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fine thank you and you
엘리베이터 앞 깊숙이 계단이 있다. 종종 엘리베이터가 높은 층에 있을 때 계단 한 칸을 빠르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운동을 한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18층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계단으로 갔다. 오른발을 딛고 올라섰는데 공동현관 밖에서 우당탕탕 가볍고 무직한 물건들이 한데 섞여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택배 기사님이 물건을 놓다 쏟은 걸로 짐작된다. 두어 걸음 앞으로 나와 밖을 내다보았다. 얼굴이 익숙한 아주머니다. 10층이던가? 아주머니는 정확히 개구리 자세를 하고 있었다. 개구리처럼 다리는 벌려서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양팔은 앞으로 해서 바닥에 내려놓아져 있었다. 요사이 눈이 자주 내려 출입구엔 빨간 미끄럼방지 매트가 깔려 있는데 아주머니의 왼쪽 뺨이 거기에 딱 붙었다. 주변에 쓰레기봉투 2개가 널브러져 있었고 장본 식료품들이 초라한 행색으로 쏟아져 나왔다. "으으으" 하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무슨 만화였는지 모르겠는데 말썽꾸러기 주인공이 넘어졌을 때와 아주 흡사한 모양이다.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와 오른손 왼손을 포개 입을 막고는 보이지 않게 계단 쪽으로 몸을 숨겼다.
나가서 아는 척을 하며 좀 도와주어야 하는지, 그냥 모른척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주머니의 '으으으'하는 신음소리가 보통 아픈 게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 개구리자세는 뭐랄까, 다 큰 어른이라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아픈 게 힘들까, 부끄러운 게 힘들까. 나는 후자다. 쥐뿔 없어도 온 행색에 궁상이 풍겨도 나름의 가오를 포기할 수 없단 말이지. 어쩌다 넘어짐은 부끄럽고 웃긴 것이 되었을까? "어머, 괜찮아? 조심해."라고 말하지만 목구멍 아래에선 웃음이 피식 나오는 내가 경멸스럽다. 그러니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아임 파인 땡큐.'를 외칠 수밖에. '나라면'이라는 공식을 대입했다. 나라면 아무도 못 봤으면 좋겠다.
아주머니가 일어나 추슬러 들어오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내려와야 한다. 18, 17, 16, 15, 14, 13. 잘 내려오던 것이 12층에서 멈췄다. 11, 10, 9, 8, 7. 6층에서 또 한참이 걸렸다. 숫자가 3이 되었을 때 아주머니가 한 손으로는 한쪽 뺨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쓰레기봉투를 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빨갛게 붉어진 뺨 색이 드러났다. 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양, 핸드폰만 쳐다보았다. 심각한 일이 있는 것처럼 인상을 팍 쓰고 카톡으로 들어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나와의 채팅' 창에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