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식이 그들의 그리움을 달랬을까

by 이확위

나는 코로나가 막바지일 때쯤에 일을 위해 해외로 나갔다. 내가 해외에서 지내게 된 시점에는 이미 K-pop의 열기가 전 세계적으로 이미 뜨거워진 후이고, 이전과 다르게 한식도 어느 정도 알려진 시점이었다. 그러니, 그 옛날 타국에서 한국 식재료를 구하지 못해, 한국의 지인들을 통해 공수하던 시절과는 달랐던 셈이다.


매일 출퇴근 길에 내가 스쳐가는 곳이 바로 "Asian Market"이란 아시안 식료품점이었다. 나는 외곽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차를 타고 장보로 오는 그런 곳이 바로 이 식료품점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중심가에 살고 있는 아시안들이 장 보러 가는 식료품보다도 나는 그 지역 내 가장 큰 아시안 식료품점을 매일 드나들 수 있었다. 한식 재료를 구하는 게 쉬워지니- 타국에서 나의 일상은 한식이 되더라. 아무래도 먹고 자란 것이 한식이라 그런지 어쩐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울적한 날에는 퇴근길에 아시아마켓에서 장을 보고, 한식으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해외에서 지내는 2년여의 시간동안 나는 한식에 대한 그리움을 겪질 못했다. 내가 2년 반동안 향수병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그리울 고향의 맛을 언제나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도착하고 반년 가까이는 아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끝나고 유학생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인들 모임이 열렸고, 그러다 알게 된 한글학교에서 봉사활동도 하게 되면서 현지의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해외에서 지내기 전까지는 '그 나라 갔으면 그 나라 사람들이랑 즐겨야지. 왜 한국인들을 만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해외로 나가보니 알 것 같았다.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는지. 영어로 소통을 해서 큰 무리는 없었지만, 한국인들 모임에서 온전히 한국어에 둘러싸여서 나와 같은 문화권을 사람들과 함께할 때- 편안함이 있더라. 조금 더 "나"의 모습일 수 있더라. 아마도, 이런 편안함에 힘든 타지에서 사람들은 같은 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찾는 게 아닐까.


물론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 사람들과의 함께하는 시간과 한국인들과 함께하는 시간, 각자 다른 즐거움이 있었고- 국적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기분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내가 타국에서 지내며 알게 된 한국인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다.

1. 현지 대학교 유학생들

2. 현지 거주하는 한국인 가정

3. 국제결혼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한국인


현지 거주하는 한국인 가정이나, 국제결혼한 사람들이나 그곳에서 아이들을 기르며 지내다 보니 대부분 요리를 할 줄 알았다. 게다가 그들은 꽤나 오랜 시간을 한국을 떠나 지내면서- 어느 정도 각자 한국 음식들을 해 먹으며 해소할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학생들은 상황이 좀 달랐다.


여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고. 많은 한국의 젊은 층이 그러하듯,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유학으로 처음 떨어지게 되었으니- 한식을 요리해 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유학생들은 내가 자주 가는 "Asia market"과는 거리가 멀어- 그보다 작은 아시안 식료품점에서나 한국 식재료르 구할 수 있었고, 그곳은 저렴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에게 한식은 정말 견디고 견디다가 너무 그리울 때, 식당에서 비싸게 사 먹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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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알게 된 유학생 동생들에게 종종 내가 만든 한식을 선물하곤 했다. 어쩔 때는 집에 초대해 대접하기도 했다. 미술을 전공하는 한 동생을 집에 초대했다. 우리가 살고 있던 곳은 중소도시 정도라서, 한식당이 두 세 곳뿐이었고, 메뉴도 한정적이었다. 무엇이 가장 그립냐 하니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에, 짜장면을 만들었다. 짜장면만 하기 허전하여 떡볶이도 만들어 저녁 식사로 대접했다. 짜장면 한입을 먹고는 너무 맛있다며 감동이라는 멘트를 날리고, 떡볶이를 먹더니 그다지 맵지 않은 맛임에도- 너무 오래간만의 매운맛이기에 평소보다 더 더 맵게 느껴진다 말했다. 너무 많이 먹어 배불러 걷기도 힘들다고 말하며 함께 가고, 헤어지며 내게 너무 좋았다며 나를 꼭 껴안으며 인사를 했다. 그 후에는 자신의 외국인 남자친구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다고, 너무 맛있었다기에- 그 동생과 동생의 남자친구까지 다시 초대하여 또 한 번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다들 어느 정도 평범한 한식정도는 그리울 것이 없을 것 같아, 나는 조금은 남들이 집에서 잘해 먹지 못하는 한식을 만들면 나눠먹고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닭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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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퇴근길에 둘러보던 아시안 식료품점의 냉도 오너에서 닭발이 보였다. 아무래도 중식에서도 먹어서 식재료가 있는 듯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무뼈닭발을 두어 번 먹어봤을 뿐이었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해외를 나오니, 닭발을 보는 순간- 요리하고 싶어졌다. 그런 마음으로 한 팩 사들고 와서, 발톱까지 있는 닭발을 손질하고 조리해서 맛을 보았다. 내가 만들었음에도 맛이 있어서, 지인들에게 닭발을 좋아하냐 묻고는 "닭발 모임"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닭발을 만들어 함께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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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메뉴로 미니족이 있었다. 이 또한 아시안 식료품점에서 잘라진 돼지 발을 보고는 사 와서 미니족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눔을 했다. 뿐만 아니라 돼지뼈가 저렴하게 파는 것을 보고는 순대와 돼지뼈를 사 와서, 육수를 내어 순대국밥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사 왔던 "들깻가루"과 바로 전주에 만들어 잘 익은 섞박지까지 가지고는 친한 한국인 몇몇 에게 연락을 해 주말에 순댓국을 배달했다. 한 분은 내가 해준 것을 맛보고는 너무 맛있다며 조리법을 물어봐서 바로 그다음 주에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더라.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자주 만들었 사람들에게 선물하던 것이 바로 "치킨"이었다. 월드컵 경기가 있을 때, 직접 치킨을 튀겨서 함께 축구 경기를 보는 것도 몇 차례 있었고. 한국인들과의 모임에 치킨을 넉넉히 튀겨가 한인 어린이들이 신나서 치킨을 맛보던 순간들도 있었다. 한국 어른들도 간장치킨, 양념치킨, 후라이드 치킨- 외국에서의 짜기만 한 튀김이 아니라, 한국에서 먹던 바로 그 치킨의 맛이라며 다들 맛있게 먹었던 순간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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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가장 그리웠던 한국 음식은 바로 "국밥"이었다. 가마솥 한가득 끓여 뜨끈하게 뚝배기에 건네주는 그런 국밥 말이다. 내가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것이 유일하게 내가 그리운 한식이었다.


대부분의 시간 속에서 내가 한국이 그립지 않았던 것은,

한국의 많은 것을 그곳에서 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러했지만, 그렇지 않은 지인들에게-

내가 요리한 한식을 나누며, 그들의 그리움이 조금은 달래졌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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