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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코를 빌려주세요

무슨 색, 무슨 냄새

by 황옹졸

조수석 문을 열고 그녀가 타자 담배 냄새가 확 밀려왔다. 갓 피고 온 진한 향이 아니라 몸과 옷에 배어 있는 자연스럽고 묵묵한 냄새였다. "반갑다, 얼마만이니? 그대로네." 불은 몸, 커지고 처진 얼굴. 사실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인사했다. 그 애도 날 보고 인사한다. "황옹졸이 잘 살았어?" 빠르게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악수를 청한다. 내가 많이 변했는지 '그대로'라는 인사치레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유리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나는 자몽차, 친구는 카페라테를 마셨다. 테이블이 작아 우리는 아주 가까이 얼굴을 맞댔다. 너무 오랜만이라 공통된 주제를 찾기 어려워 대화는 중간중간 삐그덕 거리고 끊겼다. 그럴 때마다 서로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짧게 쉴 때마다 그 애 입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달큼하고 시큰한 커피, 텁텁한 담배, 화한 치약. 세상에 모든 걸 섞으면 이런 향이 아닐지. 잇몸색이 아주 어두웠고 21번 치아 윗부분이 유난히 까맸다. 충치는 아니고 치석처럼 보인다. 담배를 즐기는 것 같다. 마주 앉은 공기가 어색해 밖으로 나와 바다를 걸었다. "놀라지 마, 나 담배 피워. 지금 한 대 하고 싶은데 괜찮지?" 나는 당연하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얼른 권했다. 능숙하게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인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담배를 입에 넣고 한 모금 길게 빨아들였다. 고등학교시절 우리 입에 물려 있던 추파춥스가 어렴풋이 지나간다. 사탕은 입에 있고 하얀 막내는 담배처럼 입술 사이로 길게 나와 있던.


"세상이 좇같어, 담배를 안 할 수가 없다니까. 나 담배 피우는 거 전혀 몰랐지? 아무튼 순진한 사모님 놀라게 해서 미안해."


이 말이 공포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사람은 자기를 볼 수 없고 맡을 수도 없구나. 얼른 팔소매를 코에 갖다 댔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것 같다. 콤팩트를 꺼내 열어 거울을 보았다. 자연스럽게 웃으며 치아를 드러냈다. 좀 노랗다. 손을 오므려 입김을 불어 모아 맡아보았다. 무슨 냄새인지 모르겠다. 답답하다. 내가 보고 맡던 냄새는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무서움. 다른 사람의 눈과 코를 장착해야 진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나를 웃게 하려고 농을 부린 게 아닐까? 그런데 전혀 농담이나, 담배 피우는 게 멋쩍어서 괜히 떠보는 말도 아니었다. 그 애 눈이 그랬다. 술과 남자를 먼저 알고 뻐기던 어떤 언니가 지었던 표정과 눈빛이었다. 아니, 너의 냄새와 잇몸 색깔을 보자마자 알았노라고 말하지 않았다. 정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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