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버팀의 미학]
이 마지막 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앞선 글들은 사건이 이끄는 대로 적어 내려 갔지만, 이 장은 그럴 수 없다.
증언보다 결심에 가까운 글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남길지보다, 무엇을 덜어낼지가 더 중요했다.
시간이 흘러 단지가 평온해진 지금,
빛처럼 흩어져있던 그동안의 모든 기억들을 손 끝으로 눌러 담아둘 마음이 생긴 이유를 잘 전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이 아파트에 산다.
여전히 여러 회의에 참석하고, 공지를 적고, 때로는 사소한 민원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부담의 무게는 예전과 다르다.
누가 옳았는지보다, 무엇이 남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낸 일은 단지 하나의 ‘운영 사례’가 아니다.
이건 무너질 듯 흔들리던 공동체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회의 하나, 서류 하나, 행사 하나마다 저마다의 노동과 신념이 들어 있었다.
대단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한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자리를 버티며 ‘해야 할 일’을 반복할 뿐이다.
그 단단한 반복이 결국 공동체를 지탱해왔다.
지금의 우리 단지는 전체적으로 꽤나 잘 돌아가고 있다.
이 과묵한 반복 덕분에 조직이 자리를 잡고, 관계가 정돈되고, 관리소와 대표회의가 같은 방향을 본다.
이제는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시스템의 관성이 우리를 움직일 정도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끝’이 아니라 ‘이어짐’을 남기기 위해서였고, 우리의 일은 여기서 완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계속해서 다음 사람들이 바통을 넘겨받아야만 한다.
우리에게서 역할을 이어갈 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회의를 운영하고, 또 다른 언어로 서로를 설득하길 바란다.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 더 역동적으로 나아갈 우리의 공동체를 기대하게 만든 첫 장에 불과하도록.
나는 이 자리를 이어받을 누군가를 기대하고 있다.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 하지만 언젠가 책임의 자리에 서게 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두려워도 된다.
무력감을 느껴도 괜찮다.
다만, 손을 놓지만 않으면 된다.
공동체는 그렇게 유지된다.
처음에는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점차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닿을 수 있다면,
나와 같은 젊은 세대에게 말을 걸고 싶다.
불편한 것이 불편해서 불편하거나, 굳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그 불편함 때문에, 조금은 떨리는 그 목소리 때문에, 세상은 굴러가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결의로 시작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이건 아닌데”라는 감정에서 충분히 비롯될 수 있다.
사소한 문제의식이 결국 구조를 움직인다.
특별히 엄마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아이를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며, 가끔은 자신이 세상과 멀어졌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당신들이야말로 가장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가정 안에서, 학교에서, 아파트 단지 안에서.
당신의 생각과 감정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그걸 너무 작게 보지 않아도 된다고 격려하고 싶다.
이제 나는 이 기록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브런치처럼 가벼우면서도 오전 10시처럼 찬란한 햇빛 같은 기록.
나의 방식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나의 시도 자체가 누군가의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기록은 과거를 묶는 게 아니라, 미래로 이어지는 이정표이니까.
나의 기록은 바람의 방향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오늘의 바람은 내 이름으로 불지만,
내일의 바람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기를.
결국 봄바람이 멈추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