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안식처"가 있다면 좋을 텐데

by 이확위
사람들은 거기를 왜 그렇게 가냐고 하는데, 저는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해요


나와 단둘이 독서모임을 하며 평소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던 분이 말했다. 그분은 한 나라만 여행을 10번을 넘게 갔다고 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여행 얘길 들으면 매번, "거길 또 가?"라고 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매번 같은 곳 가는 거 돈 아깝지 않냐 한다며- 그런 그들의 반응이 이제는 제법 스트레스라 말했다. 자신도 자신이 그곳을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제 하도 여러 번 가서 더 볼 새로움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 숨만 쉬어도, 그냥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자신은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부럽다" 말했다. 그런 장소가 있다는 것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느냐고. 힘이 드는 순간 나를 충전시켜 줄 곳이 있다는 얘기지 않아야 말했다. 그분은 이렇게 공감해 준 사람이 없었다며 나의 반응에 기뻐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혹시 그런 곳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마음의 안식처, 나에게 휴식이 될 수 있는 공간 혹은 사람- 그런 곳이 있나?


어린 시절, 엄마 껌딱지

어릴 적에는 무조건 엄마였다. 엄마 껌딱지였고- 엄마가 가는 곳은 무조건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고- 떨어져 산 시간이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길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했으니) 그래서인지, 지금은 어린 시절만큼 의존하지도, 의지하지도 않는 듯하다. 에전에 글에서 한번 쓴 적이 있는데, 내가 우울증으로 집에서만 지내던 시절, 침대에서 TV만 보고 있던 나를 보며 한숨을 쉬시고- 청소기를 돌리며 그 옆을 지나갈 때 말없이 TV를 끄고만 가셨던 게 내게 꽤나 충격으로 남았다. 그 후로는 쉬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인다는 데에 불편함이 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껴서 말이다. 그러니, 나의 안식처가 될 수 없다. 나는 엄마 곁에서 쉴 수가 없다. 엄마는 내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리 느낀다. 어쩔 수가 없다.


나의 언니

그다음으로 언니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분리불안이 있었기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항상 언니와 방을 함께 썼다. 고등학교 자취도 언니와 함께했고- 나의 우울은 언니가 먼저 졸업하고 떠난 후에 찾아왔었다. 대학생이던 시절에도 언니, 오빠와 함께 살았었는데- 내가 우울함에 휩싸여 다시 방에 들어갈 때에도 나의 오빠는 그의 마음속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언니는 달랐다. 나를 끌고 세상밖으로 나갔다. 자기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 나를 데리고 가서는, 영화관에서 자신의 양옆으로 남자친구와 나를 앉혀두었다. 그렇게 내가 방 안에서 나만의 세상에 매몰되지 않게 나를 도왔다. 그러니 나는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엄마보다 언니가 내게 더 큰 존재가 되었었다.


언니가 결혼할 때 축하함보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조카가 태어났을 때- 그때 더 큰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축하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한 편으로 가슴 저 안쪽에서 '이제 언니만의 가족이 생겼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형부만 있을 때는 그래도 나는 언니 삶에서 중요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저 작은 생명체는 내가 절대 못 이기겠구나란 생각에, 이제 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생겼으니 내 자리는 없다 생각했다. 언니는 종종 언니가 첫째 아이에게 내 이름을 실수로 부르고, 내게 첫째 아이 이름으로 부르며 헷갈려할 때가 있는데, "진짜 왜 이러지? 너랑 XX랑만 매번 실수로 이름을 바꿔 말한다니까."라고 하곤 한다. 언니는 내게, "네가 잘 지내는 걸 보면, 우리 아이들도 잘 살아갈 것 같은 믿음이 생겨.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니가 그런 것을 보면, 나에게만 언니가 큰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아 제법 힘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니는 언니의 가정이 있고- 언니만의 문제로 많이 바쁠 것을 알기에, 그 곁에서 온전히 나를 맡기고 쉴 수가 없다.


