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임대 단지의 벽]
우리 단지는 조기분양전환 대상 단지였다.
입주 초기부터 그 말은 입주민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렸지만, 대부분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그랬다.
언젠가는 분양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 ‘그때가 되면 알아서 연락이 오겠지’ 하는 안일한 믿음 정도로만 생각했다.
전국에는 우리처럼 분양을 기다리는 ‘리츠(REITs) 형 임대단지’들이 있다.
각 단지는 정책 순서에 따라 차례로 전환을 앞두고 있었고, 이를 위해 ‘전국 리츠 연합회’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수년간 제도적 벽을 넘기 위해 싸워왔고, 각 단지의 대표들과 함께 정부와의 협의, 공청회, 감정평가 대응 등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단지도 1기 대표회의 시절 회장이 연락을 받고 그 연합회에 가입한 상태였다고 했다.
하지만 회의에서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어서 대표들 대부분은 그런 단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조기분양이 돼야 할 텐데요.”
“언제쯤 가능할까요?”
그 정도의 말만 오갔을 뿐이었다.
주민들에게는 더더욱 알려질 리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그 연합회에서 연락이 왔다.
분양 전환 순서가 다가온 단지들을 대상으로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 우리 단지는 이미 1기 대표회의 임기가 끝나고, 2기가 꾸려지지 않아 공식적인 대표기구가 장기 ‘부재중’ 일 때였다.
연합회에서 연락을 받은 사람은, 1기 회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권한이 없음을 설명하고, “단지에서 지금 그나마 활동하는 단체가 부녀회라던데, 한번 그쪽과 연결해 보시라”며 연락을 넘겼다.
그렇게 부녀회 총무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부녀회에서 설명회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게 모든 시작이었다.
당시엔 우리 누구도 그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분수대 광장 한편에 의자 몇십 개를 빌려 세팅하였다.
마이크와 음향장비는 연합회 측에서 준비했고, 우리는 단지의 동선과 인원을 정리하며 사람들이 안전하게 들을 수 있도록 인솔하는 역할을 맡았다.
행사 포스터도 없었고, 홍보는 온라인카페와 방송을 통해 간단히 안내를 띄웠을 뿐이었다.
“조기분양전환 관련 설명회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은 분수대광장으로 나와주세요.”
그런데 막상 시간이 되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주민이 몰려들었다.
의자가 모자라 서서 듣는 사람도 많아졌다.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누군가는 장바구니를 든 채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연합회 임원들이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았다.
분양전환의 개념, 정책 절차, 감정평가의 방식, 그리고 각 단지의 선례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어려운 용어들이 이어질수록 주민들 얼굴에는 미묘한 표정이 번졌다.
“그래서 결국 우린 얼마를 내야 하는 건가요?”
“이게 언제쯤 가능하다는 거예요?”
곳곳에서 작은 속삭임이 이어졌다.
그날 광장의 공기는 이해와 혼란이 뒤섞인 묘한 온기를 띠었다.
부녀회원들은 행사 진행을 돕느라 내용에 집중할 틈조차 없었다.
그래도 끝나고 나서는 서로 같은 말을 했다.
“이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며칠 뒤, 부녀회장과 나는 연합회 대표에게 연락을 했다.
“회원들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열린 소규모 간담회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법과 제도, 정책의 방향, 그리고 주민 스스로가 조직을 만들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간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부녀회원들의 얼굴에는 무언의 결심이 비쳤다
그다음 단계는 ‘우리만 아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 일이었다.
부녀회장과 나는 의견을 모았다.
“주민들에게 직접 이야기하자.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할 거야.”
우리는 작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연합회에서 받은 자료를 하나하나 읽고 용어를 정리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시 물어봤다.
어느새 우리는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준비된 것이 첫 자체 설명회 겸 입주민 간담회였다.
장소는 이름뿐이던 헬스장 공간으로 정했다.
마침내 공간 활용을 하게 되었으니 꽤 만족스러운 기획이었다.
텅 빈 콘크리트 바닥의 먼지를 청소하고, 음향만 간단히 준비했지만 열심히 홍보했다.
현수막은 없었고, 대신 벽 한쪽에 A4용지로 안내문을 붙였다.
“편하게 오셔서 들어보세요. 돗자리나 의자는 직접 준비해 주세요.”
그날, 우리는 조심스레 그러나 또렷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조기분양이 왜 중요한지, 이 과정이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일인지.
그리고 ‘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이 왜 필요한지를.
부녀회 일부회원이 반드시 주체가 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서로가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동참하겠다며 자발적으로 손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주민들이 용기를 내어 다가왔다.
“저도 도울게요.”
“필요한 일 있으면 함께하죠.”
그 말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때로는 내가 먼저 다가가 부탁도 했다.
그렇게 열몇 명이 모였고, 우리는 ‘임시조기분양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회의를 시작했다.
누구도 확신은 없었지만, 두려움과 의심보다는 설렘과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날 이후, 단지의 분위기는 조금씩 변했다.
카페에는
“설명회 잘 들었어요.”
“이제야 뭔가 시작되는 느낌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우리는 퇴근-육퇴를 포함- 후 밤에 모여 자료를 정리하고, 향후 계획을 세워 갔다.
그제야 점점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는 진정한 우리의 마을'이 될 우리 아파트의 미래가 그려지는 듯했다.
나는 연합회에서 손 내밀어 준 광장에서의 설명회가 '바깥에서 날아온 신호탄'이 되었고,
엉성하면서도 야무졌던 우리의 첫 입주민간담회는 '비로소 우리 안에서 불꽃이 되었던 시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