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말했다. 넌 참 진솔한 친구야.

by 이확위

꽤 오랜 시간을 우울과 불안으로 힘들어했던 나는, 삶 속에서도 언제나 죽음을 함께 생각하며 살았다. 뭐랄까, "꼭 살아야 하는 이유"같은 것을 몰랐다고 해야 할까. 삶에서 뭔가 하나의 큰 기둥, 나의 삶은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 같았다. 삶이 소중해서 살아야 한다고 느낄만한 무언가가 내게는 없는 듯했다. 그런 내게 두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었다. 하나는 나의 엄마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대학교 때 친구였다. 둘의 공통점은 종교였다. 서로 다른 종교이지만, 삶에 대한 자세에서 비슷함이 있었다. 그들을 보며 '믿음이란 게 뭐지?' 하며 궁금증을 느꼈었다.


그런 후, 이런저런 이유로- 한 반년 전부터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란 것에 대해 알아보고자 행동에 옮겼다. 이곳에서 그걸 자세히 말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저 많은 이들처럼 "종교"라는 것에서 힘을 받아 삶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다고 하고 싶다.


나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해 준, 그 친구를 Y라 하겠다. Y와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해 함께 만났었다. 거의 일 년 만에 서로 만나는 셈이어서, 근황 토크가 주를 이뤘고, 그 후로는 앞으로의 일들을 얘기했다. Y는 언제나 사업이 하고 싶다 말했다. 많은 돈을 벌거라 말했었다. 대학교 다니던 때에도 내게는 돈을 많이 벌어서 그걸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자기 머릿속에는 이미 그것들에 대한 구상이 있다고 했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었는지 모르겠지만, Y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며, 결혼을 하고, 최근에 아이가 태어나고- 그렇게 일상이 변해갔지만 그 예전에 말했던 그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Y의 이런 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핑계 같은 거라고 말이다. 나는 조금 그를 대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 그런 삶을 산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돈을 버는데 그 돈의 목적을 사회에 두겠다는 거 아닐까?"

"야, 사회를 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큰돈을 벌어."


최근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바라는 마음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내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살아가게 해 주세요.

뭔가 대단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만족감을 위한 것보다- 다른 사람도 기쁘게 할 때, 그때 나도 함께 더 큰 기쁨을 느낀다고 최근에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직업적으로 하고 있는 연구에 있어서도, 나의 만족 위한 연구라기보다는 나의 연구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만한 가치의 연구라면 나도 좋고 세상도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런 마음을 조금씩 가지고 있을 때, 사제가 내게 "..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라며 따뜻한 손길로 내게 기도의 말을 해주었고- 그 후 나는 다시금 이 생각을 내 마음에 새겼다.

'제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나의 삶이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함이 되게 하소서.'


이런 게 기도인가 하는 맘으로 이러한 생각을 지닌 후, 이내 곧- 친구 Y가 생각났다. 친구 Y가 말하던 게 이 맘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그에게 처음 들은 지 거의 15년은 지나서야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것만 같았다. Y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낸다. 진지한 내용을 여러 개의 카톡으로 나누어 보내면 무언가 가볍게만 느껴질 것 같아서- 나는 나의 이 마음이 진지하다는 걸 말하고자 누가 봐도 "장문"으로 그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의 나에 대해 얘기를 하고- 그러면서 네가 생각났다고. 얼마 전에도 네가 말했던 그 말을 떠올렸다고. 그러며 그 당시 말해주지 못했던 것이 있어 이렇게 연락한다 말했다. "그런 너의 삶을 응원해."라고 말이다.

너는 참으로 진솔하고 좋은 친구야.

시간이 조금 지나고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이런 메시지를 주어 내게 감사하다면서 말이다. 내가 전보다 좀 더 평온해졌다는 나의 소식도 너무 기쁘다 말했다. 이런 좋은 소식도 고맙고, 자신에게 언제나 응원해 줌도 감사하다 했다. 그러며 나를 진솔하고 좋은 친구라 말했다. 우리에게 만남의 축복이 허락된 것이 자신은 너무 감사하다 했다. 내가 그림을 그려 보내주었던 엽서도, 오늘의 이런 메시지도 자신에게는 매우 큰 선물이라 했다. 대단한 마음으로 한 것들이 아니었지만, 언제나 진심이었는데- 이를 알아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의 존재가 세상에서 조금 더 의미를 가지는 것만 같아졌다.


나는 우울과 불안으로 사회 속에서 도망가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가 있었을 때, 언니가 내민 손길과, 나를 끌고 개강파티에서 사람들 사이에 앉혀주던 나의 친구들, 매번 나를 불러주던 그 친구들 덕분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내 나름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친구의 메시지에서 친구 또한 나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 나는 무척이나 기뻤다.

나를 진솔하고 참 좋은 친구라는 그 한마디가, 내 존재를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내가 되어 있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예전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꼭 말로만 해야 아느냐고. 말 안 해도 알아서 느끼고 이해하면 되지 않냐고. 그런데 말로 내뱉는 순간이나 글로 남겨지는 순간은 무언가 더 또렷해지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상대가 알아서 이해하고 느껴주길 바라기보다, 그냥 내가 먼저 표현을 해보기로 했다.

나도 편하고 상대도 편한 셈이다. 보다 쉽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거다.

내가 친구에게 응원한다 말하지 않았다면, 내게 이 날과 같은 말이 돌아오지 않았을 게다. 물론 그 친구가 언제나 내게 잘 대해주는 것은 알지만, 그 친구 또한 내가 친구임에 감사히 여긴다거나 하는 그런 마음까지는 나는 미처 느끼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조금 더, 나의 마음을- 고마움이나, 응원이나, 위로나 진심을 담은 나의 생각들을 나의 사람들에게 더 전하려 한다. 나의 삶이 나만이 아닌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모닝페이지의 기록

그런데 나는 오늘 내가 했던 기도를 떠올리자 혹시 얘도 이런 마음인가 싶었다. 우리가 한동안 연락을 못했어서,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성경을 읽고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져 가고 있고, 오늘 이러한 기도를 했는데, 그게 널 떠올리게 했다고. 그때 말 해주지 못했는데-언제나 널 응원한다고. 나에게 답장으로 너무 기쁜 소식이라며 나에게 넌 찬 진솔한 친구라더라. 우리의 만남을 허락해주어 감사하다고. (2026.03.14 나의 모닝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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