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나를 믿어주는 남을 믿자

by 이확위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분리불안장애를 진단받았었고, 그에 대한 치료를 받았었다. 정신건강의학은 그 당시와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그 당시의 치료라 했던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때 내 부모님의 선택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그때 최선의 방법을 택했던 것일 테니까. 그 마음은 이해한다. 다만, 심리학이나 정신건강의학에 대해 찾아보면서 알게 된 건, 나의 어린 시절의 분리불안장애가 온전히 치료가 되지 않았던 듯싶다.


애착이론에서는 아이가 누군가에게 안정적으로 사랑받고 보호받았다는 경험을 많이 하면 세상을 비교적 안전하게 생각하고, 나를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내부에 자리 잡는다고 한다. 하지만 불안, 상실, 정서적 고립, 반복된 실패 경험, 과도한 비교 환경이 있으면 "나는 늘 불안정하고 부족한 사람일지도 몰라"라는 내면화된 신념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신념이 성인이 되어서도 남아있게 되면,

- 결정할 때 불안하고

- 스스로를 믿기 어렵고

-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내 얘기이다.


한 연구에서는(Shen et al., 2021), 어린 시절 애착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자존감과 애착, 그리고 심리적 고통(우울·불안 등)과 모두 유의미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애착이 불안정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지고, 낮아진 자존감은 다시 성인 관계에서 불안/회피 성향을 높이며, 결국 심리적 고통을 증가시키는 매개 역할을 한다.
Shen, F., Liu, Y., & Brat, M. (2021). Attachment, self-esteem, and psychological distress: A multiple-mediator model. The Professional Counselor, 11(2), 129–142. https://doi.org/10.15241/fs.11.2.129


더불어, 어린 시절의 완벽주의에 대해 지난 글에서 말했는데 스스로를 못 믿는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기준이 꽤 높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잘해도 "이 정도면 누구나 하지."라고 낮춰 생각하고, 실수를 하면 "역시 난 이렇지.."라고 생각해 버리기 쉽다더라. 취약한 자존감+완벽주의의 조합에 의한 결과인 거다.


자존감은 내가 항상 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잘 못할 때도 괜찮다고 나를 인하는 능력인데, 나는 우울과 불안이 있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데 있어 그런 능력이 약해졌던 셈이다.


내가 나를 믿어보려 아무리 애써보아도, 내게는 그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해내는 것들이 무엇이든 그다지 대단치 않게 생각된다. 그렇다고 남이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나 자신에 대해서 만큼은 유난히도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게 된다. 어쩔 때는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나 스스로를 너무도 대단하게 생각해서, 나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미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심리학에 대해 살펴보거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줄 알며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주변인들을 보면, 이건 나의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던 불안과 우울에서 비롯된 문제인 듯싶었다.


나는 나를 믿진 못하지만, 내 사람들은 그래도 믿는 편이다. 내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그 마음을 나는 안다. 나를 응원해 주고 사랑해 주는 그들의 마음에서, 나에게 하는 그들의 평가가 내 기분을 위한 평가가 아니란 것을 안다. (어설프게 친한 이들은 그저 좋은 말로 건네기도 하겠지만) 그렇기에 나는 그런 "내 사람들"의 신뢰를 통해 자기 신뢰를 회복해나가고 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지만,

나를 믿어주는 친구, 스승, 가족의 시선을 빌려

'아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보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씩 익숙해지려 하고 있다.


이런 것을 관계적 치유라고도 한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자기 신뢰로 향하는 다리가 지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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