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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Dec 31. 2023

작가 놀이 1

글쓰기는 힘들어

남편 전화기에 내 이름은 '그녀'로 되어있다. 소설 여주인공이 되고 싶어 내가 그렇게 해 놨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1>>을 읽는데 이 단어가 입말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단다. 그렇지, 내 입으로도 한 번 말해 본 적 없다. 정말 '그년'이랑 별 차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당장 바꿔야겠다. 퇴근한 사람을 붙잡고 빨리 다른 것으로 저장하라고 했다. "황 장군?" 참말로, 그렇게 당하고도 이 사람을 몰랐던가. 무슨 진지한 것이 나온다고. 등짝을 사정없이 후렸다. 옷을 갈아입으며 히죽히죽 웃는다. '황완서' 어떠냐고 묻는다. 무슨 중국 위인인가? "자기 박완서 좋아하잖아." 미쳤냐고, 고소 당할 일 있냐고 소리는 질렀지만 입은 웃고 있다. 오, 오늘도 건수 하나 올려주는구나. 에피소드는 소중하다. 적어두면 써먹을 날이 있을 것이다. 




종일 종종거려도 일이 끝이 없기도 하지만, 하루쯤 한정 없이 늘어져도 사는 데 지장 주는 큰일은 없다. 그래도 한가한 사람처럼 보일까, 전화가 오면 여러 번 울리고야 '여보세요'를 한다. 상대가 바쁘냐고 묻는다. "어, 아니." 참과 거짓, 중간으로 대답한다. 그래 봐야 전화 오는 데는 정해졌다. 엄마, 동생. 가끔 국화나 수화. 대출금 갚을 날을 알려주는 은행. 그런데 3월부터는 바쁘다. 진짜다. 머릿속이 정신없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에도 나올 때가 있으니, 거의 24시간 무엇을 어떻게 쓸까를 고민한다. 글감이 나오면 화요일까지는 구상, 수, 목은 연습장에 막 써 보고, 금요일엔 노트북에 옮긴다. 일요일 예배 가기 전까지 계속 고치고 다듬는다. 대충 이렇게 원칙을 세웠다. 식구들을 다 내보내고 내자리에 가 앉는다. 폭 좁고 길이가 긴 6인용 식탁 한 구석에 책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다. 먼저 글쓰기 카페, '문장 고치기 연습장'으로 들어가 연습 문제 풀이를 필사한다. 요즘은 날마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1>>과 이재성의 <4천만의 문법책>을 몇 장 읽는다.여기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성경도 몇 절 보고. 아침에 치르는 의식이다. 전에는 달에 한두 권, 눈에 들어오는 것만 읽었다. 지금은 이것, 저것 취향 아닌 것도 눈앞에 둬 본다. 마음이 급해서다. 읽었으니 좀 써볼까도 싶지만 접는다. 떨려서. 이것은 흡사, 소개팅을 앞뒀거나, 복권 당첨 번호를 확인하는 일 같다. 내 얼굴 형편에 맘에 쏙 드는 남자가 나올 리 만무하고, 뭐 로또는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두 배가 힘들다지.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 머릿속으로는 날마다 책 한 권이 출판되니 부푼 가슴으로 첫 문장을 써본다. 실망. "에라이." 수업 시간에 듣고, 책으로 볼 때는 알겠는데 적용을 전혀 못 한다. 읽기만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퇴고하는 과정은 얼마나 고역인가. 아무리 다듬어도 끝이 없다. 더 괴로운 것은, 고친 것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리모델링이 새로 짓는 것보다 어려운 예도 있다지? 갈아 엎고 다시 쓰고 싶지만 그런다고 더 좋은 것이 나오겠는가. 화요일 성적표를 받아 보는 날. 파일을 누르는 손끝이 떨린다. 딸기가 얼마나 열렸으려나. 중2병 걸린 둘째, 수험생 큰녀석, 이번 달 카드 값도 다 나중 문제다.

 

꼴랑 에이포 한 장 쓰면서 영혼까지 털린 것 같다. 더 이상 안에서 나올 것이 없다. 어떤 날은 어찌어찌 올렸지만 초등학생 일기만도 못한 것 같아 꼴도 보기 싫다. 방향 잡기가 쉬워 제목부터 정하는데, 두어 번은 도통 감이 안 와, 끙끙 앓았다. 너무 졸려 노트북과 함께 누웠다. 생각 또 생각. 정신 사나운 꿈 때문에 눈이 번쩍 떠졌다. 새벽 3시. 떠올랐다. 교회 가서 내내 졸았다. 그래도 교수님께 칭찬 한 마디라도 들으면 또 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올려주신 녹음 파일에서 내 글 다룬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듣는다. 회원들 글도 꼼꼼히 읽는다. 나 빼고 모두 잘 쓰는 것 같다. 댓글은 내 힘. 옆에서, 다 예의상 하는 말이지 곧이 듣냐고 한다. 그래도 좋다. 누군가 내 글을 읽었잖아! 충분하다. 어머, 그 세상이 말하는 '관심 종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할 수 없지. 단 한 사람이라도 읽어 준다면 나로 시작해, 부모고 자식이고 다 갖다 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강원국의 글쓰기> 저자가 그러는데 글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란다. 음, 그런 것 같다. 나를 글쓰는 사람 축에 넣기가 겁나게 부끄럽지만.

 



부처님이 오셔서 쉬는 날. 김국화, 김수화, 김지은이 목포에 왔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니, 묵혔던 것을 푸느라 입이 바쁘다. 나는 귀까지 분주하다. 무슨 건질 말 없는지 듣느라 그렇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팬이다. 나도 어느 한 가지에 높은 안목을 갖고 싶다. 한번 시험해 보자. 2박 3일 친구들과 놀면서 무엇을 듣고 보는지. 공기 속으로 흩어져 버리기 전, 찰나를 잡아야 한다. 메모장에 몇 단어 적었다. 집에 와 열었다. '조심해야겠네.',  '하다 보면.' 안목이 저질이군. 수위가 높아 쓸 수가 없다. 스물둘이 아니라, 마흔둘이라 그런 거라고 핑계 삼는다. 아아고, 웃겨라. 글쓰기를 배운다고 광고했다. 실명을 쓰라는 허락도 받았다. 착한 친구들이다. 보여 주란다. 부끄러운 척하며 바로 단톡방에 올렸다. 독자가 필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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