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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가르쳐

세현, 나래

by 황옹졸

"주원이를 좋아했어?"

질문이 '무슨 그런 남자를 좋아했냐.'는 비웃음처럼 들린다. 느닷없이 전화해 20년도 더 지난 일을 묻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 애를 좋아했던 시절이 스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곧 물어보는 진이의 말투가 신경을 건드려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선생님, 나래가 안 논대요. 제가 싫대요. 어떻게 해요?"

옆으로 가늘고 길게 쭉 찢어진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지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새어 나왔다. 오른손으로 양 눈의 눈물을 한 번 훔쳐 주고 울 만큼 울 게 내버려두었다. 조금 진정되었는지 어깨를 두 번 들썩거리고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나도 같이 바라보았다. 우리는 길게 눈을 맞췄다. 이 작은 남자에게 사랑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여름이 끝날 무렵 나래가 전학 왔다. 검은 얼굴에 눈이 완전한 동그라미였다. 웃을 때는 동그라미가 반달이 되어 귀엽게 주름이 잡히고 토끼 이빨이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세현이는 반에서 존재감이 없다. 무엇이든 못한다고 몸을 뒤로 뺐다. 종이에 수없는 가로 줄을 잔뜩 그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고 먼저 말을 붙이는 일도 없었다. 이런 세현이에게 나래는 스스럼없이 몸을 가까이하고 말을 걸었다. 머뭇거리던 세현이도 차츰 웃기 시작했다. 나래는 '나 잡아봐라' 놀이를 좋아했는데 다리가 긴 나래는 살살 달렸어도 키가 작아 다리가 짧은 세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죽어라 뛰어야 했다. 가진 걸 끝없이 내줬다. 연필, 지우개, 스티커는 물론이고 급식에 나온 달콤한 간식들, 급기야 돈까지. 때마다 세현이는 "너 가져."라고 말했고 나래는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고 원래 자기 것인 듯 받았다. 둘이는 학교에 가장 일찍 왔는데 핸드폰이 없는 나래는 세현이 걸로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게임과 유튜브를 실컷 했다. 한 달쯤 지나 나래는 반에 안착했고 더 멋진 남자와 붙어다녔다.


"나래가 좋니?"

"네."

"왜?"

"모르겠어요."


왜, 하필 나래냐고 제발 눈을 넓게 뜨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너보다 조금 더 살아봐서 알 것 같은데 저런 애 좋아해 봤자 니 신세를 피곤하게 할 뿐이라고. 저것 좀 보라고. 저 백여시가 또 저쪽에서 반달눈을 흘리고 있지 않냐고. 미성년자에게 신세니, 백여시니 하는 단어는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눈만 바라보았다.


"더 좋은 친구가 생길 거야."


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주원이 좋아한다고 했을 때 다들 "뭐, 주원이? 왜?"라고 물었다. 살집이라곤 없는 작은 키에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고난은 혼자 짊어진 무거운 얼굴을 하고 다녔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사람의 호감을 사기에 좋은 외모는 아니었으나 끈덕지게 나를 따라붙는 깊은 갈색 눈동자에 사로잡혀 버렸다. 여자친구에게 조차 마음껏 내어줄 수 없을 만큼 시간과 돈에 늘 허덕였다. 일, 공부, 여자. 나는 그의 어깨에 맨 짐가방에 든 다른 것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잡동사니 같을 때가 있었다. 사랑은 알 수 없게 찾아왔다, 분명한 이유를 대고 떠났다.


"좋아했어."

"아...... 그랬구나."

"왜 물어보는 거야?"

"아니, 그냥 생각이 나서"

"그 이름이 뭐지? 니가 좋아했던 앞니 부러진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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