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에는 언제나 배달이나 캠퍼스 근처 식당들에서 끼니를 때우곤 했다. 프랑스에서 일을 하던 시절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연구소가 있는 캠퍼스 내 연구원 식당에서 점심을 하곤 했다. 그러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자리 잡은 새로운 직장은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니 가까운 곳에 마땅한 곳이 없었다. 배달을 시키자니,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난 너무 어려운 사람인지- 혼자 먹어야 했고, 그러자니 배달료나 모든 게 부담이었다. 직원식당을 이용하는 것도 몇 차례 조금 질릴 때쯤 건강검진에서 식이요법을 하라는 권고를 받아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를 위한 도시락을 싸야지 생각했다.
먼저 도시락 통을 주문했다. 인터넷 주문을 보통 충동적으로, 자기 전이나 자다 깨서 주문할 때가 많은데- 약간 몽롱한 상태로 주문해서 수량 실수가 잦은 편이다. 한 두어 개 사려던 게 8개가 오기도 하는데, 일단 구매한 건 환불을 잘하지 않고 어떻게든 쓰는 편이라, 도시락 통을 사이즈별로 넉넉히 갖게 되었다.
그 당시 저속노화밥이라고 렌틸콩:백미:귀리:현미를 섞은 잡곡에 대해 SNS상에서 각광받고 있었고, 내 건강에 좋을 듯하여, 렌틸콩을 넣은 밥을 해서 냉동해 두었다. 그런 후, 주말에 메뉴를 짜고 필요한 재료들을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둔다. 전날에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난 요리하는데 손이 빠른 편이라 주로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도시락을 싸는 건 내게 쉬웠다. 내 도시락은 맛도 있었다. 다만 그 맛을 나눌이가 없어, 그저 혼자만의 만족으로 이어지곤 했다. 또한 같은 음식에 쉽게 질려서 점심, 저녁 도시락을 조금씩 다른 조합으로 싸곤했다. 그러다보니 요리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음식이 남았다. 나는 남음 음식을 잘 먹지 못했기에, 남은 것들은 결국 쓰레기가 되었다.
그렇게 도시락을 챙겨 와서 먹는데, 어느 날 옆자리 박사과정 학생이 밥 먹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다른 친구와 배달이나 밖에 나가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날은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메뉴가 나에겐 너무 충격적이었다.
편의점에서 산 햇반, 참치캔, 볶음 김치.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끼니를 저렇게 때워본 적이 없다. 이게 한 번이 아니라, 햇반에 전자레인지에 데운 닭가슴살 한 덩어리. 햇반에 조미김.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좀 슬펐다.
그때 나는 도시락을 한동안 싸면서, 매번 도시락을 점심/저녁으로 두 개를 싸곤 했는데, 양조절의 실패라기보다- 혼자이기에 다 먹을 수가 없기에 매번 반찬이나 요리들이 남았다. 남아서 버리는 게 아깝다 여겨질 때쯤 눈에 들어온 게, 간단히 때우고 있는 옆자리 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제가 도시락을 싸면 항상 재료가 너무 남는데, 제가 도시락 드리면 드실래요?"
라고 말이다.
내 도시락 메뉴들을 보고는 "직접 요리하신 거예요? 우와."라고 종종 말하곤 했던 그녀는, 그래도 되냐며- 자기는 그럴 수 있다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처음에는 너무 실례라며 거절했지만, 내가 매번 남아서 버리는 재료들이 많다는 점을 어필하자, 그녀도 고맙게 받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요리를 하면, 내 요리를 SNS 스토리에 올리곤 한다. 나의 스토리를 보고 그녀는 그날의 도시락 메뉴를 알 수 있었다. 도시락 메뉴에 조금 힘을 써서 챙겨가 점심에 꺼내면,
"저 사실 오늘 아침 스토리보고, 점심 메뉴 너무 기대됐어요."
라고 말하곤 했다.
요리는 나를 위함도 있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가 훨씬 즐겁고 맛있다.
그 친구가 도시락 나눔에 대해 집에서도 얘길 한 모양이다. 그녀의 어머님은 내게 고맙다며 선물들을 챙겨 보내셨다. 프리미엄 과일들이나, 좋은 올리브오일, 좋은 참기름, 명절에는 LA갈비까지 구워 보내주셨다. 그 친구가 자리를 비우게 된 후에는 또 다른 대충 때우는 사람이 자리를 채우기에, 다시 한번 도시락을 제안했고. 새로운 도시락 메이트의 어머님 또한 내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친구들이나 주변에 결혼한 이들이 많아 얘기를 나누다 보면, 엄마의 입장에서 그들이 말했다.
"내가 엄마라면 너무 감동이지. 우리 애 밥 챙겨주는데. 나도 못해주는 걸."
나는 무언가 대단한 걸 하는 게 없었다.
그저 말 그대로 나눔이다. 왜냐하면, 나에겐 많으니까.
어차피 나를 위해서만 해도 남는 것들이고,
버리는 것보다는 나눌 뿐이다.
그러니 사실 누구라도 나처럼 할 수 있을 거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피곤한 일로 여기기에
내가 하는 요리들이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런 요리를 나눌 때,
사람들은 고맙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나는 나를 위해서 도시락을 쌌고,
그걸 주변과 나눌 뿐이다.
대단한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선물을 받는다.
누가 감사하다고 해야겠는가.
그들이겠는가, 나겠는가.
내 생각은 고마워해야 하는 건 그들보다 나다.
혼자 먹던 도시락이 혼자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2025년에 쌌던 나의 도시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