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나 제사를 딱히 지내질 않아서, 명절은 그저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그렇기에 딱히 정해진 명절요리가 없다. 어린 시절엔 큰집에 가서 명절 요리들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곤 했는데-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언니와 오빠가 결혼하면서 "우리 가족" 이 확장되면서, 점점 친척집으로의 왕래는 줄어들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만 모여도, 조카들이 많아서 바글바글한게 우리 집 명절 풍경이다.
그렇게 모이면, 보통 요리 담당은 나와 엄마이다. 새언니는 자신의 요리에 자신이 없어하곤 했다. 나는 요리가 취미인 사람이다. 스트레스 받으면 요리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새언니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건 나를 위함이다. 나는 가족들을 위해 실컷 요리할 수 있는 명절의 기회를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거다. 조카들이 어리기도 했고, 새언니, 오빠, 언니, 형부 모두 아이들 보기에 정신없고 또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가족들을 위해 요리한다.
엄마는 주로 한식을 요리하시고, 나물같은 것을 담당하신다. 그외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요리들을 아무거나 한다. 명절이라 정해진 것은 없다. 매년 메뉴도 다르다.
올해는 명절에 집에 내려가기 전, 미리 하고 싶은 요리 메뉴들을 짜고 필요한 재료들을 챙겨들고 갔다. 이번에 골랐던 메뉴는 오리가슴살 스테이크다. 그리고 파스타.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지만, 집에 가면 다른 재료들도 많을 것 같아 이정도로 메뉴를 정해두었다. 그러다 집에 내려가기 전날, 갑자기 먹고 싶은게 떠올랐다. 칠리콘카르네가 먹고 싶었다. 급하게 재료를 주문했다.
배송된 재료들을 가지고, 칠리콘카르네를 만든다.
소고기다짐육과 양파를 볶고, 시즈닝을 넣어 함께 볶아준다. 토마토를 넣고, 추가로 맥주나 육수를 넣어야하지만 없으니 물을 넣는다. 대신 채소스톡이라 적힌 조미료를 추가한다. 강낭콩을 넣어야하는데, 재고가 없기에 집에 있는 렌틸을 대신 넣는다. 맛을 본다. 부족한 맛은 소금으로 마저 채운다. 간단하게 한 시간만에 칠리콘까르네가 준비되었다.
가족들이 모여있는 집에 제일 늦게 도착했다. 기차표가 이른 아침뿐이라,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 자고 있더라. 큰 조카만 일찍이 일어나 게임을 하고 있더라. (요즘 아이들은 항상 게임을 하는 것 같다.) 하나 둘 눈을 뜨면서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한다.
"어? 언제 왔어?"
간식-칠리콘카르네와 나쵸
다들 일어나니 브런치 시간이었다. 먼저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가져온 칠리콘까르네와 나쵸칩을 맛보라고 건내준다. '이게 뭐지?'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집어든 아이들은, 한번 맛을 보고는 거침없이 달려들어 빈접시를 내더라. 큰 조카도 이제 중학생이 되었고, 막내 조카도 초등학교 저학년을 벗어나 모두가 성장기라 엄청 먹는 듯 했다. 그렇게 나쵸 한 봉지는 금새 동이 나버렸다. 어른들은 맛조차 보지 못했다.
추가로 한켠에 있는 빵을 꺼내들어 팬 위에서 살짝 구워내서 어른들도 맛을 보게 했다. 그렇게 약간의 배를 채우고 있는 동안, 다른 요리들을 준비한다. 오빠네 가족이 조금 일찍 돌아간다 하기에 (나중에 더 머물렀지만) 저녁에 먹으려던 스테이크를 바로 요리하기로 한다.
점심-오리가슴살 스테이크와 스파게티 3종
감자를 잘라 오븐에 구워둔다.
가져온 완두콩, 판체타, 샬롯, 화이트와인, 버터로 완두콩 볶음을 한다.
버섯을 마늘과 버터로 볶아내고, 파슬리를 넣어 마무리한다.
이제 큼직한 오리 가슴살을 구워낸다.
한 켠에서 파스타 삶을 물을 올린다.
스파게티 면을 조금 괜찮은 면으로 사왔다. 전분이 잘 나오도록.
면을 삶는 동안 소스를 만든다.
하나는 푸타네스카, 다른 하나는 카르보나라이다.
푸타네스카를 위해,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슬라이스 마늘을 넣고, 앤쵸비를 넣고 볶아주다가, 다진케이퍼, 토마토, 올리브를 넣고 면수를 넣어준다. 파스타가 어느정도 익으면, 소스에 옮겨 넣고 면수를 넣어가며 잘 섞어 유화시켜준다.
