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정월대보름: a.k.a 나물 지옥

by 이확위

어릴 때는 몰랐는데, 독립해서 홀로 살아가다 보니-

어린 시절 엄마는 우리 삼 남매에게 제철 재료들로 언제나 정성스레 요리를 해주셨음이 틀림없다.


먹기 싫었던 봄철의 냉이,

알이 꽉 찬 서해안의 꽃게와 주꾸미 샤브샤브.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수박, 복숭아, 포도.

가을에는 내가 싫어하던 감과 좋아하던 밤.

겨울의 제주 감귤.


동지에는 팥죽에 내가 좋아하는 새알을 잔뜩 넣어주셨고,

정월대보름이 되면, 각종 나물과 오곡밥이 상에 올랐고

저녁을 먹고는 언니, 오빠와 함께 호두껍질을 내려치고, 땅콩을 까먹곤 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이런 모든 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다 보니-

외식으로 제철 식재료를 챙겨 먹는다는 것은 쉽지 않고,

직접 요리해야 겨우 먹을 수 있는 정도이다.

또한 자취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과일값은 저렴하지 않다.

내가 당연시했던 어린 시절의 맛있는 추억들은 모두 엄마가 애써주신 덕분이었다.

그걸 뒤늦게 알았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지는, 홀로 살아온 지가 제법 되다 보니-

이미 한참 전에 느껴왔지만, 엄마가 해주던 만큼 스스로를 챙기진 못했다.


그러다 작년에, 갑자기 어린 시절의 정월대보름이 생각나서- 각종 건나물들을 사서는 처음으로 정월대보름 맞이 나물을 한 상 차렸었다. 그 당시 연구실에 챙겨가, 옆자리 사람들과 함께 나물 잔치를 해 먹었던 즐거운 기억이 남았다.


올해도 정월대보름이 찾아왔고, 이번에는 함께 나눌 사람은 없었지만-

나 혼자라도 정월대보름 맞이 나물들을 요리하고 싶었다.


전에 사뒀던 건나물이 4종 있었다.

건취나물, 건뽕잎나물, 건부지깽이, 건고구마순.

그리고 냉장고에도 먹으려고 사두고는 요리하지 않는 나물 재료들이 있었다.

유채나물, 미나리, 시금치, 봄동.

나물 재료는 충분했다.


렌틸콩이 들어간 잡곡밥으로 먹고 있어서 오곡밥 재료를 따로 살 생각은 없었다. 팥이나 찹쌀은 선호하지 않아,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정월대보름 전 주말에 길 가다 동네 마트에 각종 잡곡을 종류마다 소포장하여 3 봉지에 천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수, 조, 그리고 뭔지 모르는 하나까지 세 가지를 추가했다. 칠곡밥이 되었다.


건나물은 전날 미리 요리했다. 아침부터 불려두었던 것을 삶아내고,

들기름, 다진 마늘, 국간장으로 다시 한번 볶아준다.

건나물은 신선한 나물재료에 비해- 간이 좀 간간해야 하더라.

보통 건고구마순으로 들기름, 다진 마늘, 국간장정도로 하는데- 이번엔 들깨를 추가해 보았다.

고구마순이 잘 불려져서 아주 부드러운데, 들깨가루가 들어가서 마치 크림소스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크림소스 맛은 아니지만!)


정월대보름 당일 아침,

출근 전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나물을 요리한다.

시금치 같은 것은 버무리고 다음날이 되면 맛이 없기에 당일 아침에 요리했다.

데쳐내고, 헹구고 물기를 짜내고는

다진 마늘, 소금, 참기름, 통깨로 간단하게 마무리한다.


미나리도 동일하게 했다.

데친 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고- 다진 마늘, 소금, 참기름 통깨로 조물조물 버무려 마무리한다.


유채나물은 처음이었는데, 데쳐서 맛을 본다.

살짝 쌉쌀하면서도 단맛이 돈다.

된장에 버무리자 싶었다.

다진 마늘, 약간의 된장, 참기름으로 버무린다.

맛이 좋다.


봄동무침이 요즘 유행이라더라.

봄동을 씻고, 먹기 좋은 크기로 준비해서

양념을 만들어 버무려준다.


정월대보름을 위한 나물 8종이 완성되었다.

모두 한데 모아두니, 아직 먹기 전인데도 뿌듯함과 함께 이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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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었다.

신선한 나물들은 최대한 당일 점심, 저녁에 해치우려 노력했다.

그 후로도 남은 나물로는 고추장을 넣어 비빔밥을 하면 나물과 밥만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단백질이 조금 부족한 듯하여, 불고기도 곁들여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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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을 사람이 있다면, 함께 했겠지만

올해는 아쉽게도 함께 먹을 사람이 없었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내일도 나물을 먹어야 한다.

상하지 않은 게 다행인 건지 아쉬운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아직도 맛은 있다.


나의 맛있는 나물지옥.


내가 차린 나의 정월대보름 한 상이 맛있던 만큼,

어쩐지 어린 시절 함께 먹던 엄마의 식탁이 떠올랐다.


우리가 모두 독립하고는-

엄마도 예전처럼 차려드시질 않는다.


엄마의 메시지처럼-

함께하지 못함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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