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걷기 시작했을 때 데리고 서점에 갔다. 동화책 몇 권과 CCM 악보집을 사서 집으로 왔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저 혼자 가지고 놀게 두었다. 한동안 이 일에 꽤 공을 들였는데 그러면 책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디 그리 세상이 호락호락하단 말인가. 정반대로 컸다. 악보집을 뒤적거리다 처음 보는 곡이 가사가 좋아 코드를 집어 보려고 피아노에 앉았다. 노래 제목 옆에 작사, 작곡 '이지음'이라고 써 있었다. '지음.' 오, 본 적 없는 신선한 이름이다. 딸을 낳으면 붙여 줘야겠다. 둘째는 4년 후에 낳았는데 아들이었고 얼굴이 이름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름 때문에 셋째를 낳아야 하는 건가? 가질까 말까 갈팡질팡하는 사이 아무런 조치를 안 취했더니 젖을 떼자마자 또 임신했다.
16주쯤에 성별을 알려 주었다. 딸. 무슨 복이냐며 주변의 축하를 듬뿍 받았다. 사실 이름만 아니라면 아들, 아들, 아들을 낳고 싶다. 앞에 둘을 제왕절개 한 터라 얘도 분만 날짜를 잡았다. 보통 38주에 낳는다. 7월 첫 주에서 날짜를 고르라 해 7월 7일 목요일 12시 30분으로 정했다.
일곱 살, 세 살 형제를 아버지, 어머니께 맡기고 병원으로 갔다. 수술실은 차갑다. 사람도 공기도 거기를 채운 사물과 오가는 소리도. 그러다 아기가 나오면 따뜻한 기운으로 환기된다. 쪼끔한 게 힘이 대단하다.
첫 번째 낳을 때는 전신 마취했고 다음부터는 하반신 마취로 아이를 꺼냈다. 무슨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척추 마취 하는 게 산모와 배 속 사람에게도 좋다고 했다. 사실은 그냥 정신을 잃고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아이를 보고 싶은데 마취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치욕스러워서다. 거의 벗겨진 채 부른 배로 새우 자세한다. 두꺼운 바늘이 허리를 찌르면 아랫도리가 서서히 사라진다. 감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배를 가른다. 아프진 않아도 아래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느낌은 다 있다. 아이가 너무 위에 있으면 의사가 내 배로 올라 힘껏 누르기도 한다. 별로 알고 싶은 않은 과정이다.
12시가 못 돼 수술실로 들어갔다. 간호사 손을 잡아 주어 수술대에 좀 수월하게 올랐다. 이것저것 준비하고 점검하더니 돌아누우라고 한다. 한번 해 봤다고 익숙하게 크고 무거운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마취과 의사를 기다렸다. 남자가 와서 내 등허리에 소독약을 잔뜩 바르는데 급하게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의사한테 바짝 붙어 뭐라 뭐라 한다. 내 머리맡으로 오더니 허리와 고개를 숙여 "산모님, 정말 죄송한데요. 이다음 수술하시는 분이 순서 좀 바꿔 주라고 간곡히 부탁하네요. 시어머니가 지금 전화와 서는 꼭 한 시 전에 낳아야 한다고 했대요. 지금 어디서 점을 급히 봤나 본데 양보하실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살면서 무슨 양보를 했는지 생각했다. 많이 한 것도 같은데 특별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으로 좋은 날, 좋은 시간이라면 내 아이가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 아, 난 이 모든 게 상관없는 하나님이 있지. 그렇다면 나가서 '예수를 믿으시죠.'라고 말해야 하나. 행여 바람대로 아이가 자라지 않으면 내 탓을 할까 봐 수술대에서 내려왔다. 애 낳는 시간까지 조종하려 드는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가 가엾기도 했다.
예쁜 여자 아이를 낳았다. 제 오빠들보다 작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했다. '지음'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렸다. 한자는 알 지, 소리 음으로 했다. 음악를 잘했으면 해서. 바라는 것 이 하나였는데 지금 지음이는 음치에 박치다.
7월, 모든 게 습기에 짓눌려 괴로울 때면 궁금하다. 내 양보로 앞서 태어난 애는 바람대로 자라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