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식
자식은 말을 안 듣는다. 자기주장을 하는 태도가 예의가 없다. 인격을 존중해 누리게 하는 권리는 당연하게 알지만 그들의 신체에 조금이라도 불편을 끼치면 강력히 거부한다. 내가 자식의 입장이 컸을 때, 어른은 어떤 타격감도 없는 줄 알았다. 부모로 사는 세월이 길어지니 부모도 자녀한테 심히 상처받는다는 걸 알았다. 그 옛날과 최근까지 나의 어머니를 아프게 했던 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다들 알겠지만 했던 대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엄마한테 사과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사과를 해야 하는구나.
엄마에게 전화한 지 오래되었다. 전국이 호우경보로 곳곳에 물난리가 났어도 연일 폭염경보가 이어지는 자비 없는 날씨에도 한 번 안부를 묻지 않았다. 뻔질나게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도 없지만 엄마한테는 더 그렇다. 일찍 떨어져 지낸 탓인지 본 성격이 그런 건지, 무소식은 대부분 희소식이다.
늦은 아침 상을 차려 놓고 밥을 먹자고 아들을 불렀다. '안 먹어요.'란 짧은 답이 돌아왔다. 무엇에 몰두하는지 부르는 이를 쳐다보지 않는다. 말 섞기 싫다는 막대기 부러지는 듯한 딱딱하고 내찬 소리였다. 괜히 뒤통수가 저리다. 저들은 대게 당당하다. 내쪽에선 늘상 퍼주고도 편치 않다. 방 문을 닫고 나와 전화기를 들어 엄마 번호 끝자리를 눌렀다. '4383.' 지루한 신호음을 들으며 엄마에게 저지른 여러 만행을 잠시 반성했다.
"왜?"
"아니, 엄마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코를 훌쩍 거리는 소리가 난다.
"날마다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잤더니 감기 걸렸네, 너도 조심해라."
"아니, 타이머를 해 놓고 자야지! 약은 있어, 보내 줘?"
"아이고 약 있어, 있어. 코만 그렇지 삭신 멀쩡해, 일하러 나왔어. 내 걱정할 것 없어. 바빠 끊어."
우리는 이렇다.
10분 후, 문자가 왔다. '아직, 월급 안 탔다.' 이 문자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내 월급도 엄마와 상관이 없지만 엄마의 것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달 홈쇼핑 물건을 주문해 주라는 문자를 몇 번 받았다. 그리고는 잊었다. 어쩐지 카드값이 많이 나왔다. 엄마는 딸의 연락을 돈 독촉하는 전화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 거 아닌데. 수백수천하는 명품도 아니고 홈쇼핑쯤은 당당하게 그냥 사달라고 해도 되지 않나? 그 정도 요구도 할 수 없는 게 부모 자식 사이구나. 괜히 전화했다. 진즉 알고 있었지만 내가 좋은 딸이 아니라는 확인을 하게 되어 몹시 씁쓸했다.
문자에 아무 답장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