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돌멩이와 박수 사이, 나는 자축 댄스를 춘다

[3부 버팀의 미학]

by 어울리는음


이제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눈에 보이는 풍경도, 사람들의 말투도, 단지의 분위기도.


물론 내가 걷는 길 위에는 여전히 모난 돌멩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 돌멩이들이 예전처럼 날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


"또 그 사람들이 앞에 있더라."

"온통 여자네."

"자기들끼리 다 해 먹나 보네."


어디서나 늘 존재하는 그런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그런 돌멩이들이 굴러들어 온 것조차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발끝으로 살짝 밀어 두고 지나간다.


예전에는 나서는 이유에 대한 진심을 오해받을까 봐 두려움이 있었지만, 경험이 쌓여 갈수록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는 것은 더욱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건 오만이 아니라 책임감에 가깝다.

누군가는 중심을 잡아야 하고, 때론 변화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게 내가 되어도 괜찮다고 이제는 스스로를 믿는다.


가끔은 억울한 마음, 변명하고 싶은 충동, ‘그래서 내가 뭘 잘못했지?’ 하고 괜히 되짚느라 잠을 설치는 밤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돌멩이들이 깔린 길을 매일같이 걸으며, 이건 오히려 이 길의 질감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응원하고, 누군가는 지켜보고, 누군가는 판단한다.

어차피 공동체에서 산다는 건 그 시선들 사이를 걷는 일이다.



반대로 박수의 경우는 조금 더 각별하긴 하다.


온라인 카페나 입주민 단톡방에 올라오는 한 마디 한마디의 응원 문구가 열 배, 백 배가 되어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처럼 느껴진다.

물론 진짜 박수 소리를 듣기도 한다.


나는 사실 무대 체질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무대 공포증이 있는 것에 가깝다.


그런데 추진위가 개최하는 입주민설명회 사회를 보는 경력이 쌓여가면서 부녀회에서 주관하는 행사들의

MC까지 맡게 됐다.

행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시작된 기획에 본능적인 열정이 가미되어 어느새 나는 MC 겸 DJ라는 이름으로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기 위해 진짜로 춤까지 추고 있었다.


어쩌면 이 챕터 제목 그대로였다.

'돌멩이와 박수 사이에서, 자축 댄스를 추는 사람.'


부끄러움을 잠시 잊은 나의 용기에 사람들이 웃고 손뼉 치고, 아이들은 함께 흥분했다.

그날 이후 나는 행사 진행 능력까지 인정받아 당연하게 행사마다 진행을 맡게 된다.


나 왜 잘하고 난리지.......


그래서 요즘의 나는 당당하고 조금은 뻔뻔하다.

돌멩이를 밟으며 박수를 듣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친다.


자축이라는 건 결국 “나는 잘하고 있어.”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일이다.

박수는 어느새 외부의 격려가 아니라 우리끼리의 암묵적 리듬이 되었다.


누가 대신 해주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의 일을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

그게 버팀의 미학이다.



추진위와 대표회의, 부녀회, 그리고 도서관 운영위까지 맡게 된 후 이제는 적재적소에 맞는 박자를 터득하게 된 것 같다.


일의 결과보다 과정에서 배우는 게 많다.


회의가 길어지거나, 의견이 엇갈릴 때, 나는 ‘지속 가능한 리듬’이 무엇인지 모든 감각으로 깨닫는다.


너무 빠르면 놓치는 부분이 생기고, 너무 느리면 흐름이 끊긴다.

적절히 앞서가더라도, 필요할 땐 잠시 멈춘다.


그게 내가 터득한 리듬이다. 그 리듬 안에서 나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자축 댄스장’이 열린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한 사람의 주민에 지나지 않는다.

직함이 사라져도, 역할이 바뀌어도, 이 단지의 일부로 살아가는데 변함은 없다.


그러니까 내 자축은 혼자 잘났다는 의미로 해석되면 안 된다.


이건 자랑이나 허세가 아니라, 끝까지 버텨낸 시간들에 대한 내면의 예의다.

사람들과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 그 안에서 성숙해진 내 마음에 대한 감사의 인사다.


돌멩이를 던지는 손이 있으면, 그만큼 박수를 보내는 손도 있다.

결국 둘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 모든 손길이 고맙다.

어떤 손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어떤 손은 나를 춤추게 만들었다.


돌멩이와 박수 사이, 그 모든 소음과 침묵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춤을 춘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춤.


나는 춤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음악이 진정한 피날레를 맞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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