오빠는 앞서 말했듯, 그렇게 가깝진 않은 편이다. 내가 초등학생을 졸업할 무렵 오빠는 기숙사로 떠났으니 우리가 함께 산 시간은 그다지 길지가 않다. 나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나를 병원에 가뒀다는 원망으로 중학생까지는 아버지에게 말도 하지 않았으며 (내 나름의 침묵시위),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편하다고 할 존재는 아니다. 물론 오빠나, 아버지 모두 나를 걱정하고 나를 위함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것과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아버지와 가깝고 아니고를 떠나,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된 후에야 조금씩 따듯한 말과 감정을 표현하시곤 하셨다. 그중 내게 가장 힘이 되어준 말이었다면, "아버지는 항상 네 편이다."였다. 살면서 의논을 할 때면, 온전히 내편인 거 같지는 않지만, 그건 우리 개인의 의견 차이이고- 마음만은 아마 내 편이라는 아버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내가 살 던 그 집

내가 온전히 나 혼자만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을 떠난 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때는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니고,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니- 나의 독립의 시작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산 것만으로는 기숙사부터 성인이 되고 거의 줄곧 이었지만, 진정한 독립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좋은 일이 많았다. 연구는 지지리도 안 됐지만, 커리어적인 면을 빼고-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곳에서 나는 정말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많은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 기분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 그랬기에 실제 지냈던 기간 보다 더 더 오랫동안 그곳에서 산 듯한 느낌이었다. 그랬기에 한국에 돌아올 때에는 떠올리기만 해도, 그곳에는 좋은 기억만으로 가득했다. (연구실 실험은 안되었지만, 딱히 나쁜 기억으로 남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 돌아온 후였다. 집주인이 시간이 지나도 보증금을 안 보내는 거다. 부동산 담당자가 집주인이었는데, 연락을 해도 연락이 닿지 않고- 어쩌다 연락이 되면, 보내겠다 말만 할 뿐 보내질 않았다. 나보다 먼저 집을 떠났던 이와 연락이 닿았는데 1년이 넘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보증금이 대단히 큰돈은 아니었다. 고작 2개월치 월세였으니까. 하지만 괘씸했다. 외국인이라고, 그 나라를 떠나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 생각한 건지-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 것이 괘씸해서 나는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법률 서비스를 통해 프랑스 법원의 조정위원까지 만나가며 어찌저찌, 보증금의 일부를 돌려받았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슬펐다. 그곳에 살 때 집주인은 친절했다. 나는 운이 좋다 생각했다. 이런 집주인을 만났다니. 그런데 그들은 돌아간 후에, 월세를 돌려주지 않는 악덕 집주인이었다. (내가 아는 것만 나 외에 3인) 그들은 그저 악랄한 사기꾼에 불과했다. 이런 악한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나는 슬펐다. 엄청나게 큰돈도 아닌데, (물론 내게 적은 돈도 아니지만) 그런 돈 몇 푼을 위해 이런 짓들을 벌인다는 게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실망감보다 날 슬프게 했던 건, 그들과의 이런 일 이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던 그곳의 삶의 터전이던 그 집을 떠올리면, 그들과의 이 불화가 먼저 떠오른다는 거다. 나의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거실의 파란 소파는 이제 더 이상 포근하고 따뜻한 기억이 아니게 된 거다. 그들에 대한 기분 나쁜 기억 없이는 그곳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슬펐다. 내 삶의 좋았던 추억이 더럽혀져서. 그렇게 어쩌면 나의 안식처가 될 수도 있었을 프랑스의 한 도시는 안식처 후보에서 영원히 지워져 버렸다.


한 나라만 계속 간다는 그분을 말을 들으며 꽤나 인상 깊었다. 앞서 말했듯,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런 곳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삶에서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나를 힐링시켜 주는, 다시 재충전시켜주는 그런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일까. 내가 힘든 순간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당신 삶의 안식처가 있었으면 한다.

사람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다.


만약 나처럼 당신도 찾아야 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만의 안식처가 우리 삶에 힘과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모닝페이지의 기록

계속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10번이 넘게 그곳을 다녀왔는데도, 계속해서 찾게 된다 했다. 그곳에 가서 숨을 쉬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더라. 내게도 그런 곳이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2026.03.29. 모닝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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