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

[2부 임대 단지의 벽]

by 어울리는음


입주 초부터 동대표직을 거쳐간 주민들에게 허락된 건 무언가를 해보려는 마음보다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정도였다.

하고 싶은 일들이 없었던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아직 임차인대표회의였기 때문이다.


임차인 대표의 영향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권력과는 사뭇 달랐다.


무엇이든 제안하면 벽이 있었다.

관리소장은 늘 “규정상 어렵다”로 말을 마쳤고, 본사에 승인 요청을 올리면 답변은 더디거나 끝내 “불가”라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결정권은 언제나 회의 밖에 있었고, 우리는 그 외부로부터의 허락을 기다려야 했다.


그 기다림의 반복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더구나 당시 소장은 이론보다는 관성에 가까운 원칙으로 움직였다 보니 무엇이든 새롭게 시도하는 걸 꺼렸다.

입주민들의 요구를 들으면 “그건 분양 전엔 어렵습니다”라며 미루기 일쑤였다.

그의 세계에는 ‘지금 필요한 일인가’란 질문은 없었다.

그저, ‘지금은 안 되는 일’만 있었다.



대표적인 암덩어리는 차단기 문제였다.

우리 단지 입구의 차단기는 고장이 심하게 잦았다. 영세한 업체의 저가모델로 설치되어있다 보니 심할 때는 주 두세 번씩 고장이었고, 출장·보험 절차가 얽혀 있을 땐 수리가 몇 주씩 늦어졌다.

그 사이 외부 차량이 드나들며 주차장은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나를 포함해 여러 기수의 동대표들이 수차례 교체를 추진했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분양 후 가능.”


아파트란 당연히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오기 나름이고, “차단기를 교체하면 안 되냐”는 질문은 반복되었다.

언제나 처음 듣는 질문처럼 수없이 다시 설명해야 했다. 누가 동대표를 맡든 끝없는 순환이었다.


쪽문 문제도 그랬다.

우리 단지의 출입구는 단 하나뿐이다.

천 세대가 넘는 대단지에 출입구가 주출입구 단 하나라니. 다양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일은 당연지사다.


아이들은 먼 길을 돌아 학교에 가는 것이 불편해 위험하게 화단을 넘어 다니고, 하나뿐인 주출입구로 들고나는 차량들은 밀리기 일쑤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아보았다.

본사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했지만 여러 방안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더욱 강력한 민원을 넣었다.

간신히 ‘주민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고려하겠다’는 비교적 긍정적 시그널을 받는 데까지 성공했다.

다만 그전에 쪽문 위치로 유력한 지점 가까이 있는 동 저층 세대 열 가구의 동의가 필요했다.

동대표들이 직접 가가호호 방문해 동의 서명을 받기로 했다.

위치나 각도상 사생활보호에 큰 염려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오히려 집 가까이 출입구가 있으면 편하다 느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막연히 기대에 차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질까 봐 싫어요. 저는 지금 딱히 불편하지도 않고.”

참.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


지난 노력이 무색하게 이 문제는 지금도 차단기 문제와 같은 순환 열차를 타고 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기대를 버리고 화단을 당당히 넘어 다녔다.

그 자리에 난 발자국은 결국 길이 되어 그 땅 아래 풀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정식 입구가 아니다 보니 보안에도 더욱 취약해진 상황이다.


건설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갖다 붙인 복잡한 절차와 ’주민동의‘라는 변명은 보기 좋게 성공하였다.


이런 일들은 차단기나 쪽문에만 머물지 않았다.

놀이터 시설을 교체하는 일도, 빈 공간뿐인 헬스장을 개장하는 일도, 보안을 위해 CCTV를 추가하는 일도, 조경 관리를 개선하는 일도 모두 ‘계약상 불가’, ‘예산상 불가’로 마무리되었다.


그 답변들이 쌓여 포기의 역사만 기록되어 갔다.

대표들도, 주민들도, 이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단념이라기보다, 너무 오래 부딪힌 사람들의 피로였다.


행사 하나를 열 때도 쉽지 않았다.

행사를 마련해 달라는 요청도 아닌데, 주민을 위한 축제를 직접 기획하고 개최하겠다고 할 때마다 관리소의 태도는 늘 미온적이었고, 전기나 수도 협조조차 매번 어렵게 받아야 했다.

그 과정이 지쳐서 “그냥 하지 말자”는 말이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누군가는 “그래도 해보자”라고 말했고, 결국 우리는 스스로 해냈다.

주민 자치 능력을 키워줘서 고마워해야 할는지 웃픈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

비협조적인 관리소와 싸우는 일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


이후 협조적인-지극히 정상적인- 새 소장이 오고 나서야 그 모든 대립이 얼마나 허무한 싸움이었는지 깨달았지만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그때의 노력이 헛된 건 아니다.

그 시절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바로, 누군가의 허락 없이도 공동체를 세우는 법.



그렇게 몇 년을 지나며, 단지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입주민 민원은 여전하고, 3기에 모인 대표들은 그래도 다시 한번 같은 문제를 두드려 보았다.


고질적인 구조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조금 더 보수적이고, 처음 부딪히는 사람들은 같은 이유로 상처를 받았지만 어쩌면 공동체의 성장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아파트의 관리가 멈춰 있는 듯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발전하고 있었다.

포기로 이어지는 노력 속에도, 어딘가 색다른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건 규정의 한계를 넘어 책임감을 나누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힘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의 방법을 고민했던 사람들.

자랑스럽게도 그 안에 내가 있었다.


그 시간들을 불가능의 나열이 아니라 가능을 찾아 헤매던 흔적으로 기록하고 싶다.

‘해내지 못한 일들’이 아니라, ‘그래도 해야 했던 일들‘이라고.


언젠가는 그 시절의 버팀이 조금은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