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자신 안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제의 독서모임의 지정도서인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책 전체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장일 것이다. 독자들에게 작가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자, 책 속의 주인공이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되니까 말이다.
원래 어제 독서모임의 참가자는 나를 포함해 4명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유료 독서모임에서 나는 호스트(그곳에서는 파트너라 부른다)로 모임을 이끌어 나가는데, 우리 모임의 이름이 "여행과 일상 사이"이다. 여행의 감각을 일상에 가져와 살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기획한 모임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 모임이었고, 나는 매 모임마다 그 책에 맞는 간식(음식)을 준비하곤 했다. 우리가 이 모임을 위해 이곳에 오는 것도 일상을 벗어난 소소한 여행이지 않느냐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 독서모임에서 어제는 "리스본"이 책 속의 배경이기에 포르투갈 음식들을 준비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모임으로 향하려는데, 두 분에게서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금은 낙담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준비한 것도 있고- 담당해 주는 곳에 문의하니 참석자가 한 명이라도 진행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 다른 멤버- 둘 만의 독서모임은 나의 예상보다도 훨씬 좋은 시간이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며 '책이 좀 어려운데?'라는 생각에 작가에 대해 알아보니 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더라. 작가의 이런 이력하나로 모든 것이 납득이 되는 느낌이었다. 책에서는 앞서 말한 "우리가 우리 자신 안의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문장에서 말해 주듯, "내가 살지 못한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손에 들어온 한 포르투갈 의사에 관한 책과, 그 책의 서문으로 적힌 저 문장 하나를 보고는 무언가에 홀린 듯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몇십 년의 루틴과도 같은 삶 속에서 매우 갑작스러운 일탈이 이 여행이었다. 그러면서 책에서는 말한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은 때때로 믿기 힘들 정도로 사소하게 찾아온다"라고.
책에서 던지는 질문인 "내 삶에서의 또 다른 가능성 (내가 겪지 않은)"에 대해 다른 멤버와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먼저 얘기를 했다. 과거에 이러이러했을 때, 이런 선택을 했고 어쩌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그분도 과거에 가장 크게 자신의 삶을 지금이 이르게 만들었던 선택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내가 살지 못한 그 삶이 어땠을지 자신은 종종 아주 많이 궁금해지기도 한다면서, 어쩌면 평행우주 속의 또 다른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말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요리학교에 가려했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였는데, 서울에 분교 같은 게 있어서 3개월 분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이탈리아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요리를 좋아하니 요리를 해야지요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울증과 싸우다가, 그런 와중에 내가 그래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내 미래를 생각하며 조금은 나아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책 속에서처럼 아주 사소한 것으로 나는 마음을 돌렸다. 내가 떠나기 며칠 전, 부모님과 외식을 했는데- 식당에서 나의 아버지가 조금은 무례하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을 대하는 것을 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직업이구나'란 생각에 두려움이 생겼고, 나는 바로 다음날 부모님을 찾아가 "저 그냥 다시 공부할게요."라고 말했다. 그 선택이 지금의 나로 이어져오기까지 주요한 사건 중 하나일 테다. (물론 그 뒤로도 많은 커다란 선택들이 있었지만.)
그때 포기했던 "요리"에 대한 꿈은, 내 삶이 싫을 때마다 내게 '만약'을 꿈꾸게 했다. 우울함에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서 나는 만약을 떠올렸다.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고, 살고 싶지 않을 때는- 그 만약이라는 과거의 선택은 마치 그 선택이 내 인생의 답이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런 생각을 현실을 더욱 미워하게 만들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모임에서 얘기를 나누다 깨달은 건- 그런 과거의 '만약'에 대해 떠올릴 때는 언제나 "현실이 싫은 상태"에서였다. 현실이 싫으니, 살아보지 않은 다른 가능성이 어쩌면 내게 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으로 생각하는 거였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아닌 때에 과거에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그 가능성과 그로부터 일어났을지도 모를 나의 삶을 생각하면- 그게 정답이 아님은 또 느끼게 된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예전에 보다 잠들었던 다중우주이론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한 학자가 말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 이 우주에서 나는 둘로 나뉜다고. 그것을 선택한 나와 그렇지 않은 나로.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삶에는 너무 많은 아니 모든 순간의 선택의 연속이고- 그 과거의 '만약'하나로는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직업이나 그런 면에서의 변화는 있겠지만-삶이라는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무엇이 그리 대단히 바뀌겠냐는 생각을 했다. 미래가 불확실함의 자유 속에 있듯, 과거의 나에게도 그러했을 테니까.
그래서 얘기를 나누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 다 현재가 어렵고 힘들어 도망가고 싶을 때, 그 예전 우리가 하지 않았던 과거의 선택에 대해 '만약'을 떠올린다는 건. 그 만약에 대한 답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현재에 만족을 주면- 그 만약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과거가 주는 '만약'의 가능성을 가지고, 모든 가능성이 열린 미래로 향하는 지금의 내가 모든 것의 답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모임의 막바지에는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는 불확실한 자유가 위로가 되나요, 아니면 두려움이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나누었다. 나는 과거에는 불확실한 자유가 두려움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한 길인데,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들은 내게 두려움을 안겨주었으니까, 하지만 현재의 나는 달라져 있더라. 나는 불확실함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갈 수 있다'라는 자유를 쥐어줌으로써,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무언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던졌던 "우리가 우리 자신 안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에 대한 나의 대답은, '과거의 만약'이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답은, 앞으로 내가 선택할 미래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의 삶에는 답이 없으니까.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다 해도 그럴 수 없다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앞으로의 선택에서 불확실한 미래의 자유 속에 나를 던지면 되는 게 아닐까?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던져준 질문을 당신에게도 전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 안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만약 그때 그 선택을 했다면 살고 있을 또 다른 나의 삶"이 있나요?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는 불확실한 자유가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나요, 아니면 두려움이 되나요?
모닝페이지의 기록
현재가 힘이 들 때 '만약'을 생각하던 때가 많았다. 그러나 세상이 앞으로도 모든 불확실성의 자유 속에 존재하니까, 그 과거의 '만약' 한 가지 변한다고 내가 만족스러운 삶이 될 거란 보장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을 했다. 우린 매 순간 계속해서 선택을 해야 할 텐데....(중략)... 나의 경우 현재의 불만족이 과거의 '만약'을 떠올리게 하기에, 그렇다면 답은 현재에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지금을 만족스럽게 바꾸면 된다는 거니까. (2026.03.28.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