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모임"이란 곳에서, 나이제한 만 48세 이하-라는 문구를 보고는 '만 48세? 청년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청년"에 속하기엔 애매한 나이가 되었다는 걸 인정할 때이다. 흔히 정부에서 시행하는 "청년" 혜택 속에서는 이미 진작에 그 나이를 넘어섰고, 다른 곳들에서 "청년" 대상으로 하는 것에는 겨우 발을 걸치고 있긴 했다. 그러다 어쩔 때는 '여기까지 청년이라고?'싶을 만큼- 청년의 범위를 엄청나게 넓게 잡은 곳들을 만나면 반갑다기보다 민망한 느낌이 들곤 했다. 마치 나까지도 엠지세대에 속한다는 걸 알았을 때의 '이게 맞나?' 하는 느낌처럼 말이다.
청년이라 불리는 나이부터는 젊은 성인들이니, 이미 "어른"인 거고, 이제 나는 그런 청년으로 불리기 민망할 정도가 되었으니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어른이다. 친구와 나는 종종 우리 나이에 깜짝 놀라며, 우리 나이에는 이럴 거라 생각했던 모습보다도 우리는 철없는 모양새라 이 나이가 낯설 때가 많다. 아마 이런 느낌은 요즘 시대 30대부터는 비슷하게 느낄 거다.
어쩌다 80-90년대 뉴스 인터뷰 영상을 보며, 거기 나온 일반인들의 나이와 그들을 모습, 말하는 것들을 보면 많은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30대인데 왜 이렇게 더 나이 들어 보이지?' 단순히 우리 세대부터 선크림을 더 잘 발랐으니 피부노화가 덜했다-의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옷차림, 표정, 말씨, 내뱉는 말들까지도 우리가 어릴 적 생각하던 "어른"의 모습에 닮아있다. 그에 비해 요즘은 그에 비해는 조금 더 자유로운 옷차림, 조금 더 여유로운 표정은 있는 듯하다. 생각의 깊이 여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무엇이었고, 나는 지금 어떠한가를 생각해 본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사전을 찾아본다.
어른 [명사]: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가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집안이나 마을 따위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다 자란 사람. 여기서 다 자랐다는 것이 단순히 신체적인 "성장기"를 말하는 건 아닐 테다. 단순히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고, 어른인 건 아니겠지. 결혼한 사람을 어른이라 부른다 사전에서 말하지만, 진짜 어른은 단순히 결혼 여부가 아니겠지. 정신이 성숙해져 모두 자란 사람을 말하는 거겠지. 그래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란 거겠지. 결혼이란 것 또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것이니까, 부모가 된다면 그 아이가 자랄 때까지 책임을 지고 돌봐야 하는 것일 테고.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이가 진짜 어른이라면, 나는 어떨까.
나는 종종 말한다. "나는 책임감이 싫어."라고 말이다. 책임감이 무섭다고 말한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내가 지금의 상황에서 잘 키울 자신이 없다. 거의 20년의 시간을 그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 두렵고, 나는 그럴 수 있을 정도의 책임감을 지니지 못한 것 같아서 그저 꿈으로만 강아지들을 생각한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서, 나의 유전자를- 나와 닮은 누군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 조금 내게는 끔찍하게도 싫은 일이긴 했다. 그래서 아이 생각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여기에 더불어, 나는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운다는 건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고, 그 모든 게 너무나도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나보다 우선시하여, 세상으로부터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다.
예전에 한 영화에서 한 아빠가 딸에게 하던 말이 있었다.
아빠와 딸은 바닷가에서 손을 잡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거센 파도가 밀려왔고 그다음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딸이 사라진 걸 알고는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다행히도 별일이 없이 딸을 물속에서 다시 찾아 두 손을 다시 쥘 수 있었지만, 그 몇 초의 순간이 자신의 삶에서 느낀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말했다.
그걸 보면서도 난 생각했다. '역시 아이가 생긴다는 건, 세상에서 너무 큰 두려움을 갖게 될 것 같군.'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 충분히 성숙지 못한 거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이만 어른이 되었을 뿐,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거라 해야 할까? 혹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이가 진짜 어른이라면, 자신이 하지 못할 것을 알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이도, 책임감이 있다고- 이런 나 또한 진짜 어른이라 말할 수 있으려나?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선택에는 책임을 진다. 내가 그러지 못할 것은 애초에 선택하지 않은 겁쟁이니까.
안정된 직장은 없지만, 돈은 벌어 내 밥벌이는 하고 있고- 종종 좋은 밥도 먹을 수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지만,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고- 나의 조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걸 해주려 한다.
삶에서 정답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지만, 계속해서 바른 길로, 내게 맞는 길로 가려 애쓰고 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살아가려 하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짜증이 나면, 주변인에게까지 그걸 표출했었다. 이제는 그런 감정을 조금은 뒤로 미뤄둘 줄도 알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웃음의 가면으로 대할 수 있다.
나는 완벽하지 못하다. 부족하지만 나는 나로 살아가려 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어른들은 무척 크게만 보였다.
어른이 되면 모든 걸 알 줄 알았다.
-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변화와 상관없이도 애초에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어른이 되면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 하지만 난 여전히 삶의 많은 상황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삶에 깊이 내린 뿌리가 중요할 게다.)
어른이 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줄 알았다.
-어른이 되고 한참을 이를 위해 애써온 것 같다. (우울의 깊은 수렁에서 나에게 많은 질문들을 던졌고,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왔다.)
아직 온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는 못한다.
한 사람이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일이 가능한지나 모르겠다.
어른인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고
책임이 두렵고
많은 상황 속에 흔들리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어렵기만 하고
종종 도망가고 싶고, 세상이 잠시 멈추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고 있으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바라는 "진짜 어른"의 모습은 아니지만
조금은 그런 어른에 가까워지고는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어른들이나, TV 속 80-90년대의 어른들이나, 완벽한 "어른"의 기준은 애초에 없는 거다. 무수히 많은 부족함 속에서, 그럼에도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게- 어른이다.
어른의 삶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의 문제인 거다. 무수히 많은 정답이 존재하는 걸 테다.
이리 생각해 보면, 삶이란- "어른으로 살아가기"가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는" 그런 여정이 아닌가 싶다.
모닝페이지의 기록
진짜 어른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나이만으로 어른인 것은 어떤 모습인 거고, 진짜 어른은 또 무엇일까. '저런 게 무슨 어른이야'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어떻지? (2026.03.30.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