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복숭아의 계절

생일 공포

by 황옹졸

마당에 커다란 멍석을 깔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해가 땅 밑으로 들어간 어스름한 저녁이었고 펼쳐진 상마다 복숭아가 한가득 놓였다. 아빠가 잔을 들고일어나 오늘이 우리 외딸 공주 생일이라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외쳤다. 나는 복숭아를 먹다 먹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맡에 두어 입 베인 복숭아와 500원 동전 몇 개, 꼬깃한 지폐 두어 장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선물이었고 여섯 살 해에 생일이라는 지식이 생겼다. 아빠는 다음 해 시장에 복숭아가 잔뜩 쌓여있던 계절에 죽었다.


90년 대 초 후미진 시골 마을에서 생일을 챙겨 먹는 어린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태어난 날이 아빠 기일과 맞물린 슬픔과 상관없이 생일이란 개념을 생각해 본 일 없이 지냈다. 하루 일해 그날을 입에 풀칠하는 형편에 집안 누구도 웃는 낯이 없었다. 떠들썩하니 행복해야 하는 날은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니 사춘기 여학생들은 생일을 중히 여겼다. 집에 모여 초코파이 옆에 양초를 놓고 조촐한 파티를 열고 귀여운 문구 따위를 주고받았다. 나도 친한 친구에게 날짜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하필 내 생일은 방학식 날이거나 방학 중이거나 그랬다. 학교를 쉬는 설렘에 생일이 묻혔다. 다녔던 중학교는 방학 전날 학교에서 야영을 했는데 운동 경기를 하고 산에도 올랐다. 저녁 한 끼를 우리 손으로 해 먹고 밤에 장기자랑과 캠프파이어로 끝이 났다. 밤을 새우고 노느라 다음 날 집에 가면 피곤해 짐가방 정리도 못한 채 그대로 널브러졌다. 이런 꼴을 본 할머니는 등짝을 사정없이 후리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다 큰 가시내가 자기 한 몸 건사도 못하고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그러면 오늘은 내 생일이라고 소리치며 대들고 싶었으나 두었다. 덥고 습한 여름의 한복판, 할머니도 내내 밭에 있다 왔기 때문이다.


스물두 살 생일에 알바를 끝내고 자취방에 돌아오니 현관 앞에 케이크와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꽃에 꽂힌 카드를 확인하니 과 동기였다.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오며 가며 '안녕.' 정도의 목인사만 한 사이다. 이름과 얼굴 거기에 차림까지 세련된 데가 없어 내 레이더망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예쁜 꽃과 달콤한 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이렇게 생일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는지를 탄식하며 케이크를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애석하게 새하얀 생크림이 눈에 발려 결혼을 했는데 이 남자는 열두 달 가운데 7월이 가장 바빴다. 새벽에 나갔다 밤늦게 오고 멀리 가서 며칠 씩 돌아오지 못할 때도 많았다.


촌스럽게 무슨 생일 챙기냐고 말을 뒤로 밀면서도 은근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 기대가 정확히 어디를 향하는지는 모르겠다. 괜히 애먼 사람한테 신경질을 부려 기분을 망친 채로 생일 맞을 때가 많으니 말이다. 낳아 놓고 일찍 가버린 부모에겐지, 사랑한다 해놓고 바쁘기만 한 남자에겐지. 그 어떤 날보다 사랑받고 싶은 구겨진 욕구가 아직도 펴지지 않고 발끝 거리에 남아 있다. 40을 훌쩍 넘은 때에 세상만사 웬만한 건 이해 못 할 건 없어, 서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일찍 가버린 아빠와 바쁜 남편은 밉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