카르보나라는 간단하다. 파마산 치즈가루에 계란 노른자를 넣고, 약간의 면수로 잘 섞어준다. 판체타를 익혀주고, 여기에 익은 면을 넣고 섞어주고, 치즈와 계란 섞은 것을 넣고 빠르게 섞어준다. 조금 뜨거운 상태에서 진행하면서 계란이 조금 덩어리져 버렸다. 망한거다. 아니, 망한 건 아니고- 베스트가 아닌거다.
스파게티면이 너무 많아서, 칠리콘까르네를 데워서 얹어주었다. 치즈도 함께!
그렇게 한 상이 차려졌다.
저녁-간장게장과 전복장 (시판), 잡채와 내 맘대로 소고기국
저녁 상은 간단하게 차렸다. 장을 봐둔게 얼마 없다고 했지만, 일단 있는 걸 먼저 해치우자 싶었다. 누군가가 선물로 줬다는 간장게장과 전복장이 있었다.
당면이 있기에 잡채를 해보기로 한다. 잡채에 난 주로 양파, 당근, 시금치, 버섯, 소고기를 넣는 편인데 당근도 시금치도 없었다. 잡채에 색이 너무 없으면 안될 것 같아, 냉장고에 있는 파를 길게 채썰어 볶아내주었다. 버섯도 볶아주고, 양파, 양념한 소고기를 같이 볶아 잡채를 완성한다. 조카가 와서 맛보더니, 자기 동생을 부르더라.
"얼른 와봐! 잡채 엄청 맛있어!"
시간이 남아 뭔가를 더 하고 싶었다. 국거리 소고기가 있기에, 간단하게 무와 소고기, 다시마를 넣고 국물을 끓여내준다. 고기를 듬뿍넣어 육수가 좋았다. 무를 넣어, 시원함도 있었다. 집에 있는 재료는 버섯과 파 뿐이라 버섯과 파도 잘라 넣는다. 국은 가볍게 국간장을 기본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살짝 넣는다. 고춧가루가 생각보다 조금 매워서 간을 보다가 기침을 콜록콜록 하고 만다. 혹시나 조카들에게 매운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상을 차린다.
가족들이 자리를 잡는다.
국이 처음에는 조금 맵다더니, 다들 계속해서 먹는다.
"이거 어떻게 끓인거예요?"
새언니가 내게 묻는다. 뚝딱뚝딱한다면서 나보고 대단하다 칭찬을 해준다.
모두가 남김없이 먹는다.
내가 요리를 하고나면 나는 어쩐지 입맛이 없어서, 구석에 앉아 먹는 것을 보다가- 다들 먹은 후에야 숟가락을 드는 편이다. 국을 맛보니 내게는 살짝 매운 듯하지만 계속 먹다보니, 맵기보다 시원한 감칠맛이 가득해서 맛있게 먹었다.
아침- 떡국과 전
떡국떡이 있었다. 설날이니 누군가 사둔 모양이었다. 국거리 소고기가 남아있었기에, 소고기로 얼른 육수를 낸다. 무도 함께 넣는다. 너무 묵직한 떡국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육수를 내면서 한 켠에서 전을 준비한다. 전을 부칠 재료도 많지 않았다. 애호박과 연근이 있어서, 애호박전과 연근전을 한다. 부침가루도 없어서, 그냥 밀가루에 간을 하여 만들어본다. 만든 후, 옆에 있는 엄마께 맛을 보라 하나 드리니 맛있다고 끄덕여주셨다. 엄마가 맛있다면 맛있는 거다.
연근을 살짝 데쳐내어, 어딘가 중국 식당에서 맛보았던 연근 샐러드를 만들어본다. 고추기름을 사용해야하는데, 재료가 마땅치않아 대충 만들었더니- 맛도 대충만든 맛이 났다. 역시 요리는 정성이다.
떡국의 고명으로 김가루, 계란 지단, 파를 준비한다.
모두 자리에 앉는다.
언니가 떡국을 먹더니 국물을 어떻게 냈냐고 묻는다. 맛있다고 말이다. 자기는 사골국물 떡국이 너무 묵직해서 싫어한다면서, 그런데 이건 감칠맛도 좋은데 무겁지 않아 좋다더라. 그래서 "무를 넣어서 그럴걸"이라 답했다.
이렇게 딱 24시간 동안 상을 세번 차렸다. (사실 이거 외에도 늦은 사람을 위해 두 번 밥을 더 차렸으니, 5번 상을 차린거다.) 매 끼니마다 모두가 맛있다고 먹어주었고, 내가 요리를 했다고 치우는 건 매번 다른 사람들이 도왔다. 그러니 나는 좋아하는 요리만 실컷하고 치울 필요가 없는 천국이었다.
계획보다 조금 일찍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내 작은 냉장고를 보니, 혼자기에 실컷 요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조금 안타까웠다.
그래도 명절이나 종종, 가족 또는 친구들을 위해 요리할 기회가 있으니, 나는 행운이라 생각했다.
다음 명절에는 무슨 요리를 할까?
지난 명절들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