학 시절 친구무리에서 함께 놀았고, 지금도 우리의 단체대화방에 남아있다. 그렇기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친구를 검색하고 부고 기사를 보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분명 떠났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은 느껴졌지만- 슬픔이 찾아오질 않았다. 그러다 한 친구가 남긴 "그립네요"라는 한 마디의 메시지에 떠나간 친구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졌었다. 친구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친구와 나누던 인사말이 친구의 목소리로 들리는 듯하였다. 바로 그 순간, 더 이상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음이 너무도 크게 다가와 어느덧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라.



분명 예전에는 더 친했었다. 그러다, 조금은 멀어졌고- 같은 무리에 있으면서도 너도나도 서로가 모두 바쁘다 보니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였던 걸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하니, 다른 친구가 아마 모두가 비슷할 거라고. 그 옛날 우리가 함께 놀던 그 시절이 신기할 정도로 서로가 너무 가까웠던 거라고. 그랬기에 지금의 우리들의 관계가 멀어진 것 같고, 더 이상 아무 사이가 아닌 게 아닐까 싶기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응원하며 언제든 곁에 다가오려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모르는 타인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게 인간이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가 잠시 멀어졌었다 한들, 함께한 시간이 있으니- 나의 눈에서 흐른 눈물은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친구에 대한 글을 두어 편 썼다. 생각나는 날들에 썼고-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지난 주말에 추모공원에 함께 찾아갈 거라 했다. 친구들은 조금 늦은 시간에 가기에 나는 그보다 먼저, 조금 더 일찍 추모공원을 찾기로 했다.



떠나간 친구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인사를 하러 가려던 날 아침, 눈을 뜨고 침대에서 미적거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로 사람들의 사진이 큼직하게 뜨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프로필을 누르면 이전에 올린 것들이 모두 뜨는 게 생각나서 떠난 친구의 프로필을 눌러보았다. 그 안에 친구의 사진이 조금 더 남겨있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사진, 홀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 있었다.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요즘은 조금 일이 바빠서 취미생활을 활발히 하지 못했고, 그림을 딱히 그리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인물은 거의 그리지 않는다. 그런데 친구를 그리고 싶어졌다. 친구의 얼굴을 그리는 건 자신이 없기에, 뒷모습만 보이는 친구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골랐다. 그런 후, 작은 캔버스를 꺼내 들고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진에서는 하늘도 흐리기에 바다도 마치 회색빛깔이었다. 친구에게 밝은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 색을 섞어가며 하늘을 칠했다. 모래사장을 칠했는데, 친구가 있는 그곳이 환하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금색 물감을 들고는 반짝이게 칠해보았다. 원본 사진에는 바다 위에 배 2척이 떠 있었다. 나는 2척이 아닌 14척의 배를 그렸다. 친구에게 미처 인사를 하지 못했던 우리 모임의 사람들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렇게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을 그린다고 친구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그냥 떠오르는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운이 좋다면 좋게도, 나는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아직까지 추모공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린 시절에 성묘를 갈 때도 어른들끼리만 다녀오시곤 해서, 누군가의 묘지라는 건 뚜렷이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장례식뿐이었다. 그렇게 추모공원을 가려니 기분이 영 이상했다. 그곳에 가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다면 따라 하기라도 할 텐데-라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았다. 요즘 한 종교의 교리를 듣고 있다. 아직 믿음이란 게 가슴 깊이 새겨진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의 종교에 가까워지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래서 추모하는 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찾았다. 몇 가지가 나오기에 그걸 저장해 뒀다. 다만 친구가 같은 종교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버스가 추모공원에 다다르기 전, 아직 믿음도 부족한 나의 기도만으로 될까 싶었다.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를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휴대폰에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써 내려갔다.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이나, 우리가 멀어진 거나, 내가 후회되는 것들이나... 그런 것들을 적어내려 갔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내가 찾아가는 마지막일 것 같아 그런 말들도 적어내려 갔다. 그렇게 편지가 준비되고 추모공원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추모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는 꽃집이 있었다. 문득, 친구에게 단 한 번도 선물을 줘본 적이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꽃이라도 사가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집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란 말에, 추모공원에 오는 게 처음이라 무엇을 사야 하는지 모른다 말했다. 어디로 가냐 물었고, 그곳은 대리석 또는 유리라 붙이는 작은 꽃다발로 가져간다 알려주었다. 이미 만들어진 미니 꽃다발들이 냉장고 안에 있었다. 장례식에서는 흰 국화만이 있으니 추모공원에서도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국화가 있지만, 국화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꽃들과 함께 색색히 꽃다발을 이루고 있더라. 바로 맘에 드는 것은 없었지만, 그중에서 내 눈에 가장 예쁜 꽃으로 골랐다. 친구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았다면, 친구의 취향에 맞춰 골랐겠지만- 알 수 없었다. 옷은 항상 블랙만 입던 친구이나, 블랙의 꽃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작은 미니 꽃다발을 들고,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급하지 않은 경사길임에도 긴장해서인지 땀이 나는 듯했다. 추모공원에 들어설 때, 내려오는 한 모녀를 보았다. 눈물을 흘린 것인지 모두 눈가가 빨개져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버거킹의 종이봉투가 큼직하게 들려있었다. 인사를 나눈 떠나간 이가 버거킹을 좋아한 모양이란 생각을 했다. 추모공원 뒤편에 산 한가득 아주 많은 무덤들이 보였다. 이런 곳이 처음이었기에, 사람이 언젠가 죽는 것은 삶의 이치이나- 이렇게 많은 이들의 떠나간 흔적을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그저 묵직하게만 다가왔다.


친구의 납골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지난주 다녀간 친구가 묘역의 번호를 알려주었기에 OO묘역의 2번 구역에 가서 친구 자리의 번호를 찾기 위해 눈으로 훑었다. 그렇게 훑으면서도 너무도 많은 유골함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번호를 찾고 바라본 그곳에 놓인 유골함에 친구의 이름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친구는 정말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울컥하며 눈가가 조금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골함에 있는 표식을 보고 친구의 종교를 알 수 있었다. 나와는 달랐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었다. 잘 알지 못하기에 휴대폰에 저장해 둔 것을 보며 친구를 위해 기도하였다. 친구의 안식을 빌었다. 그런 후, 잠시 남겨진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런 후, 버스에서 적어 내려 간 편지를 꺼내 들고 마음속으로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버스에서 적어 내려 갈 때는 괜찮았다. 아마도 앞으로 오진 못할 거 같다는 말을 하는 게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서서 편지를 읽어 내려가자니, 울컥함에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더 지체하면 어쩐지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서둘러 편지를 마쳤다.


'... ...

제가 이곳에 다시 찾아올지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오빠도 알다시피, 우리가 많이 가깝진 않은 사이였잖아요.

그래도 생각날 거예요. 친구들이 있으니.

그들을 만나면 아마 언제나 오빠가 떠오르겠죠.

나 뿐만 아니라 아마 모두가 그럴거예요.

그럴 때면, 언제나 오빠의 안녕을 생각할게요.

기도를 할 수 있다면, 온 마음을 담아 할게요.

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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