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by 이확위
"색칠 공부를 하다가 선 밖으로 조금 삐져나가면 넌 울어버렸다니까."

어린 시절의 나는 완벽주의자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깨달은 것은, 내가 "완벽"이라 생각하는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는 거였다. 애써 노력해 보아도 나는 언제나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과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이에 대한 쉬운 해결법은 바로 회피, 포기였다. 그렇게 나는 회피적 완벽주의자로 꽤나 오랜 시간을 지내온 듯하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노력했던 순간이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나는 선뜻 답하질 못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할 만한 순간이 떠오르지 않으니-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그랬기에 내가 계획했지만 가지 못한 길들에 대해 오롯이 후회로만 남기도 했었다.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내가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 외에도,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은 포기와는 달랐다. 누군가는 말장난일 뿐이라 하겠지만 난 이것을 수용이라 하겠다.


조금 더 내 생각을 잘 전달해 보고자 포기(Giving up)와 수용(Acceptance)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았다.


포기란, 여전히 바라는 게 있는 거다. 아직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두려워서, 상처받기 싫어서, 더 이상은 지쳐서 너무 힘들어서, 어쩔 때는 실패가 두려워 멈추는 거다. 그러고 나면, 후회나 자책이 남기도 한다. 마음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행동을 멈춘 것이 포기인 거다.


수용은 다르다. 이미 벌어진 일, 바뀔 수 없는 상황이나 조건, 나의 한계, 현실 등을 억지로 부정하지 않고 그저 인정하는 거다. 인정이 있으면 다음 고민이 따른다. "그렇다 이제 어떻게 하지?" 현실의 인정 속에 다음에 대한 선택이 나타난다. 포기란 닫힌 마음이면, 수용은 열린 마음이다.


나는 나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어쩐지 전보다 나는 조금 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가 점점 눈에 보이는 듯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들이 보다 선명해진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선망이 아닌,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자리 잡으니 삶이 보다 분명한 길을 가지고 전보다 삶을 대하는 데 있어 열정을 가지게 되는 듯하다.


포기나 수용이나, 내가 하지 못한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동일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포기냐 수용이냐에 따라 뒤따라오는 마음이 다르다. 나는 수용을 통해, 삶에 긍정을 익혀나가고 있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우울과 불안이 줄어든 것이 먼저인지- 이런 마음이 나에게 자리 잡으며 우울과 불안이 떠나가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줬을 것이고, 언제부터냐 무엇이 먼저냐를 정하는 것은 딱히 의미가 없을 듯하다. 그저 그렇게 된 지금의 상황이 나는 만족스러우니, 지금처럼 포기보다는 수용의 자세로.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맘으로 세상을 살아가련다.


(*포기와 수용의 의미에 대해 ChatGPT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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