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10만원 디너보다 내 김치찌개를 더 잘 드셨다. 엄마에게 요리를 해 드리며,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대접할 때는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더 고려해야 함을 알게되었다.
엄마와 해외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몇 년 만에 엄마가 일정을 비울 수 있던 시기였기에 한참을 꿈꾸던 여행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여행당일 공항에서 만나서 출국할 수도 있었는데, 출국일 바로 직전의 주말에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연말 맞이 오페라 갈라 공연이 있었고, 내가 꽤나 맛있게 먹었던 터키 브런치를 예약해둔 것이 있었다. 더불어 근처에서는 오르세-오랑주의 전시회를 하고 있으니 엄마가 좋아하실 것을 알았다. 그렇게 출국일보다 며칠 일찍 서울로 올라오신 엄마를 모시고 서울에서 본격 여행 전의, 몸풀기 여행마냥 서울을 돌아다녔다.
엄마가 도착하신 날 저녁 함께 공연을 보고, 원래는 근처의 괜찮은 식당에 가려했으나 갑작스런 눈과 함께 날씨도 좋지 않기에 집에 일찍 돌아갔다. 집에 있는 재료들로 간단히 식사를 차려드리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돌아간 집에서, 냉장고와 냉동실을 뒤져서 내가 담근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냉동실의 생선도 굽고 반찬들을 꺼내 한 상 가볍게 차려내었다. 엄마는 오래간만에 남이 차려준 밥을 먹는다며, 밥을 한 그릇 다 비우시고- 맛있다며 더 드시기까지 했다.
다음날에는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드렸지만, 내 생각만큼 잘 드시진 않았다. 오히려, 샌드위치에 곁들여 먹도록 내가 만든 오믈렛을 더 잘 드셨다.
점심으로 터키 브런치에 모시고 갔건만, 생각만큼 엄청나게 즐기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표현이 많은 분은 아니지만, 먹는 모습을 보면 즐기는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계속해서 먹으면 입맛에 맞아 음식을 즐기는 거고, 속도가 느리면 그냥 그런거다. 숟가락을 잘 들지 않으면 그건 안 맞는다는 거다. 첫번째 계획인 터키 브런치가 완전히 엄마의 취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후, 그날 저녁에는 전에 내가 맛있게 먹었던 식당에 모시고 갔다. 메뉴를 골라서 주문했는데, 지난번에 내가 왔을 때보다 채소가 줄었고, 맛있게 먹었던 생선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엄마는 역시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채소가 너무 없다는 짧은 불평을 내뱉으셨다. 돈은 십만원이 넘게 썼건만, 실패인거다.
다음 날 아침은 남았던 김치찌개를 이용해 김치죽을 끓여드렸다. 이렇게도 남은 음식을 활용하는 구나-라면서 김치죽을 한 그릇 모두 비우셨다. 내 음식은 입에 맞으시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은 나는 출근하고 엄마는 집에 계셔야했다. 읽을 책도, 볼 영화도 모두 준비되어 있지만 난 알았다. 내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청소를 하실 것임을. 역시나 점심에 (직장과 집이 8분 거리이다.) 다시 찾은 집은 한층 깨끗해진 모양새로 변해있었다. 점심은 간단하게 고등어를 굽고, 메밀소바를 익혀서 쯔유를 이용해 따뜻한 국물을 부어 고등어 소바를 준비하였다. 이번에도 엄마는 맛있다며 그릇을 모두 비우셨다.
저녁에는 근처에 유명한 50년도 더 된 도가니탕 집을 모셔갔는데. 무슨 마가 낀것인지- 내가 혼자와서 먹을 때 괜찮던 곳들이 엄마를 모시고오니 맛이 영 부족했다. 진했던 국물은 밍밍했다. 먹는 순간 ‘어? 국물이 왜이래?’싶었는데, 한 입 드신 엄마는 말했다. “잘하는 집은 아니네.” 맥이 빠졌다. 나름 고민해서 모셔왔건만 실망만 안겨드렸다. 원래는 도가니탕을 포장해가서 다음날 그걸로 배를 채운 후, 공항으로 함께 나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도가니탕 맛을 본 엄마는 말하셨다.
“도가니탕 하지 말고, 네 김치 맛있으니- 가는 길에 고기 좀 사가서 김치찌개나 끓여먹을까?”
그렇게 엄마의 말대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돼지고기를 조금 사들고 왔다. 다음 날 아침, 김치찌개를 끓였다. 떠나기 전 한 솥 끓여 남겠거니 했지만, 어머니는 밥을 두공기나 드시며 김치찌개를 남김없이 다 드셨다.
엄마에게 바깥에서 맛있는 것들 맛보여 드리려 애썼는데, 그건 어쩌면 나의 욕심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지, 엄마 취향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내 기준으로 생각하고 밖에서 돈을 썼다.
그러나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엄마 밥을 먹으며 자라- 엄마의 입맛과 비슷한 내가 만든 내 밥상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