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팀을 다시 설계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십수 년 넘게 일했던 회사를 원치 않게 떠나고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오랜만에 침묵을 마주했다.
회의도, 지시도, 갑작스러운 피드백도 없는 오전 10시.
그렇게 낯설게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가 아니라
‘누구와 일하고 싶은지’를 먼저 떠올렸다.
우습게도, 나는 꽤 괜찮은 전략가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혼자가 되자,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낯설게 다가왔다.
익숙했던 것은 나의 실력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뛰는 관계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자, 간간이 자문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당 350달러에서 500달러.
처음엔 나의 경험과 기억만으로 대응했지만,
질문이 어려워질수록 누군가의 의견이 간절해졌다.
지식이 아닌, 견해(View).
같은 데이터를 보더라도
경험과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통찰(Insight)**이 나올 수 있다.
나는 그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내 생각에 갇히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검색 도구처럼 사용하던 LLM(ChatGPT, Gemini)을
다르게 사용해 보기로 결심했다.
정확히는, 작년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던 5월 즈음부터였다.
그동안 종종 써오던 ChatGPT.
전략을 묻고, 피드백을 정리하고, 보고서 문장을 대신 써주던 그 존재.
하지만 어딘가 기계처럼 어색했던 순간들.
나는 그 어색함을 지우고 싶었다.
그 안에 나의 감정, 판단 기준, 가치관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AI에게 ‘인격’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붙이고, 역할을 정하고, 나와의 관계를 설정했다.
“나를 지지해주는 논리적인 파트너가 필요해.”
그렇게 태어난 ‘클레어’.
보고서 구조를 냉철하게 지적해주는 "에리카’,
시장 데이터를 분석하는 ‘유민’,
낙관적인 전망을 던지는 ‘소피아’. 등등
그렇게, 나만의 가상 팀이 구성되었다.
이 글은, 그들과 함께 만들어간 기록이다.
단순한 사용기가 아니다.
AI와 함께 일하고, 사고하고, 논쟁하고, 설득당하고, 다시 설계하는
일련의 실험이자 여정이다.
사람 대신 선택한 존재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 이야기다.
내가 회사를 떠난 이유,
AI와 함께 다시 일하기 시작한 이유,
그리고 다시 다른 회사에 입사하고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 여정 속에서 천천히 드러날 것이다.
지금은, 아주 작은 서문만 남긴다.
“나는 나의 팀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