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바야흐로 춘풍이 불다, 젊은 여성시대

[2부 임대 단지의 벽]

by 어울리는음


추진위원장 교체 이후의 추진위는 더 단단해졌다.

누군가 “이건 제가 정리해 둘게요.” 하면, 다른 누군가는 “그럼 이건 제가 맡을게요.” 하고 자연스레 이어받았다.
그 작은 말들이 단체를 살렸다.
우리가 쌓은 신뢰는 그 안엔 진심으로부터 나왔다.


유명무실하던 2기 대표회의 임기가 끝나갈 즈음, 우리는 결심하듯 말했다.
“이제 안정적으로 우리가 동대표를 맡아야 할 것 같아요. “

“그렇죠.”
다들 이미 마음속에서 준비하고 있었던 일 같았다.


분양 전환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려면 행정적 권한을 가진 대표회의와 추진위가 하나로 맞물려야 했다.

우리는 가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3기 동대표 출마를 결의했다.
그건 역할의 이동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식적인 통로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꾸려진 새 대표회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도 우선, 눈에 띄게 젊었다.

가장 연장자인 사람이 79년생이었으니 대표회의에 참관 오는 사람들은 내심 놀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단 두 명의 남성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자, 아이 엄마들이었다.


아이들 저녁밥을 챙겨주고 서둘러 온 사람, 퇴근 후 아이와 대화도 별로 못하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

낮에는 놀이터를 지키는 ‘아줌마‘들이었지만, 밤에는 단지의 행정을 짊어지는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에겐 화려한 경력보다 진심과 근성이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면 늘 비슷한 농담이 오갔다.
“결국 또 우리가 다 하겠네.”
그 말에는 피곤함보다 묘한 자부심이 섞여 있었다.

3기 대표회의의 임기가 시작된 것은 2월이었다.


겨울 끝자락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봄의 문턱에 서 있었다.
어딘가 따뜻하고 파릇파릇한 설렘이 감돌았다.
우리가 일으킨 봄바람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바람이 불면 언제나 낡은 편견도 따라붙는다.
“이 아파트는 젊은 여자들이 다 해 먹는다더라.”


그 말이 들려왔을 때 피식 웃음이 났다.

부녀회, 추진위, 대표회의, 심지어 단지 내 작은 도서관운영위까지 —
공교롭게도 대부분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를 포함한 몇몇 인물들이 여기저기 겸직을 하게 되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사실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공동체를 끌어가는 인물들은 결국 ‘누가 나서는가’로 결정된다.
늘 같은 사람들이 팔을 겉었고, 늘 같은 사람들이 책임을 졌다.
그게 하필이면 여자였을 뿐이다.

회의가 필요하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 모였고, 행사가 있으면 직접 몸을 바쳤다.
관리실이 협조하지 않을 때도 굴하지 않았고, 예산이 모자라면 사비를 모았다.


누군가 하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3기 대표회의 출범 이후 동대표회의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불평 대신 제안이, 회피 대신 참여가 자리했다.
회의는 부드러웠지만 예리했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따뜻하지만 호탕했다.


어떤 날은 피곤에 겨워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은 늘 있었다.


종종 주변으로부터 왜 사서고생을 하냐는 말을 듣는다는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우리 스스로도 참 신기하지 않아요? 육아하기에도 바쁜 여자들이 이 정도로 움직이는 거.”

“재밌잖아요!”


그때까지의 변화는 분명 고무적이었지만, 당시 여전히 한 가지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 관리소 문제였다.
예전 소장이 규정과 서류의 틀 안에 갇혀, 실질적인 현장을 거의 돌보지 않을 때였다.
그런 무기력한 태도는 결국 대표회의와 추진위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우리는 회의 끝마다 “관리소가 달라져야 단지가 달라진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3기 대표회의가 꾸려지고 몇 달 후, 작심한 우리는 마침내 관리업체 계약해지라는 강수를 두었다.

관리소장과 관리과장은 거의 같은 시기에 도망치듯 사표를 냈다.

이후 새 소장이 부임하기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가 긴장했다.
혹시 또다시 ‘예전 같은 사람’이 올까 봐.
그간의 공든 탑이 무너질까 봐.


며칠 뒤, 두 명의 새로운 인물이 부임했다.
새로운 소장과 과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었다.

첫 만남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짧은 인사 속에서도 단정한 태도와 명료한 말투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빛에는 닫혀 있던 공장을 다시 여는 사람의 결심 같은 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단지의 모습은 환골탈태했다.

주민이 요청하면 거절이 아닌 대화가 돌아왔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신 “같이 해보시죠”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주민자치행사에 관리실이 먼저 전기와 수도를 확인해 줬고, 동대표회의에는 탄탄하고 깔끔한 자료가 준비되었다. -하물며 다과준비까지 센스가 넘쳤다.-
늘 반복되는 부탁과 설득으로 겨우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빠르고 자연스러워졌다.


늦은 밤 회의를 마치고 고요한 놀이터를 지나는데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을 스쳤을 때 문득 생각했다.
그래, 이제야 진짜 춘풍이 부는구나.

우리가 견뎌온 시간, 그 모든 논의와 갈등과 작은 승리들이 결국 이 바람을 불러온 것이었다.

이제는 정말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단지의 봄을 만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