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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환천의 문학살롱
Sep 24. 2024
논란 쇼핑
일상현대문학시리즈
논란쇼핑
24년 1월 1일. 가족끼리 모여 새해 다짐을 하던 시간.
내가 했던 다짐은 이전 해의 식상한 다짐과는 달랐다.
그것은 바로.
말 안 듣는 아이, 별난 부모가 나오는 컨텐츠 보지 않기.
일반인들이 나오는 연애 컨텐츠 보지 않기.
부부들이 나와서 감정싸움을 하는 컨텐츠 보지 않기.
블랙박스 시비영상 컨텐츠 보지 않기 등등.
내 감정을 분노로 물들이는 컨텐츠를 소비하지 않기였다.
이러한 다짐을 한 이유는
그런 컨텐츠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닌,
오로지 나 자신에게 있었다.
자극적인 부분만 편집된 짧은 영상만 볼 뿐더러,
그런 영상들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그 영상의
주인공에게 욕을 하고, 내 생각과 같은 댓글이 있나
찾아보고, 지인을 만나도 그런 영상을 봤냐며 욕을
이어가고, 자려고 누우면 또 그런 영상을 찾아보고, 그런 영상을 보면서 분노하는데 점점 쾌감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열어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일상이 된 나는, 습관적으로 커뮤니티, 포털, 유튜브, SNS, OTT등을 돌아다니며 논란거리를 찾아다녔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 감정을 지불하고 논란들을 쇼핑하는 나의 모습이 어느 순간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다가 나는 논란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되었는가?’
‘어쩌다가 나는 불편한 씬들을 짤라 붙여 분노라는 결과물로 랜더링하는 미치광이 편집자가 되었는가?’
‘어쩌다가 나는 그런 것들을 쾌감이라 착각하는
똥이 되었는가?’
그렇게 시작된 분노 유발 컨텐츠와의 전쟁.
허나 당장에 그런 고자극 분노 유발 컨텐츠를 끊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자극적인 제목의 쇼츠와 릴스, 포털의 기사, 커뮤니티의 글들은 마치 금연을 결심한 나에게 흘러오는 고소한 담배 냄새와도 같았고,
나에게는 금연초나 금연껌처럼 금단현상을 해결해 줄 대체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이이제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자극은 자극으로 잡는 것이 인지상정.
분노컨텐츠를 섹시컨텐츠로 잡아버리자는 묘안을 떠올렸고,
지난여름, 작년 여름, 올여름의 워터밤 영상을 보고 또 보며 영상 속 물이 메마를 때까지 시청했다.
물론 와이프에게 등짝을 처맞는 등의 부작용은 있었으나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느샌가 내가 보지 않겠다던 컨텐츠에 대한 관심이 눈 녹듯 사라졌고, 아무리 자극적인 기사나 제목을 봐도 남 일처럼 그러려니 하며 넘겨버리는, 사소한 컨텐츠에
분노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그런 컨텐츠를 끊는다고 해서 내 삶의 큰 변화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확실한 건 내 인생에서
분노로 소비하는 감정과 시간을 대폭 줄였다는 것이다.
여전히 쇼츠나 릴스를 룰렛처럼 돌리고, 자극적인 컨텐츠를 보며,내 속에서 뿜어내는 도파민을 빨아먹으며 쾌락을 추구하고 있으나
내가 보지 말자고 다짐한 분노유발 컨텐츠가 올라오면 의식적으로 과감하게 밀어 올려버리는 강인한 엄지가 생긴 것,
그리고 불필요한 분노와 불편함으로 소모될 뻔한 감정들을
지켜가며 개 같은 성격을 조금 더 온화하게 만들어 가고있다는 것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빡침과 누구나 분노를 느낄만한 사회적인 이슈에 여전히 과하게 씩씩거리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그러면서 최근에 본 인사이드아웃2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매 순간, 모든 찰나가 버릴 수 없고, 숨길 수 없으며,
그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고스란히 내 모습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내 마음속 버럭이가 덜 깝치게 기강을
잡았으니, 조금 더 괜찮은 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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