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질문
여름이 지난합니다. 오직 소망은 가을뿐인 것처럼요. 더위와 어떻게 지내셨어요? 주마다 두 번은 얼굴을 보지만 잠깐 눈을 마주한 인사가 다네요. 저는 잘 지내요. 그 근거는 왕성한 식욕 때문에 뭐든 잘 먹고 밤이면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고 눈을 뜨면 훤한 아침이라는 것입니다. 사모님은 야위시고 더 희어져 보기에 너무 예쁘지만 몸 회복이 더딘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이번 주일에 점심 먹고 한 집사님이랑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읽는 중인데 너무 좋다, 하더라고요. 제 집에도 있는 책인데 오래된 거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가물했지만 그 목사님 가끔 영상에서 보면 차분하시고 말씀도 바른 것 같아 저도 좋아한다고 맞장구를 쳤어요. 누가 이렇게 칭송하기도 하더라고요. '목사들의 목사'라고요. 믿음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왔는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는 것, 앞으로 삶의 방향까지 여러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본인 짝꿍도 같이 읽는데 신앙 생활하면서 궁금했던 많은 점들이 해소되었대요. 그러셨냐고, 잘하셨다고 말하는데 이 사람에게 미안하더라고요. 내가 목회자는 아니지만 10년 가까이 같은 공동체에 있으면서 저 집사님의 갈증에 아무 도움 된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같은 소모임에서 총무도 했으니 작은 지도자이기도 했으니까요. 책임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일 듯 말 듯 마음이 불편했어요. 사모님, 조금만 옆으로 가서 보면 이 또한 얼마나 큰 교만인가요. 언젠가 말씀하셨듯 우리가 무슨 대단한 무엇이어서요, 그렇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권력을 향한 욕망일지도 모르죠.
그 집사님이 떠나고 눈을 감고 차분해 지기를 기다렸어요. 신앙에 질문이 많다는 건 열망이 있다는 것이겠죠? 그건 바람직한 거라고 생각해요. 간절히 하나님을 찾을 테니까요. 주께서 풍성하게 바른 것으로 채워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모님. 저는 언제부터인지 안에 있던 많은 질문이 사라졌어요. 걸핏하면 시비 틀듯 하나님께 '왜, 왜, 대체 왜.'라고 대들던 일을 이젠 하지 않아요. 궁금하지 않아서요. 해소되지 않아서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은 없어요. 하나님은 정말 계신지, 그렇다면 믿음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여도 왜 더 나은 인간이 되지 않는지 괴로웠거든요. 나아지길 바라는 건 굳건한 믿음이 아니라 날 좋게 포장하는 여러 가지였어요. 누구한텐 쏟아부으시면서 나한텐 조금만 주시고 만족하라 하시는 것에 불만이 많았거든요. '왜.'라는 낱말이 몸통을 꽉 채우고 있었는데 어디로 다 흘러버렸네요. 답을 다 얻고 찾았기 때문에 그리 된 건 아니에요.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떠냐고요? 가벼워요. 무지는 개운한 거 더라고요. 속해 있는 교회에서 허락된 두 분 목사님께 듣는 말씀으로 충분하고 예배에 집중할수록 깊이깊이 들어가요. 그러면 편안해요. 좋은 징조일 수도 있지만 가진 열정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아닐지, 쫓다 쫓다 지쳐버린 것 같기도 하고요. 뭘 쫓았나 따라가 보면 결국 욕정이었지만 그것이 날 꿈틀 대게 하는 동력일 때도 많았으니까요. 이젠 하나님이 그러신다 하면 웃으면서 '네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진두지휘하지 않고 좀 더 가까이 예수께 붙어 그가 일하는 걸 보며 감격하고 싶어요.
사모님, 미안합니다. 해가 갈수록 넓고 깊게 발전하여 목사님, 사모님께 기쁨이 되었으면 좋을 텐데 여기까지인 것 같아 많이 죄송합니다. 슬프네요. 그러나 수없던 질문이 간데없이 사라졌듯 이런 미안함도 곧 희미해질 것입니다. 저흴 위해 기도해 주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저도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