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예전에는 엄마와의 전화 통화를 하면, 각자 본론만 말하고 바로 끊어버리곤 했다. 조금이라도 한 마디를 더할라 하면, 이미 엄마의 전화는 끊겨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해외에 일하러 가게 되면서, 통화로 내 근황이나, 내가 그곳에서 느끼며 알게 된 것들을 얘기하며 우리의 전화는 조금 길어졌었다. 그러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다시 통화 시간이 줄어들었었다. 그러다 한 반년 전부터였을까. 내가 엄마처럼 종교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교리를 배워나가며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고, 무언가를 새로 알게 되면 이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 주변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엄마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해당 종교에 대해 공부해서 무언가를 새로 알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거 알고 계셨어요?"
나는 나의 불렛저널 노트에 하루에 감사한 것들과 나의 성취, 작아도 무언가 해낸 것들을 적어둔다. 하루가 매일 반복 같이만 느껴지지만 사실 살펴보면- 하루하루가 다르단 것을 알고 싶어서 말이다. 며칠 전 이런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엄마와 한 시간이 넘도록 대화하며 통화하는데 어려움이 없어 감사하다.
그렇게 적었던 것을 엄마와 통화하며 얘기를 했다. 그러자 엄마가 "공통 관심사"가 있으니 그렇지 않겠느냐 했다. 엄마도 나도 조금은 비슷한 것이, 관심이 없는 주제에는 대화를 잘하질 못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도 관심 없는 얘기가 나오는 금세 관심을 잃고 집중력 또한 잃게 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가 공통으로 관심을 갖는 일이 생기니, 얘길 나눌 수 있었고- 그것이 결국 삶에 관한 것들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얘기들로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거였다.
얼마 전, 엄마와의 여행에서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둘이 대화를 나눴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힘들게만 하고, 만나면 맨날 투닥거리고 싸우기만 하면서- 아버지와 왜 함께하냐 물었다. 우리 삼 남매가 신경 쓰일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힘들면 둘이 안 살면 되지 않냐 말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었다.
며칠 전 통화 중에 엄마가 말하길, 누군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자신은 이름에 난초 "난"이 들어가 난초처럼 살고 있다면서, 나의 아버지가 엄마를 왜 그렇게 부려먹느냐고 했다고 말이다. 엄마는 성실하게 일을 하셔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돈을 꽤나 모으셨던 모양이다. 나는 엄마가 돈을 그렇게 벌었다는 것조차 전혀 알지 못했었지만. 그런데 사업을 하는 아버지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돈을 "빌려"가셨고, 엄마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정말 통장 잔고가 얼마 남지 않고, 신용카드조차 발급받지 못하던 시기가 왔을 때에, 엄마는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맘을 비우기로 했다고 했다. 더 가지려는 마음을 모두 던져버리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돈을 다 잃은 셈이시니, 여전히 계속 일을 하고 계신다. "난초"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그런 엄마가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이 부려먹는 모양새로 보였던 것이다. 그런 난초처럼 산다고 누군가의 부럽지 않은 자기 자랑을 들으며 우린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은 난초처럼 사는 것이 좋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거 같은데- 보면, 모든 사람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생각에 나도 그렇고, 엄마도 그럴걸요. 나는 그저 쇼핑하고, 무언가 즐거운 것만 하면서 하는 삶에서 삶의 가치와 성취를 느끼질 못해요. 나는 그 감각이 없는 삶은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보기엔 엄마도 그래요."
이런 내 말에 엄마도 동의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이게 다 나의 아버지가 만들어 준 기회들이었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그 옛날에 해보라고 했었다니까. 나는 내가 어떻게 하냐고 했지. 그런데도 할 수 있다 해서 무서운데도 하고 나니, 처음에는 물론 어려웠지-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지금처럼 이렇게 된 거지. 네 아버지가 그런 걸 잘했다니까. 엄마 그 옛날에 꽃꽂이할 때도, 서울까지 매번 운전해서 데려다주게 했고."
나는 그런 엄마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우리 오빠들도 그렇고. 누가 나에게 그런 기회들을 준 건 네 아버지가 처음이었지."
지금까지 결국 해낸 것은 엄마였다. 그러나 엄마는 무엇보다 시작할 생각조차, 자신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를 안겨 준 것이 모두 나의 아버지라 말했다. 나의 아버지가 있기에, 지금의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말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그녀는 지금도 아버지가 하는 의견에 동조를 잘한다. 아마 엄마가 살아오며- 많은 경험 속에서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많은 힘이 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그들의 다툼이나, 어려움을 보고는 "딱히 사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같이 살아요?"라는 건방진 소릴 했던 거다. 엄마에게는 그들의 인연이 소중한, 삶을 함께 공유해 온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 전에, 그녀도 그녀의 삶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엄마와의 통화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나는 감사하다.
한 시간이 넘는 통화를 하면서도 '아 언제 끊어'가 아니라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라고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나의 엄마를 더 알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모닝페이지의 기록
나는 엄마가 어째서 그렇게 힘들게만 하는데, 아버지와 아직도 함께하는지가 의아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삶을 변화시켜준 사람이었다. 애초에 우유부단한 모습의 당신의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그 모습이 싫었고, 그랬기에 결단력 있는 내 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하게 해 준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지도 몰랐었고, 처음에 두려웠지만 옆에서 해보라며 계속해서 응원해 줬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엄마가 하고 있던 꽃꽂이를 더 배울 수 있도록- 시골에서 서울로 꽃꽂이를 배우러 가도록 매번 운전기사를 대동시켜 주었다 말했다. 엄마에게 그렇게 해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엄마 당신의 아버지도, 오빠들도 아무도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고. 지금 엄마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모두 나의 아버지 덕분이라 했다. (2026.03.13.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